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바람 분 날

2025. 3. 25

by 지홀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지. 그녀는 조그만 손을 흔들고"


옛날 노래 '회상'의 가사다. 20대 때 즐겨 듣던 노래 중 하나다. 자주 들을 수 있던 이유는 아는 사람이 이 노래를 비롯해 당시 유행하던 가요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줬기 때문이다. 한국에 살았다면 라디오나 길거리에서 많이 들었겠지만, 당시 호주와 뉴질랜드 사무실로 파견 나가 일하던 시절이라 가요를 접할 기회가 적었다.


오늘 바람이 몹시 불었다. 머리카락을 흩트리는 바람을 맞으며 불현듯 이 노래가 입안을 맴돌았다. 그리고 그 시절이 떠올랐다. 두려운 것 하나 없던 시절. 일하는 틈틈이 놀고 썸 타던 시절.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대부분 20대 청춘남녀였다. 연애세포가 가장 많이 살아 숨 쉴 때이니 서로 눈길이 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누가 누구와 사귄다는 소문으로 괜히 괴롭고 질투하던 시간이었고, 나를 좋아하는 줄 전혀 눈치 못 챘던 시간이었고, 상대의 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때였고, 마주치기만 해도 마음이 설레던 때다. 큐피드의 화살은 그렇게 어지럽게 어긋나기만 했던 시절이다.


회사에 20대~30대 직원들이 많다. 그들끼리 저녁에 밥 먹고 술 마시고 썸 타는 일이 있는 것 같다. 좋은 때다. 연애는 일상을 빛나게 하는 힘이 있다. 사랑의 화살이 어긋나지 않고 서로의 심장에 제대로 꽂히기를 바란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 내게는 다시 오지 않을 시절에 미소가 지어지는 날이다.

하늘이 흐리다, 흐리다(08:40, 08:42, 13:27)
바람이 많이 부는 날(13:27, 13:28,16:02)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탐욕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