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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Apr 22. 2018

여행은 동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니콜라 부비에의 <세상의 용도>

니콜라 부비에가 쓴 《세상의 용도》는 삶을 바꿔놓는 힘을 가진 마술의 책들 중 하나다. 1963년 스위스의 드로주 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은 그 다음 해 프랑스 쥘리아르 출판사에 의해 출간되었지만, 이 프랑스어판은 출판사 내부 사정으로 절판되었다. 작가가 판권을 되찾아간 뒤로 시간이 지나면서 이 책을 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져갔다. 1985년 데쿠베르트 출판사에서 펴낸 세 번째 판이 드디어 이 책을 행복한 소수의 손에서 더 많은 독자들에게 넘겨주었다. 처음 출간된 지 25년여 만에 《세상의 용도》가 하나의 기념비적 저서로, 하나의 컬트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 책을 쓴 니콜라 부비에는 그로부터 13년 뒤에, 그리고 이 책에 흑백 삽화를 그린 그의 친구 티에리 베르네는 그로부터 5년 뒤에 각각 세상을 떠났다. 

《세상의 용도》는 어떤 책인가? 1953년에서 54년 사이에 두 스위스 청년을 제네바에서 유고슬라비아, 터키, 이란, 파키스탄을 거쳐 카불까지 데려간 여행이야기라고 간단히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은 작가, 또 한 사람은 화가였다. 그들은 피아트 토폴리노를 타고 여행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정확할지는 모르지만 불완전하다. 왜냐하면 《세상의 용도》는 무엇보다도 ‘지혜의 책’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를 설명해주는 삶의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20세기판 ‘경이의 책’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1929년 제네바에서 시작되었다. 니콜라 부비에는 높은 교양을 갖춘 부유한 부르주아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들은 토마스 만이라든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부비에는 그녀를 존경했다), 로베르트 무질, 헤르만 헤세를 손님으로 맞았다. 니콜라 부비에가 쓴 <테사우루스 파우페룸>이라는 글을 보면, 가족의 근원에 대한 깊은 애착과 거기서 벗어나고 싶은 잠재된 욕망이 동시에 표현되어 있다. 그는 대입자격시험을 보고 난 뒤로 산스크리트어와 중세사를 공부했고, 처음으로 여행을 했으며(이탈리아, 핀란드, 사하라, 터키), 최초로 글을 썼다. 그러고 나서 드디어 1953년에 오랜 시간 준비해온 긴 여행을 분신이나 마찬가지인 티에리 베르네와 함께 떠나게 된다. 그리고 길은 계시를 주기도 하지만 또한 고통도 안겨준다. 여행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여행을 하는 것은 무슨 일인가 일어나서 자신을 변화시키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집에 있는 게 차라리 낫다. 니콜라 부비에는 나중에 이렇게 쓸 것이다. 
“당신을 파괴할 권리를 여행에 주지 않는다면 여행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만큼이나 오래된 꿈이다. 여행은 마치 난파와도 같으며, 타고 가던 배가 단 한 번도 침몰하지 않은 사람은 바다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세상의 용도》는 둘이서 카불까지 갔던 이 여행의 첫 부분을 이야기한다. 그러고 나서 부비에는 1955년에 혼자 인도에 이어 실론까지 갔다. 그는 여기서 1년 가까이 머무르면서 광기와 우울증, 알코올을 경험했다. 여행의 위험은 경계를 살짝 건드리는 것이다. 그는 25년 뒤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매혹적이면서 가장 비통한 《물고기-전갈》이라는 작품을 통해 거기 대해 이야기한다. 죽음의 유혹에서 벗어난 그는 실론을 떠나 일본에 정착, 1년 동안 사진작업으로 먹고 살며 글을 썼다. 3년 동안의 여행을 마친 그는 1956년 말 스위스로 돌아가서 결혼을 하고, 제네바 근처의 콜리니라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는 도상(圖上)학자로 일하면서 3만여 점 이상의 개인 수집품을 모으는 한편, 《세상의 용도》를 고치고 또 고쳤다.
여행자는 무엇보다도 여유를 가져야 하고, 자기가 있는 나라에 깊이 빠져들어야 하며, 완전한 가용(可用) 상태에 놓여야 한다. 니콜라 부비에는 눈이 내리는 이란에서 6개월 동안 겨울을 보내야만 했고, 소형 피아트 자동차 엔진을 며칠에 걸쳐 다시 조립해야 했으며, 터키로 가는 길이 워낙 더워서 오래 고생해야 했다. 그러면, 그리고 오직 그때에만 여행은 여행자에게 그에 관한 무엇인가를 가르쳐줄 수 있다. 




