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

by 지홀

누군가가 누구에게 자신의 집 비밀번호를

알려준다는 것은 믿는다는 의미.

그런 믿음을 받은 누구는,

누군가가 없을 때 들어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꼭, 먼저 들어가 있겠노라 알렸다.

누군가를 마지막으로 보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그 날,

불쑥 찾아간 집 앞에서

초인종을 여러 번 누르고 기다리다

비밀번호를 누를까 말까 망설이다

누군가가 누구에게 준 믿음을 깨는 것 같아

하염없이 문 앞에서 기다리기만 했다.


왜 그날은 알릴 생각을 못했을까?

집 앞에 왔다고 문자라도 할 수 있었는데.

그랬다면,

누군가는 누구에게

화를 내지 않았을지모르는데.

왔다는 걸 알았다면

누군가가 대처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날,

말없이 비밀번호를 눌렀다면 어땠을까?

번호가 이미 바뀌어 있었을까?

들어갔다면, 무엇을 보았을까?

누군가가 누구에게 주었던

믿음은 언제 사라졌던 것일까?

은, 믿음 따위는 없었던 것일까?

비밀번호는 누군가에게는 그저 의미 없는 숫자,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숫자였을 뿐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