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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l 21. 2018

-당나귀와 함께 여행하고 싶다

사는 게 늘 이렇다. 
뭔가 간절히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뭔가 간절히 안 하고 싶은 것에 우선순위가 밀려 못하고 있다. 항상 그랬다. 
8월말까지 지독하게 어려운 원고를 마친 다음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이 끔찍하도록 지겹고 따분한 작업 때문에 여행 계획은 머리 속에서만 머물러 있다. 하지만 언제는 안 이랬던가.

 


파니 오스본


<보물섬>,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를 쓴 영국작가 스티븐슨은 1876년 스물여섯 살 때 프랑스의 바르비종을 여행하다가 자기보다 열 살이나 많은 유부녀 파니 오스번을 만나 한눈에 반한다. 이 미국 여성은 화가로서 남편과 별거하며 두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서로 사랑하게 된 두 사람은 결혼하고 싶어 했으나 파니는 아직 이혼을 한 상태가 아니어서 1878년 이혼을 하러 미국으로 돌아갔다. 스티븐슨은 그녀를 따라가려고 했으나 돈이 없는데다가 아버지가 만일 두 사람이 결혼하면 경제적 지원을 끊어버리겠다고 위협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에 파니가 과연 결혼을 해줄까 하는 회의까지 겹친 스티븐슨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는 1878년 9월 르퓌앙블레(르퓌 순례길이 출발하는 바로 그 도시!) 남쪽의 모나스티에쉬르가제이으라는 마을에서 모데스틴이라는 이름의 암당나귀에 짐을 싣고 남쪽으로 열이틀을 걸어 생장뒤가르라는 마을에 도착한다. 
230킬로. 블레 지방과 로제르 지방, 게보당 지방, 세벤 지방을 통과했고, 랑고뉴, 뤼크, 르 블레이마르, 카미사르 전쟁이 발발한 르퐁드몽베르, 플로락, 생제르맹드칼베르트 같은 마을을 지나갔다. 
그리고 1879년 이 12일간의 기록을 <당나귀와 함께 세벤을 여행하다>라는 책으로 펴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바로 이 여행이다. 나도 스티븐슨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www.thefrenchcollection.net/blank-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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