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일이라 출근 시간이 10시로 늦춰졌다. 계획은 평소대로 일어나 9시 조금 넘어 출근해서 여유를 갖는 것이었다. 어젯밤까지 그랬다. 아침에 평소대로 눈이 떠졌고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면 되는데 침대에서 미적대며 브런치 글을 읽고 인스타그램을 봤다. 결국 10시 출근 시간에 맞춰 준비하고 10시 10분 전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헐레벌떡 뛰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아주 느긋하게 출근한 건 아니었다.
일을 열정적으로 할 때는 수능일에 늦게 가지 않았다. 하던 대로 일했다. 윗사람이 있든 없든 내 할 일을 했다. 가끔 윗사람이 휴가, 출장 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 직원들이 "어린이날"이라며 일을 좀 안 해도 되는 것처럼 말하면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안 하면 일이 밀리기만 할 뿐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작년부터 내려가는 연습을 시작하자 일에 들이는 에너지 양이 달라졌다. 열정이 예전만 못하고 회사 내 다른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정도는 확연히 약해졌다. 내가 할 일에만 집중하고, 할 일이 있지만 급하지 않은 건 뒤로 미룬다. 마음이 편하다.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때문일 거다. 나이와 주어진 역할에 따라 열심히 일해야 할 때가 있고 그럴 필요 없는 때가 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이 들수록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내 삶을 챙기는 소중한 시간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배운다.
종일 먹구름(09:35, 12:09)
먹구름과 예쁜 보름달(12:31, 18:45)
내리막길을 다치지 않게 넘어지지 않고 잘 내려가려는 중이다. 회사에서는 내리막길이지만 내 인생은 내리막이 아니므로. 50대는 라이프사이클 그래프가 내려가고 인생의 가을을 맞이하는 때지만, 인생의 모든 것이 하향하는 건 아니다. 터득한 지혜 덕분에 너그러워진 마음은 젊을 때는 깨닫지 못했던 것이므로 상향이다. 30대 때보다 경제적으로 나아졌으니 그것도 상향이다. 남들을 돌아볼 심적 여유가 생겼으니 상향이며 여러 가지 취미로 다양한 시각과 관찰력을 얻게 된 것도 상향이다.
어렸을 적 갖지 못했던 사유, 취미, 마음의 여유 등으로 내 인생 제2의 리즈 시절이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