《세상의 용도》가 출판되고 나서 니콜라 부비에와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큰아들은 일본으로 가서 1년 동안 머물렀다. 그는 이때의 체험을 《일본》이라는 책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으며, 다시 짧은 한 장을 덧붙여 《일본 연대기》를 펴냈다. 그리고 오랫동안 출판되지 않고 있던 이 책의 일부분은 《공허와 충만》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니콜라 부비에는 1970년에 혼자 다시 일본으로 갔고, 죽기 직전에 다시 이 나라를 찾아갔다. 그는 또한 중국과 한국, 아란 제도를 여행하기도 했다. 그는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고, 그의 사진 작품은 최근 들어 체계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들어 니콜라 부비에는 <감탄할만한 여행자들>이라는 주제로 생-말로에서 열린 북페어에서 한 세대의 작가 전체가 ‘대가(大家)’로 간주하는 영광을 안았다. 오마주 기간이 마련되어 영화 <부엉이와 고래>가 상영되었고, 대화집 《길과 궤주》가 출간되었다. 부비에는 그 뒤로도 미국과 일본을 여행하다가 1998년 2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마지막으로 쓴 유고작은 《밖과 안》이라는 시집으로서 가장 간결하면서도 가장 비통한 현대시가 묶여있는데, 그것은 인간과 죽음의 대면이었다. 작가이자 사진가이자 고문서학자였던 니콜라 부비에는 또한 시인이기도 했다. 
지난 2004년 7월 갈리마르 출판사는 무려 1560쪽에 달하는 그의 전집을 발간하였다.



"여행은 동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여행은 그냥 그 자체로서 충분하다는 것을 곧 증명해주리라. 여행자는 자기가 여행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는 여행이 여행자를 만들고 여행자를 해체한다."

"열 살에서 열세 살 사이에 나는 양탄자 위에 큰댓자로 누워서 세계지도를 찬찬히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다 보면 여행하고 싶은 욕구가 절로 솟아났다. 바나트나 카스피 해, 카슈미르 같은 지역과 그곳의 음악, 거기서 마주치게 될 눈길,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생각들을 꿈꾸었다……. 이 억누르기 힘든 욕망, 그걸 뭐라 불러야할지, 사실 우리는 모른다. 무엇인가가 점점 더 커지다가 어느 날인가 닻줄이 풀리면, 반드시 자신감이 넘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은 떠나고 보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서 빈둥거리며 나태를 부리는 것만큼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

"농사를 짓는 이슬람교도 아낙이 양파 바구니 사이에 있는 긴 의자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얼굴이 얽은 트럭 운전수, 잔을 앞에 두고 꼿꼿한 자세로 이쑤시개를 만지작거리거나 펄쩍 뛰어 일어나서 담뱃불을 붙여주며 대화를 하려고 애쓰는 장교도 있었다. 그리고 매일 밤, 문 옆 탁자에서는 젊은 매춘부 네 명이 수박씨를 잘근잘근 씹으며 열정적인 아르페지오로 아코디언 주자가 새로 산 악기를 어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근처 둑에서 영업을 하고 온 날이면 그들의 매끈하고 예쁜 구릿빛 무릎에 흙이 살짝 묻어있기도 했고, 툭 튀어나온 광대뼈에서는 피가 빠르게 맥박쳤다. 그들은 순식간에 잠에 곯아떨어졌고, 잠이 들면 놀라울 정도로 어려 보였다. 그들이 이따금씩 규칙적으로 숨을 내쉴 때마다 자주색이나 초록색 면직 옷에 덮인 옆구리가 들어올려지곤 했다. 몸을 부르르 떨거나 듣기 거북한 소리로 마른기침을 하다가 갑자기 톱밥 속에 침을 뱉는 그들의 거칠고 요란한 매너가 오히려 아름다워 보였다."

"언젠가는 이곳으로 돌아오리라. 필요하다면 빗자루를 타고서라도."

"도시란 피가 흐르고 고약한 냄새를 풍겨야만 치료되는 상처와도 같으며, 그 진한 피는 어떤 상처라도 아물게 할 수 있다. 이 강이 이미 주었던 것은 이 강에 아직 부족한 것보다 더 중요하다. 내가 아직 좋은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은, 행복이라는 것이 내 시간을 온통 빼앗아 가버렸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9주일을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이 있었다. 돈의 액수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시간은 넘쳐났다. 우리는 일체의 사치를 거부하고 오직 느림이라는 가장 소중한 사치만을 누리기로 작정했다."

