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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이라는 소중한 사치의 마을, 콩크

by 이재형



"우리는 일체의 사치를 거부하고 오직 느림이라는 가장 소중한 사치만을 누리기로 작정했다."
-니콜라 부비에, <세상의 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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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콩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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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순례자들의 성인 야고보


콩크의 역사는 순례길보다 더 오래 되었다. 골 족이 살던 이 심심산골에 처음으로 소성당이 세워진 것은 메로빙거 왕조 때였다. 이 지역은 7세기에 사라센 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은자(隱者) 다동이 이곳에 자리 잡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819년에 베네딕트수도회 소속 수도사인 메드랄두스가 그와 합류하였다. 이 수도원은 생트푸아의 성유골이 수상쩍은 상황에서 이곳에 도착한 덕분에 융성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864년에서 875년 사이에 아장 근처에 위치한 한 성당에서 아리비스쿠스 수도사가 이 성녀의 유해를 훔쳐왔다고 한다. 성녀는 이처럼 비열한 행위에 개의치 않았는지 거듭해서 기적을 보여줌으로써 몇 백 년 동안 이 수도원의 명성과 번영을 보장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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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담당 신부가 콩크 대수도원 성당의 팀파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콩크에서 가장 눈여겨 꼼꼼히 보아야 할 건축물은 콩크 대수도원 성당의 팀파늄(성당 정문 상부의 삼각형 혹은 반원형 공간 장식으로 성경의 장면이 조각된다)이다. 콩크 대수도원 성당 서쪽 정문의 <최후의 심판> 팀파늄은 그 예술적 가치로 보나 풍요로운 구성으로 보나 규모로 보나(높이가 6.75미터, 너비가 3.62미터) 로마네스크 조각의 걸작이다. 모두 124명의 인물이 조각되어 있는데, 머리가 없어진 조각상이 하나도 없다(반면 큰 도시에 있는 성당들의 입구에 조각되어 있는 조각들은 머리가 대부분 없다. 종교전쟁과 프랑스 혁명 당시 가톨릭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잘려나간 것이다.).
대수도원 성당 앞마당에 도착한 순례자는 지면에서 3.5미터 높은 이 삼각면의 장면들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올려다볼 수가 있다. 9백년이나 지났지만 말이다. 구성은 아주 간단하다. 거대한 반원은 포개진 세 개의 칸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그 사이사이에 글씨가 새겨진 긴 띠가 삽입되어 있다.
요컨대 이것은 글과 그림이 결합된 성경만화의 효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문맹이었으므로 최후의 심판이라는 일화를 글과 그림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조각가는 지상에서 이 조각상들을 하나하나 만든 다음 스무 개의 석판에 붙여 마치 거대한 퍼즐 조각을 맞추듯 팀파늄에 갖다 붙인 것이다.
모든 조각상들은 다른 등장인물들에 비해 균형이 안 맞을 정도로 큰(1.16미터) 그리스도 상을 중심으로 정돈되어 있으며, 모든 인물들의 시선이 그리스도를 향해 있다. 그리스도의 왼쪽에는 지옥이, 오른쪽에는 천국이 있다(순례자가 볼 때는 반대로).
이 팀파늄 조각상이 특이한 것은, 여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그 당시 중세의 일상생활상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간통을 한 여인과 그녀의 정부는 벌겨벗겨지고 목이 한데 묶여 하루 종일 길거리를 뛰어다녀야 했다. 천국의 에루살렘을 밝혀주는 기름등이라든지 지옥문과 천국문에 달린 자물쇠와 열쇠, 푸와 성녀가 풀어주는 죄수들의 수갑, 악마들이 자랑스레 휘두르는 무기들이 다 그 당시에 사용되던 그대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원래 이 팀파늄 조각에는 붉은색(지옥)과 푸른색(천국)이 칠해져 있었다고 하고, 지금도 그 흔적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 비록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거의 다 지워졌지만 말이다. 아마도 이 문 앞에 선 중세의 순례자들은 이 원색의 강렬한 대비를 보며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했을 것이다.
자, 이 팀파늄은 마태복음 25장 31절과 32절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생트푸와 대수도원 수도사들이 이끈 이 로마네스크 조각가의 손이 이렇게 힘차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데 기여한 곳은 여기 말고는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 팀파늄의 한가운데서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 이 예술가는 두 천사가 그의 머리 양쪽에서 풀고 있는 긴 띠에 새겨져 있는 글을 직접 말씀하시는 이 극적인 순간을 돌 속에 고정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그러고 나서 그리스도는 자신의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들어 올린 오른손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선택된 자들을 맞아들이기 위한 것이다. 이 같은 동작은 로마 황제들의 그것이기도 하다. 콩크의 그리스도는 심판자인 동시에 군주다. 심판자와 왕을 뜻하는 JVDEX와 REX가 십자가가 새겨진 그리스도의 후광에 쓰여 있는 게 보인다. 낮추어진 왼손의 움직임은 영원한 형벌을 받을 장소를 죄 많은 자들을 가리켜 보인다. 그리스도는 별들이 흩뿌려져 있는 타원형의 후광 위에 앉아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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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콩크 대수도원 성당 팀파늄 1


