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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lfynina Nov 02. 2022

2022 아니에르노의 수상으로 바라보는 노벨문학상

노벨문학상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유산에서 발생하는) 이자는 다섯 등분하여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화학 분야에서 중요한 발견이나 개발을 한 사람,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문학 분야에서 이상주의적인 가장 뛰어난 작품을 쓴 사람, 국가간의 우호와 군대의 폐지 또는 삭감과 평화 회의의 개최 혹은 추진을 위해 가장 헌신한 사람에게 준다.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 1896

 

 스웨덴의 화학자, 발명가, 기술자, 기업인이자 자선가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노벨은 안전하고 폭발력을 조절하기 편한 폭약을 개발하기위해 오랜 연구 끝에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했다하지만 이는 광산업 뿐만 아니라 전쟁터에 투입되어 수많은 사람을 죽게 했고, 그는 자신이 만든 다이너마이트의 군사적 사용에 회의감을 느껴, 인류에 공헌하기 위해 유산의 94%(약 440만 달러)를 기부하여 노벨상을 만들었다.


 이후 노벨이 생전에 몸담았던 분야와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물리학', '화학', '생리학/의학', '문학', '평화', ('경제학') 부문에 1895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12월 10일, 노벨의 기일에 시상하고 있다.  이 여섯가지 분야 중에서 '문학상'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나누어보고자 한다. 

2019 노벨문학상 수상자 피터 한트케의 시상 장면 (Photograph: Jonas Ekstromer/POOL/EPA)




 노벨 문학상은 벌써 역대 수상자 118명을 배출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권위있는 문학상이다. 시상식의 약 두 달 전인 10월 초에 스톡홀름과 오슬로에서 공식적으로 수상자를 발표한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출판업계는 이맘때면 자연스레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기다린다. 또한 수상자 발표 이후 대형 서점들에서는 해당 작가의 대표작들이 온 매대에 깔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022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



 올해 2022년의 노벨문학상은 프랑스 문학의 거장, '아니 에르노'에게로 돌아갔다. 노벨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그녀의 수상에 "개인적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통제를 드러내는 용기와 꾸밈없는 예리함을 보여주는 작가다. 그는 작품을 통해 젠더, 언어, 계급적 측면에서 첨예한 불균형으로 점철된 삶을 다각도에서 지속적으로 고찰하며, 길고도 고된 과정을 통해 작품세계를 개척해왔다."라고 덧붙였다. 



 아니 에르노는 나에게 생소한 작가였지만, 새로운 작가의 작품세계에 빠져들 생각에 오히려 좋았다. 서점에는 이미 그녀의 수상을 알고있었던 것처럼 입구부터 그녀의 작품들을 배치해놓았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대체로 길지 않을 뿐더러, '이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산문에 가까웠다. 그래서 내 주변에 있는 친구의 일기를 훔쳐보는 느낌으로 흥미로웠고 앉은 자리에서 바로 다 읽어버릴 만큼 술술 읽혔다. 특히 <단순한 열정> 의 꾸밈없는 솔직함은 마치 내가 소설 속 데일 듯한 사랑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만들었다. 책을 덮은 후까지 그녀의 마음에 잔뜩 공감하며 가슴이 얼얼할 정도였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니 에르노


 모든 소설가는 자신의 경험에서부터 비롯한 글을 쓴다고 생각한다. 경험 그 자체를 다루지는 않더라도 경험에서 비롯된 사고와 감상에서 전하고 싶은 메세지가 있기에 글을 쓰는게 아닐까. 

 자신의 임신중절수술 경험을 기반으로 시작하는 소설 <빈 옷장>으로 등단하여 아버지의 죽음과 그 이후의 삶을 다룬 <남자의 자리>, 자신과 유부남의 불륜을 다룬 <단순한 열정>,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그녀의 삶을 회고한 <한 여자>. 이 외에도 그녀의 작품들은 모두 그녀의 삶과 경험을 기반으로 쓰여졌다. 