"침묵 속에서 하루가 끝나간다. 우리는 저녁을 먹으면서 실컷 얘기를 나누었다. 여행은 엔진 소리와 스쳐가는 풍경에 실려와서 당신의 몸을 관통하고 당신의 머리를 환하게 밝혀준다. 아무 이유 없이 받아들인 생각은 당신을 떠난다. 반대로 다른 생각이 새로 정리되어 강 밑바닥의 조약돌처럼 당신 가슴속에 자리를 잡는다. 개입할 필요는 전혀 없다. 도로가 당신을 위해 일을 한다. 도로가 제 할일을 다 하여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인도 끝까지,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죽음까지 그렇게 뻗어나갔으면 좋겠다."

"내가 고향에 돌아갔을 때,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약간의 상상력과 집중력만 발휘하면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고도 여행을 잘 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 그런데 나는 그렇지가 못하다. 구체적으로 공간 속을 옮겨 다니며 움직이기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세계는 약한 사람들을 위해 넓게 펼쳐져 그들을 받쳐준다. 어느 날 밤 마케도니아로 가는 도로에서 그랬던 것처럼, 왼쪽에 떠있는 달과 오른쪽에서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모라바 강으로 세계가 이루어지고, 앞으로 3주일 동안 살 마을을 지평선 뒤쪽으로 찾으러 갈 계획을 세울 때, 나는 내가 그런 것들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이 몹시 만족스럽게 느껴진다."

"여행은 몸을 털고 일어나 기운을 차릴 기회를 제공해준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자유를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일종의 축소를 경험하게 해줄 뿐이다. 일상적인 주변 환경에서 벗어나 자신의 습성을 박탈당한 여행자는 마치 포장지가 벗겨지듯 자기 자신이 보잘 것 없는 크기로 줄어든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는 좀 더 왕성한 호기심과 날카로운 직관을 발휘하게 되고, 첫인상을 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이 도시를 뒤덮어버린 무르익은 금빛 가을이 우리 마음을 뒤흔들어놓았다. 떠돌아다니며 살다 보면 계절에 민감해진다. 계절에 의지하고, 계절 그 자체가 된다. 그리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살아가는 법을 배웠던 장소에서 자신을 억지로 떼어놓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렇게 두려움이 치밀어 오르고 아무리 빵을 씹어도 안 넘어가고 목에 걸리는 순간이 있다. 지독하게 피곤하거나, 너무 오랜 만에 혼자가 되었거나, 아니면 미친 듯이 열광했다가 일순 낙담하는 그 순간, 두려움은 마치 차가운 물에 샤워를 했을 때처럼 길을 돌아서는 당신을 덮친다. 다음 달에 대한 두려움, 마을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움직이는 건 뭐든지 다 위협하는 개들, 조약돌을 주어들고 당신에게 다가오는 방랑자들, 심지어는 이전 숙박지에서 빌린 말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자신의 속셈을 감추고 있던 난폭하고 못된 인간."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부족한 것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기술이 부족하다. 반면에, 우리는 지나치게 발달된 기술이 우리를 끌고 들어갔던 막다른 길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오락문화에 물들 대로 물든 우리의 감수성을 되살리고 싶어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되살리기 위해 그들의 방식을 신뢰하고, 그들은 살기 위해 우리들의 방식을 신뢰한다. 우리는 길에서 서로 마주치지만 서로를 늘 이해하지는 못한다. 때때로 여행자는 조급해한다. 그러나 이같은 조급함 속에는 에고이즘이 상당 부분 자리잡고 있다."

"큼지막한 펠트 상의를 입고 챙 없는 모피 모자를 귀가 안 보이게 푹 눌러쓰고는 주전자 물이 끓는 소리를 듣는다. 언덕에 등을 기대고 별과, 대지가 코카서스 지방을 향해 굽이치는 모습, 그리고 빛을 발하는 여우들의 눈을 바라본다. 
시간은 끓고 있는 차가 되어, 드문드문 이어지는 말이 되어, 담배가 되어 지나간다. 그러다 보면 동이 튼다. 점점 더 밝아지는 빛이 메추라기와 자고새의 깃털을 비춘다……. 그러면 나는 언젠가는 되찾으러 갈 기세로 이 경이로운 순간을 내 기억의 밑바닥에 서둘러 파묻는다. 기지개를 켜고 몇 걸음 걸으면 ‘행복’이란 단어가 내게 일어난 일을 묘사하기에는 너무나 빈약하게 느껴진다. 
결국 존재의 기반을 이루는 것은 가족도 아니고, 일도 아니고,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생각도 아니다. 사랑보다 더 평온한 초월적 힘에 의해 고양될 때의 순간이 내 삶의 뼈대를 이루는 것이다. 삶은 그같은 순간을 인색하게 나누어준다. 우리의 허약한 마음은 더 이상 견뎌낼 수가 없다."

