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퓌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 당신은 르퓌에서, 혹은 르퓌를 출발하여 하루 이틀 내에 초록색 렌틸콩으로 만든 요리를 먹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르퓌는 꼬투리 안에 양면이 볼록한 렌즈 모양의 콩 두 개가 들어 있어서 렌즈콩이라고도 불리는 이 콩의 주산지이기 때문이다.
지방은 적고 단백질은 풍부하여 세계 5대 슈퍼 푸드 중 하나라고도 하니 넉넉하게 먹어둘 일이다. 수프나 죽, 스튜로 끓여 먹기도 하고, 소시지나 연어 요리에 곁들이기도 하며, 밥에 넣어도 좋다. 나는 르퓌를 출발,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26킬로를 걸어 첫 날 숙소로 정하는 생프리바달리에에서 4킬로를 더 간 로슈기드라는 마을의 한 숙소에서 이 숙소를 운영하는 가족들과 함께 렌틸콩을 곁들인 소시지 요리를 먹어본 적이 있고, 또 한 번은 르퓌에서 르퓌 초록 렌틸콩을 얹은 타타르식 연어 스테이크 요리를 먹어본 적이 있다. 이게 무슨 요리인가 하면, 생 언어에 갖은 양념을 하여 둥글게 말아 모양을 만든 다음 그 위에 르퓌 렌틸콩을 익혀 얹고(콩 위에 연어를 얹기도 한다) 타타르 소스를 뿌린 요리다. 세 번째는 르퓌 순례길이 아닌 스티븐슨의 당나귀 길을 걷다가 르퓌 렌틸콩으로 만든 수프를 먹어보았다. 그날 길을 잃어 40킬로 넘게 걷고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밤늦게 숙소에 들어선 내게 주인장은 이 수프를 내놓았다. 이 따뜻한 수프를 한 숟가락 떠서 입에 집어넣는 순간 나는 순식간에 행복해졌다. 그것은 마법의 렌틸콩 수프였다.
이 렌틸콩은 “가난한 자들의 캐비어”라고도 불린다. 영양가가 높으면서도 값이 싸기 때문이다. 콩류 중에서 이만한 건 없다. 이 콩의 가장 큰 장점은 크기다. 지름이 4, 5밀리미터밖에 안 될 만큼 매우 작고, 표피가 강한 풍미를 풍긴다. 표피가 매우 얇고 전분을 거의 함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단시간에 삶을 수 있어서 식감이 찰지고 소화도 잘 된다. 초록색 렌틸콩을 삶으면 갈색으로 변한다.
르퓌가 자리잡은 프랑스 오베르뉴 지방의 갈로로망 유적지를 발굴한 결과 렌틸콩은 2천 년 전 이상부터 프랑스에서 재배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콩이 이렇게 오래 전부터 이 지역에서 재배된 것은 아마도 이곳 화산지형의 여러 가지 자연적 요소가 결합하면서 독특한 재배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르퓌 주변에서는 천 명 가량 되는 농민들이 약 3,900 헥타르의 땅에서 아니시아라고 부르는 이 옛 품종을 재배하고 있다. 이 콩을 파종하기 좋은 시기는 땅의 온도가 5도 이상 되는 3월에서 4월이다. 해발 600미터에서 1,200미터 사이에 위치한 재배지의 토양에는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다. 르퓌의 초록색 렌틸콩은 거의 대부분 매우 비옥한 화산성 토양에서 재배되기 때문에 공기 중의 질소만 섭취해도 잘 자란다. 그렇기 때문에 화산성 토양과 소기후가 미치는 영향이 결정적이어서 재배 지역이 르퓌 남서쪽의 캉탈 지방과 마르즈리드 산악지대, 르퓌 남동쪽의 오비바레 지방으로 한정되어 있다. 여름이 시작되어 일조량이 풍부해지고 덥고 건조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르퓌의 초록색 렌틸콩은 본격적으로 익기 시작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지역은 기후가 지나칠 정도로 건조하지는 않기 때문에 렌틸콩의 전분 함유도가 높아지지 않아서 표피가 적당하게 부드러워진다. 이 콩의 수확기는 7월말에서 9월초 사이다.
이 콩을 넣고 밥을 할 때는 굳이 미리 물에 담가놓을 필요가 없고 바로 쌀 위에 얹으면 된다. 로슈귀드 숙소의 주인장 말에 따르면 콩과 같은 양의 물을 넣고 25분 삶으면 다 익는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