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면 어디에 담아야 할까. 마음은 물 같은 것이라 여기서 저기로 옮기려면 보조 도구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내 기준에서 마음을 담을 수 있는 도구는 시간뿐이다. 나는 시간을 쓰지 않는 관계를 믿지 않는다.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시키지 않아도 시간을 쏟아붓게 된다.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다. 바닥이 뻔히 보여도 도무지 아낄 수 없게 된다.
정수기에 물 뜨러 갈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쁜 날이었다. 원래 J와 저녁을 먹으려고 했었는데 얼마나 늦어질지 예측할 수 없어 파토를 냈다. 일방적으로 약속을 깨뜨리고 상대를 서운하게 하는 일이 반복될 때마다 사실 무서웠다. 이렇게 일만 하다가 옆에 아무도 안 남게 되면 어쩌나. 나는 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쓰는 데 인색할까. 바쁘다는 건 사실 핑계가 아닐까. 밤늦게 사무실에서 나와 휴대폰을 확인하니 J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아직 퇴근 못 했어? 밥은?’ 두 시간 전에 온 카톡을 여태 확인하지 못한 미안함에 서둘러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데 눈앞에 J가 나타났다.
“언제부터 와 있었어? 전화하지!”
“내가 기다리고 있으면 신경 쓰여서 일하는 데 방해 되잖아.”
“카톡 답장도 없는 놈 뭐가 예쁘다고 와서 기다려. 너도 퇴근하고 피곤할 텐데. 지금 식당 문 다 닫아서 어디 갈 데도 없어.”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얼굴 보고 좋잖아.”
J는 나에게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그의 우선순위에 늘 내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마음은 이런 식으로 전해진다.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고 일 년에 한두 번 겨우 얼굴을 비추는 내 마음은 아마 엄마 아빠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미안...)
나의 ‘시간 사랑론’을 듣던 팀원 하나는 이런 의견을 내놓았다.
“저는 좀 다른데. 저한테 있어서 마음의 크기를 가장 투명하게 보여주는 건 돈인 것 같아요. 사랑이 식으면 제일 먼저 그 사람한테 쓰는 돈이 아까워지더라고요.”
“저는 두 사람을 섞은 버전! 선물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보이지 않아요? 똑같은 가격이어도 카톡 선물하기 베스트 랭킹에 있는 선물이랑 가게 가서 직접 골라 포장해 온 선물이랑은 담겨있는 정성이 다르니까. 가게에 가는 시간, 선물 고르는 시간, 나를 만나러 오는 시간. 그 하나하나가 다 마음이잖아요.”
“저희가 지금 하는 이야기랑 비슷한 맥락의 테스트도 있어요. ‘사랑의 언어’ 테스트라고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중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1의 사랑의 언어를 고르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