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를 걷다 1 : 산티아고 순례길의 프랑스 구간인 르퓌길>이 나올 날이 머지 않았다. 그중 한 부분.
◆ 아르테즈드베아른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바로 오른편으로 ‘카고들의 샘(La Fontaines des Cagots)’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샘은 이 표지판에서 머지않은 곳에 있다. 옛날에 프랑스 남서부 지방에서 ‘카고’라고 불렸던 사람들, 즉 나환자들은 성당의 작은 문을 통해서만 성당(순례길 중간의 포도밭 한가운데 문이 두 개인 성당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카고들을 격리하기 위해서였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들은 나병이 전염될지 모른다는 이유로 마을의 성벽 밖에서만 살아야 했고, 같은 이유로 그들의 샘에서만 물을 길어야 했다. 이 ‘카고들의 샘’은 아직 남아 있는 그들의 샘 중 하나다. 나병은 사라졌지만, 이 집단은 오랫동안 격리되어 살아야만 했다. 이들은 나환자라는 표시가 되어 있는 옷을 입고 다녀야만 했고, 성당에도 별도의 문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때로는 성수반도 다른 것을 써야만 했다. 신부는 이들에게 성체 빵을 줄 때 긴 막대기 끝에 매달아서 주었다. 이들의 세례식은 날이 어두워진 다음에만 거행했고, 죽으면 별도의 묘지에 묻었다. 그들에게는 성이 없었고, 결혼도 다른 나환자와 해야 했다. 더욱 고약한 것은, 기독교인 한 사람의 증언과 같은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카고 일곱 명의 증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에게는 직업 선택의 자유도 없었다. 유대인들이 다른 직업은 가질 수가 없어서 고리대금업자가 되었듯이, 이들 역시 거의 대부분의 직업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목수나 석공이 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혁명이 얼어나자 이러한 합법적 차별은 폐지되었고, 세월이 지나면서 이들의 존재는 서서히 잊혔다.
나병환자들의 삶이 힘들고 고달펐던 건 우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고, 여기 « 문둥이 시인 » 한하운이 있어 « 살 끝이 썩어 들어가는 » 이 « 천형(天刑) »을 앓던 사람들의 한과 고통을 노래한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 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꼬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꼬락이 잘릴 떄까지 가도 가도 천 리 먼 전라도 길>
« 전라도 길 -소록도 가는 길에»
#사진설명 : 순례는 우주의 윤회라는 유토피아를 그 자체로 간직하고 있다(프레데리크 그로,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이재형 옮김 ). "어느 순례자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