자세히 보면 그리스도의 오른쪽 허리 부분의 옷이 깊이 파여 있다. 창으로 찔려 생긴 상처를 보여주려는 것이며, 아마 처음에는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위쪽에 있는 거대한 십자가는 두 천사가 붙들고 있으며, 이 십자가의 횡목 부분에는 <주께서 심판하러 오실 때 십자가상이 하늘에 있으리라>라고 쓰여 있다.
마태복음서에는 <인자가 그의 모든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오시리라>라고 나와 있다. 그리스도의 왼쪽에서 한 천사는 섬세하게 조각된 향로를 들고 있으며 또 한 천사는 <생명의 책이 봉인되도다>라고 쓰인 책을 펼쳐 보이고 있다. 검과 창으로 무장한 두 기사천사들은 악마들과 저주받은 자들을 제지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마태복음 13장의 <천사들이 나와서 의로운 자들을 사악한 자들과 떼어놓으리니>라는 구절이 칼을 든 천사의 방패에 새겨져 있다.
그리스도의 발밑에는 두 천사가 촛대를 들고 있는데,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날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더 이상 빛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 위쪽 양편의 모서리에서는 두 천사가 상아나팔을 불고 있다(<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태복음 제 27장).
그리스도의 바로 오른편에서는 성모마리아가 두 손을 모으고 있다. 그 뒤를 주교복을 입은 베드로 성인이 한 손에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를, 다른 손에는 목자의 홀장을 든 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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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콩크 대수도원 성당 팀파늄 2



이 두 사람의 뒤쪽에 있는 인물들은 후광이 없다. 이들은 성인이 아닌 것이다. 이 삼각판 조각상이 대담한 것은, 아마도 수도사들의 요구에 따라 조각가가 생트푸와 수도원의 역사에 큰 흔적을 남긴 인물들을 새겨 넣었다는 점일 것이다. T자 모양의 지팡이를 든 인물은 아마도 콩크를 세운 은자 다동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다시 네 번째의 수도원장은 다섯 번째 군주를 한 손으로 잡아끈다. 이 수도원장은 베공 3세, 군주는 샤를마뉴 왕일 것으로 짐작된다.
샤를마뉴 대제는 이 수도원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용서받아야만 할 죄도 많이 지었으므로 뒤편의 두 인물에게 자기가 수도원에 관대한 행위를 많이 했다는 것을 증명할 성유골 같은 것이 담긴 상자를 들려 따라오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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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콩크 대수도원 성당 팀파늄 3


그리스도의 왼편 아래쪽에는 천국이 탑에 톱니바퀴 모양으로 총안이 뚫려 있고 기둥과 아치가 있는 “천상의 예루살렘(영원의 도시)” 모양으로 표현되어 있다. 한가운데에는 아브라함이 두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을 안고 있으며, 그 양쪽의 아치 안에는 두 명씩 짝을 지어 앉아 있다(등을 들고 있는 정숙한 처녀들, 종려나무 잎을 들고 있는 순교자들, 양피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예언자들, 책을 들고 있는 사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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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콩크 대수도원 성당 팀파늄 4


괴물(뱀이나 악어, 용의 형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레비아탄)이 지옥 입구에 버티고 서서 영벌을 받은 자들을 집어삼키고 있고, 악마가 선민들을 뒤돌아보며 영벌 받은 자들을 괴물의 입 속에 밀어 넣고 있다. 지옥문 오른쪽에 다른 등장인물들보다 키가 큰 인물이 있는데, 몸뚱이들이 뒤집혀져 있기도 하고 엉켜 있기도 한 이 혼란스러운 세계를 지배하는 루시퍼(사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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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콩크 대수도원 성당 팀파늄 5


지옥의 장면들로 말하자면, 일종의 <공포의 교리문답>이다. 가장 무시무시한 고문은 얼핏 풍자나 익살로 보이기도 한다. 꼭 우리의 마당극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한 교활한 악마는 영혼의 무게를 다는 장면에서 저울의 판을 엄지손가락으로 살짝 누르고 있다. 속임수를 쓰는 것이다. 아니면, 현세의 귀족들을 조롱하는 걸 보라. 지옥에서 왕은 완전히 벌겨벗겨졌지만 머리에는 왕관을 아직 쓰고 있다. 이 왕 앞에서 악마는 복종의 표시로 무릎을 꿇고 있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조롱기가 느껴진다. 우리의 벌거벗은 임금님 동화가 생각나지 않는가?
아니면, 주교는 악마가 휘두르는 낚시꾼 그물에 걸렸다. 주교의 홀은 뒤집혀 있다. 또 있다. 이 지옥에서는 사냥감이 사냥꾼을 불길에 굽고 있다. 말하자면 지옥에서는 현세의 현실이 뒤집혀져 있는 것이다.