"외딴 곳에서 편의시설 없이 머무는 건 견딜 수가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면, 치안이 제대로 안된 곳에서 의사 없이 사는 것도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우체국원이 없는 곳에서는 오래 못 견딜 것 같다. 오랫동안 우체국으로 가는 길은 의식의 길이었다."

"돈이 돌고 돈다고 말하는 건 잘못이다. 돈은 위로만 올라갈 뿐이다. 제물로 바쳐진 고기 냄새가 세력가들의 콧구멍까지 흘러가듯이 자연스러운 성향에 따라 상승하는 것이다."

"라일락 향기를 맡으니 미쳐버릴 것만 같네."

"이란에서는 불가능이란 게 없다. 영혼들은 최고에 관해서든, 최악에 관해서든 상당한 여유를 가지고 있으며, 당신은 완벽함에 대한 이 지속적이고 광신적인 열망을 참작해야만 한다. 가장 태평스런 사람조차도 이 열망을 이기지 못해 가장 극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 도시는 너무나 냉혹해서 어떤 선물도 일체 나눠주지 않았다. 이 세상처럼 오래되고 이 세상처럼 매혹적인 도시. 그것은 백 번도 더 구운 빵 같았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으며, 화를 내봤자 아무 소용없다. 단 1센티미터도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파한은 우리에게 약속된 경이로움, 바로 그 자체다. 오직 이 도시만을 보기 위해서라도 여행할 만한 가치가 있다."

"세상이 순식간에 망가지고 분열되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다."

"이곳에는 빈곤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삶을 한 줌의 재보다도 더 가볍고 더 순수하게 만들어주는 검소함이 존재할 뿐이다."

"발견했다. 가난이 만들어내는 쓰레기는 부富가 만들어내는 쓰레기와는 다르다. 각 계급은 그 나름의 오물을 가지고 있으며, 일시적인 불평등을 보여주는 사소한 지표들이 여기에도 존재하였다. 우리가 삽질을 한 번 할 때마다 구역이 바뀌었다."

"그는 빚쟁이들을 혼내줄 수 있을 만큼 수도에 친구들이 많았지만, 이런 관계를 싱싱한 새우가 든 바구니(결국 그중 반은 버리게 될)를 카라치에서 우선적으로 얻어내는 데 이용했다. 모래의 한가운데서 멜빵 달린 아코디언 소리에 맞추어 ‘참새우’를 손님상에 내놓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그의 명성에 어울리는 듯 했다. 이것이 그의 성공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가 설렁설렁 관리를 하는 바람에 사키 바는 마치 지나치게 세련되어 오래 지속될 수가 없는 문명처럼 쇠퇴해가고 있었다."

"나는 이 나라가 좋았다. 티에리가 생각났다. 아시아의 시간은 우리의 그것보다 더 넓게 흘러가고, 우리의 완벽한 결합은 내 느낌으로는 십 년은 지속된 것 같았다."

"마치 어떤 악의적인 힘이 그 뿌리를 잘라버리고 내가 사랑했던 수많은 것들로부터 나를 단절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말라 죽어버린 그 추억들."

"샤일록처럼, 여행자에게 ‘살덩어리를 떼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

"그날 나는 내가 뭔가를 움켜쥐었으며, 그리하여 삶이 변화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것은 결코 완벽하게 획득되지 않는다. 세계는 마치 물처럼 잔물결을 일으키며 당신을 통과하고, 당신은 잠시 물 색깔을 띠게 된다. 그러고 나서 그것은 당신이 당신 가슴 속에 담아가지고 다니는 그 텅 빈 공간 앞에, 영혼의 불충분함 앞에 다시 당신을 세워둔 채 물러난다. 당신은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움직이는 가장 확실한 동인일지도 모르는 이 공백, 이 불충분함과 어깨를 부딪치며 싸우는 법을 반드시 배워야만 한다."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날 이 고개를 넘는 여행자는, 꼭대기에 도착하기 한참 전에 무르익어 몹시 뜨거운 인도 대륙의 냄새를 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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