 타 작가에 비해 그녀의 글은 '어떻게 이토록 솔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마음 속에 맴돌게 한다. 그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경험에 입각한 사건을 기반으로 글을 썼기에 당연한 것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글을 읽다보면 알 수 있다. 그녀의 글에서 우리가 솔직함을 느끼는 이유는 사건의 재현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아주 깊게 탐구하고 가감없이 드러내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매년 노벨문학상 유력 수상후보로 언급되는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그는 뛰어난 상상력과 탄탄한 구성, 그리고 특유의 감성적인 문체로 완성되는 매력적인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와 비교했을 때 헤르만 헤세, 알베르 카뮈, 도리스 레싱, 암둘라자크 구르나와 아니 에르노를 비롯한 역대 수상작들의 주로 건조한 문체로 역사, 인종, 정치, 젠더 등 시사하는 바와 질문을 직설적으로 던지는 편이다. 스웨덴 한림원이 아니 에르노의 수상 이유에 '용감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도 낙태, 질병, 성(性), 빈곤 등 사회적으로 이야기하기 꺼리는 주제들을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솔직하게 풀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세계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대두되고 있는 젠더 이슈 등의 갈등이 그녀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을 보고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주로 역사적·사회적인 이슈를 담고있거나, 철학적으로 인간성을 탐구하는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작의 공통점을 그녀의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계속적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작품들에서 공통점이 발견되는 점이 아쉽다. 노벨문학상은 그 권위에 맞게 더욱 다양하고 새로운 작품들에 시상해야 한다. 수상작의 다양성 면에서 계속해서 문제가 제기되어서인지, 시, 역사, 소설, 희곡, 산문의 장르를 벗어나 2016년에는 음악가 밥 딜런을 수상자로 선정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장르 보다는 문학 자체의 존재 이유와 감상 및 평가하는 관점에서도 변화를 주어야 할 때이다. 문학의 사회적이고 교시적인 기능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문학이 독자에게 주는 고차원적인 정신적 쾌락도 함께 고려한 종합적 기능 또한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국가와 언어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수 분포를 고려했을때에도, 새로운 국가의 문학들도 탐구해야 하지 않을까싶다.



문학이란 산문이건 운문이건 반성보다는 상상의 결과로서, 교훈이나 실제적 효과보다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국민에게 쾌락을 줌을 목적으로 하고, 특수한 지식이 아니라 일반적 지식에 호소하는 저술을 말한다. (...) 문학이란 상상적이어야 하고, 미적 쾌락을 주어야 하고, 특수한 지식이 아니라 보편적 지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Possnett)


문학이란 근본적으로 언어를 매개로 한 인생의 표현 (W.H.Hudson)




https://www.youtube.com/watch?v=f3xVY295k-g

아니 에르노의 2022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기자회견


내가 상을 받은 건 나의 글이 아직 살아있고 그것이 메아리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문학이 즉각적인 영향을 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여성이 엄마가 되고 싶은지, 아닌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스스로 가질 수 있도록 내가 숨을 거두는 날까지 싸우겠다"


에르노는 수상 이후 프랑스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위와 같이 말했다. 나는 그녀의 수상소감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았다. 문학이 당시의 시대상을 고증하며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문학이 '투쟁'하고 '싸우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나에게 문학은 경험에 상상력을 덧붙여 언어로서 표현하는 예술이다. 그리고 문학을 읽음으로서 내적 평화를 얻고, 타인의 경험을 간접 체험하며 공감하고, 그로써 시야를 확장한다. 문학을 통해 직설적으로 갈등에 '투쟁'하는 것보다 '공감'을 자아내는 것이야 말로 평화와 공존을 도모하는 더욱 빠른 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  옥스포드의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문학은 <삶의 가치 있는 경험을 상상력을 토대로 하여 언어로 짜임새 있게 표현한 예술> 이다. 나는 이에 동의하며, 이에 입각한다면 현재 수상작들 처럼 계몽적이고 교시적인, 더 나아가 사회비판적인 문학 뿐만 아니라 감상적이며, 작가의 세계관이 탄탄한, 그리고 무엇보다 독자로 하여금 몰입과 고차원적인 정신적 쾌락을 제공하는 작품들까지도 수상의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 노벨문학상은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인만큼, 문학의 앞으로의 행보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다. 그러므로 노벨문학상은 문학의 무한한 가능성을 더 끌어낼 수 있도록 더욱 발전해야 할 것이다.





The critic Denis Donoghue once wondered aloud why there is no aesthetics of pleasure, why, in other words, we do not treasure—and rank—certain works of literature simply for the happiness they instill in us as we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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