이 칸에 들어 있는 인물들은 저질러서는 안 되는 죄, 즉 교만(갑옷을 입은 기사는 쇠스랑으로 공격을 받고 말에서 떨어졌다)과 사치(간통을 저지른 여인과 정부의 목이 밧줄로 묶여 있다), 나태(영벌을 받은 자가 사탄의 발밑에 누워 있다), 탐욕(한 남자가 목에 돈주머니를 건 채 교수형에 처해졌다), 중상모략(악마가 영벌을 받은 자의 혀를 뽑고 있다), 분노(악마가 목구멍에 칼이 꽂힌 채 지옥으로 떨어진 자의 뇌를 먹어치우고 있다), 허영(악마가 영벌을 받은 자의 하프를 빼앗고 집게로 그의 혀를 뽑고 있다)의 죄를 저지른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옥 장면은 그 위에도 있다. 영벌을 받아 꼬챙이에 꿰어져 구워지는 자, 두 발이 묶인 채 거꾸로 매달려 포도주를 토해내고 있는 주정뱅이, 쇠가 녹은 걸 마셔야 하는 화폐위조자, 낚시그물로 생포한 나쁜 수도사...


악마들은 텁수룩한 머리와 균형이 안 맞는 몸뚱이, 뿔, 튀어나온 눈, 찡그린 얼굴 등 괴상한 겉모습을 하고 있다.


요컨대 콩크 생트푸아 성당의 팀파늄은 천국과 지옥을 간단한 방법으로 대립시킴으로써 최후의 심판이라는 주제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이 주제는 로마네스크 예술에서는 매우 드물게 등장하기 때문에 이 시대에 이 주제를 표현한 작품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르네상스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미켈란젤로와 프라 안젤리코,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등 많은 화가들이 이 주제에서 영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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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파리 노트르담 성당 최후의 심판 문의 팀파늄

파리 노트르담 성당 최후의 심판 문의 팀파늄 일부 CC BY-SA 3.0.jpg

사진. 파리 노트르담 성당 최후의 심판 문의 팀파늄 일부


콩크의 푸아 성당 팀파늄은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 최후의 심판 문 위에 붙어 있는 팀파늄을 연상시킨다.


맨 아래 상인방에서는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양쪽 끝에 서 있는 천사들의 나팔 소리에 깨어났다. 모두가 옷을 입고 있는 이 죽은 자들 가운데는 교황도 있고 왕도 있고 여자들도 있고 무사도 있으며, 심지어는 흑인 남자도 있다. 남자든 여자든 지위가 높든 낮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모두가 최후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 위쪽 칸에서는 미카엘 대천사가 죽은 자들의 영혼의 무게를 재기 위해 저울을 들고 있으며, 그 오른쪽에서는 두 악마가 저울을 잡아당기고 있다. 천국으로 들어갈 선민들은 왼쪽에 모여 있고, 영벌을 받은 자들은 사슬에 묶여 지옥으로 향하고 있다.


맨 위 칸에서는 창에 찔린 상처를 보여주려고 상의를 반쯤 벗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신성한 재판을 주재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좌우측에서는 천사들이 그리스도의 수난의 도구인 창과 십자가를 들고 있다. 또 두 천사 옆에는 각각 성모 마리아와 세례 요한이 무릎을 꿇고 그리스도의 용서를 빌고 있다.


팀파늄을 둘러싼 부쉬르의 아래쪽 박석(薄石)을 보자. 영벌을 받은 자들 쪽에는 지옥의 장면이 펼쳐져 있고, 천국으로 가는 선민들 쪽에는 족장들이 있는데, 그중에는 영혼들을 옷자락에 감싸 안고 있는 아브라함도 보인다. 오른쪽 다섯 번째 부쉬르에는 재미있는 조각이 있다. 관을 쓰고 배가 불룩 튀어나온 악마가 영벌을 받은 부자와 주교, 왕을 육중한 몸으로 깔아뭉개고 있는 것이다.


원래 콩크 대수도원 성당의 최후의 심판 문도,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최후의 심판 문도 화려한 색깔로 채색이 되어 있어서 문 앞에 선 신자는 한층 더 강렬한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더 열심히 하나님을 믿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한 다음 성당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성당 문은 성(거룩한 세계)과 속(속된 세계)을 갈라놓는 경계선이며,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창세기, 28장 17절)


나중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무와싹을 지날 때 보게 될 무아싹 대성당의 팀파늄은 1,110년에서 1,130년 사이에 만들어졌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로마네스크 시대라고 부르는 이때부터 성당 문이 장식되기 시작한다. 종말론이 확산되면서 성당 문을 최후의 심판 부조로 장식하고, 여기서 그리스도는 준엄한 심판자 모습으로 나타나 신자들의 성찰과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다.

담당 신부가 콩크 대수도원 성당의 팀파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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