심리 에세이: 공감은 ○○○원입니다

by 홍현호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공감을 얻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상담에서 공감은 중요하다. 상담자는 공감을 통해 내담자와 라포(rapport, 친밀감 또는 신뢰관계)를 형성한다. 내담자와 상담자 사이에 라포가 형성되면 내담자는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 수 있게 된다. 공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상담자는 상담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공감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공감은 내담자를 이해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느꼈을 감정을 헤아려보면서 문제의 원인이 되는 심리적 기제를 탐색하고 어떻게 치료할지를 결정한다.

공감은 상담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러나 공감이 상담의 핵심 요소라는 점은 불편한 사실을 하나 내포한다. 상담을 받는 사람은 공감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공감을 돈을 주고 산다니,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일상에서 쉽게 공감을 마주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삶을 보면 타인의 불행에 대한 공감은 오히려 모습을 감추고 있다.


공감 부재의 사회


공감은 주고받는 과정이다. 자신의 아픔을 입 밖으로 꺼내야 함과 동시에 그것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힘든 이야기를 좀처럼 털어놓지 않으며, 설령 말한다 하더라도 상대방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 지인들과의 만남은 웃음으로 가득 차며 슬픔이나 연민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보이지 않는다.


혼자 견디는 것만이 미덕인 사회


우리는 힘든 티를 내는 사람에게 아니꼬운 시선을 보낸다. 누구든지 각자의 고충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은 고통에 대한 개인의 취약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즉, 같은 불미스러운 경험을 했더라도 개인마다 느끼는 아픔의 정도는 다르기 마련인데 이 부분을 생각하지 못한다. 한 마디로 "이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어"라는 것이다. 웬만한 비극적인 사건이 아닌 이상 하소연을 늘어놓는 사람은 꼴불견이 되는 반면 홀로 시련을 극복한 사람에게는 찬사가 쏟아진다. 자신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타인의 모습을 보는 것만큼 당사자에게 충격적인 일은 없다. 이런 사회에서 어느 누가 마음의 상처를 드러낼 수 있을까.

우리는 어려움을 혼자 이겨낸 사람에게 존경을 표한다. 살을 깎는 정신력과 인내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의 시간을 버티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는 공감의 연고가 발라지지 못한 채 곪아간다.


"나야 뭐 늘 괜찮지, 문제없어"


인간은 타인 앞에서 자신이 좋게 보이기를 원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긍정왜곡(faking good)’이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는 것에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남들 앞에서 애써 괜찮은 척 한다. 문제는 심리적으로 지쳤음에도 태연한 척 행동하는 데에는 상당한 내적 에너지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내적 에너지가 불필요한 곳(태연한 척 행동)에 집중된 나머지 정작 필요한 부분에서는 내적 에너지가 부족하게 된다.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은 상담 장면에서 종종 직무기능이나 학업능력의 저하를 보고한다.

행동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고통을 더욱 가중시킨다. 인간은 태도와 행동이 불일치할 때, 즉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가 일어날 때 불안을 느낀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둘 중 하나를 한 쪽에 맞게 변화시킨다. 보통은 태도를 행동에 맞춘다. 태도를 바꾸는 건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태도와 다르다. 괜찮은 척 행동한다고 고통스러운 현실이 바로 나아지지는 않는다. 이 둘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거리는 끊임없이 당사자를 괴롭힌다. 결국 마음의 상처는 급속도로 악화된다.


공감에 씌워진 ‘고통’이라는 프레임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은 고통스러운 과정이 됐다. 남에게 고통을 주길 원치 않기에 우울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고통이 전염될까봐 두려워 공감에 거부감이 든다. 그러나 공감은 순기능이 더 크다. 자신의 속마음을 꺼내놓는 자기노출(self-disclosure)은 둘 사이의 유대감을 강화한다.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지내온 세월을 떠올려보라. 그 시간 속에는 웃음과 기쁨뿐만 아니라 서로의 상처에 대한 공감과 이해, 그리고 지지가 있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우리는 공감이 가져오는 고통에 매몰돼 공감이 주는 효과를 놓치고 있는 것 아닐까.

마주치고 싶지 않은 불쾌한 감정들이 떠올라 속사정을 말하기를 꺼린다. 그러나 누군가의 공감은 아픔을 털어놓으면서 상기되는 고통을 보듬어주기에 충분하다. 아담 스미스의 저서 <도덕감정론>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그 사람의 동감의 감미로움은 그의 동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그들이 자신들의 비통함을 다시 생생하게 상기해야 했던 고통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마음의 병을 예방하는 약: 공감


공감은 스트레스가 쌓여 마음의 병으로 악화되지 못하도록 하는 약이다. 공감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다.『사회적 감정공유(Social Sharing of Emotions)가 환자의 심리적 안정 및 치료효과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보면 주변 사람들의 공감과 격려가 환자의 심적 안정과 정적 상관을 보임을 알 수 있다. 이 논문의 결과는 공감이 중증 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비참한 현실 속에서 우울증과 같은 정신 질환을 겪지 않도록 예방하는데 효과가 있음을 시사한다.

아담 스미스는 그의 저서 <도덕감정론>에서 공감의 효과를 이렇게 서술한다. “불행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비통하게 된 이유에 대해 자신들의 하소연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을 때 매우 큰 위안을 받는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그 사람의 동감에 자신들의 고통의 짐 일부를 벗어놓는다.”

우리는 공감이 필요하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이 도처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직장 상사의 갑질에 힘들어하는 사람들, 끊임없는 경쟁으로 지친 학생들, 높은 취업 문턱에 좌절한 취준생들은 지금도 시련 속에서 홀로 서 있다.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 고난 속에서 쓰러지지 않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그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옆에서 그 손을 잡아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