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게 왜 프랑스가 좋은지 물었다. 그런데 난 프랑스든 미국이든 어느 나라를 특별히 좋아하진 않는다. 그런데도 내가 20년도 더 전에 이 나라를 택한 것은 불문학 전공이어서 상대적으로 적응하기 쉽다 생각했고, 또 공부도 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나는 그 당시 한국의 억압적이고, 위선적이고, 나이와 서열을 따지는 권위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너무 싫어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너무나 갑갑했었다. 어쨌든 프랑스는 법을 지키고, 예의바르고, 개인의 인격을 존중해주는 나라다. 툭하면 빨갱이라고 몰아세우고, 지역감정을 내세우고, 여성과 소수자, 장애인,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고, 비싼 자동차와 핸드백, 시계, 넓은 아파트를 과시하지는 않는다. 프랑스 사람들은 '고마워'요를 습관적으로 되풀이하지만, 나는 이 말의 진정성을 전혀 믿지 않는다. 또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적인 경우가 많아 도무지 정이 안 간다. 세계화가 이루어지고 신자본주의가 도입되면서 약자와 빈민, 이민자가 살기 더 힘들어져가고 있으며, 빈부격차가 점점 더 심해지면서 자유 평등 박애와 톨레랑스라는 가치를 상실해가고 있어 아쉽다. 나는 이런 프랑스에 살고 있고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 것이 거의 확실하므로 이 나라를 좋아하려고 애쓰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외국인이어서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는 파리라는 도시는 좋아한다. 몇 차례의 테러로 위험해졌고, 더럽고, 파리지앵이라는 인간들은 참으로 불친절하고, 집값과 생활비는 비싸고, 교통도 불편하고, 날씨도 안 좋지만 파리라는 도시는 좋아한다. 무엇보다도 나는 미술과 음악, 문학을 사랑하는 예술적 허영심에 가득 찬 사람인데, 이 도시는 그 허영심을 100프로 충족시켜준다. 루브르와 오르세, 오랑주리, 퐁피두 센터 같이 세계 미술사의 많은 부분을 커버하는 미술관이 있고, 이 미술관들과 그랑팔레에서는 평생을 통해 한 번 볼 수 있을까 말까 한 기획전을 1년에도 몇 차례씩 연다. 음악도 마찬가지여서 클래식은 물론 대중음악도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끊임없이 파리를 찾아온다. 물론 지금은 세계 예술의 중심이 런던이나 베를린, 뉴욕 등으로 옮겨갔지만, 파리는 이런 도시들이 갖지 못한 독특한 분위기와 아우라를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파리가 좋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최근에 생긴 것인데, 먹는 즐거움이다. 얼마 전에는 평소에 그다지 관심없던 파티스리 쪽을 기웃거리기도 했었다. 이건 프랑스라는 나라를 전방위적,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싶어하는 내 오지랍의 산물인데, 이걸 떨기에 파리라는 도시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어느 도시에 살거나, 어느 나라에 살거나 중요한 건 자기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부분을 찾아 그걸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돈이 많고 시간이 남아 열심히 전시회, 음악회, 제과점을 쫓아다니는 건 전혀 아니다. 돈도, 시간도 쪼개 쓴다. 그런데도 내가 이 오지랍을 떠는 건 오직 그게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