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날 너무 사랑해서, 시험에 들게 하실지라도 오래 괴롭히지 않는다구
지난 주말 밤, 퇴근하고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던 엄마가 웅비야 하고 불렀다.
이어지는 말은 그 날 아침, 알람 보다 일찍 눈을 떠서 가만 누워있는데 콧물이 찌익 흘러서 대충 스윽 닦고
일어나 거울을 보니 콧물이 아니라 피였다는 얘기. 평생 한 번도 코피를 흘려본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코피를 흘렸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데 엄마 코에서 다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 어? 지금도 또 코피나
-이것봐 이렇게, 오늘 아침에도 이렇게 코피가 나더라니까
엄마는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세면대에서 코피를 씻어냈다.
나는 뒤쫓아가서 몸을 앞으로 숙이고 코를 꽉 막아 같은 상식적인 말들을 건넸다.
근래에 2주 동안 유럽 여행을 다녀오고, 다녀와서 바로 추석에 일하느라고 몸이 곤했나보다 생각했다.
곧 멈출 줄 알았던 코피는 십분이 지나도록 멈추지 않고, 점점 더 많이 나기 시작했다.
뭔가 슬슬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나는 <코피가 안 멈춰요>라고 바로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했고,
건조한 환절기에 코 안의 혈관이 터져서 그렇다는 이야기, 백혈병 증세라는 이야기 등등이 검색되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바로 응급차를 불렀고 엄마는 휴지와 수건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고 응급차에 실려 갔다.
주말밤이기도 했고, 응급차이기도 했으니 근처 가장 큰 종합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응급센터에는 밤 열한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불구 환자들로 북적였고, 어째 응급센터인데도 사람들은 다 멀쩡해보였다. 입으로 코로 피를 철철 흘려서 수건으로 틀어막고 기다리는 우리엄마가 제일 위급해 보였다.
우린 그렇게 앉아서 삼십분인가를 더 기다렸고, 그 곳의 환자들이 다 흘끔거리고 쳐다볼 정도로 피 흘리는 엄마를 그렇게 기다리게 해서 난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흥 큰 일은 아닌가보네 이렇게 두는 걸 보면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의사선생님의 응급처치가 있었고, 그 응급처치란 코 안에 거즈를 엄청나게 쑤셔넣는 거였다. 본래 코의 크기보다 두 배는 부풀어 오를 정도로 거즈를 아주 꽉꽉 넣어 막아놓고는 내일 아침 이비인후과에 가서 거즈를 빼야하고 절대 혼자서는 거즈를 빼지 말 것, 지금 응급센터에는 기구가 없어서 이 정도 처치 밖에 못 해주니 혹시라도 피가 다시 거즈를 뚫고 나오기 시작하면 바로 응급실로 올 것 등의 안내를 받고 귀가조치 되었다. 내가 응급차에 실려가며 전화했던 언니는 처치가 다 끝난 다음에 남자 친구의 차를 타고 겨우 병원에 도착했고, 언니 남자 친구의 차로 우리를 집에 데려다주며 마무리 되는가 싶었다. 새벽 세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고 엄마는 온 김에 집에 있는 양념 게장을 언니에게 퍼주며 그렇게 가벼운 소동 정도로 끝나는가 싶었다.
엄마도 나도 피곤했고, 곧바로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내일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엄마 대신 직장에 전화해서 대타를 빨리 구할 것을 말하는 일만 남았었다.
엄마는 숨쉬기도 힘들 정도로 코가 꽉 틀어막혀 있으니 내가 대신 전화해야 했다.
아침 일곱시가 되었고, 나는 엄마 직장에 전화해서 어젯밤 이런 일이 있어 지금 출근을 할 수 없는 상황임을 설명하고 전화를 끊는데, 엄마가 다시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피가 거즈를 다 뚫고 코로 입으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피가 코로 못 나오니 입으로 거의 토하듯이 나왔는데, 엄마가 말하기도 힘들 정도로 피를 세면대에 토하며
-웅비야 엄마 질식할 것 같아
라고 말했다. 너무 놀란 나는 일단 족집게를 찾아 엄마 코에 틀어박힌 거즈를 빼주었고, 코가 뚫리니 피는 점점 더 많이 나기 시작했다. 당장 119에 전화를 하고는, 어젯밤처럼 세면대를 붙잡고 피를 토하는 엄마에게 속옷과 나갈 때 입을 옷들을 입혀준 다음, 나도 당장 옷을 갈아입고 가방에 핸드폰, 지갑을 던져넣은 뒤에 수건 위에 휴지를 두껍게 쌓아올려 엄마의 코와 입을 막고 응급차가 기다리는 일층으로 내려갔다.
피는 말도 안되게 많이 나왔다. 세면대가 막혀 내가 손으로 휘휘 저어 뚫어야 했을 정도로 핏덩어리가 쏟아져 나왔다. 응급차에서는 수건으로 감당이 안되니 비닐에 피를 받았고, 그렇게 우리는 귀가 조치를 받고 다섯시간도 안 되어 다시 같은 응급실 침대에 눕게 되었다. 이번엔 어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피가 쏟아졌고, 대기 시간없이 바로 응급실 침대에 누웠다. 어제는 응급차에서 내려 병원으로 걸어갔는데 이번엔 침대에 실려 바로 병원으로 들어갔다. 어젯 밤에 한 번 했다고 나는 곧바로 원무과로 달려가 모든 수속을 일분만에 다 마치고 엄마 옆으로 갔다. 응급센터 의사선생님은 어제와 똑같이 거즈를 코가 미어터지도록 쑤셔넣었고, 피를 뽑아가서 피검사를 한 뒤 이비인후과 검사를 받자고 했다. 피 검사는 두시간 가량 걸리고 검사 결과가 나와야 의사선생님을 본다고 했다. 그렇게 또 응급실 침대에서 봉지를 아래에 받치고 피를 뚝뚝 흘리며 세시간 가량을 기다렸다.
이번에도 나는 언니에게 당장 전화를 했고, 언니는 어제보다 훨씬 빨리 응급실에 도착했다. 언니도 엄청 놀랐을거다. 내가 이번엔 울먹이면서 전화했었다. 엄마가 지금 다시 응급실에 실려가고 있어 피가 어제보다 두배는 더 나는 거 같아 하면서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이비인후과에 올라가 의사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수맥찾는 봉 같은 걸로 엄마 콧속을 카메라로 보고 피를 닦아주고 하더니, 지금 자세히 살펴봤는데 콧 속이 너무 깨끗하고 피 검사 결과 아무 이상도 없다고 했다.
-아무 이상도 없다구요? 피가 정말 많이 났어요. 심지어 눈으로도 피가 막 솟구쳐 올랐어요
-그런게 보기에 좀 섬뜩할 수 있는데, 그런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크게 병이 있는게 아닙니다.
보세요, 콧 속이 정말 깨끗하죠?
화면으로 콧 속을 막 보여주고 웃으면서 말하니 그런가보다 하는데, 그럼 대체 어디서 피가 났다는 거지?
-저 혹시 그럼 백혈병일 확률은 있나요?
아무래도 검색 결과에 백혈병 증세일 수도 있다는 말이 마음에 걸려 슬쩍 물으니,
의사선생님이 웃으면서 피 검사 결과를 보면 백혈병일리는 없다고 했다. 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여러 수치들이 모두 정상이라고 했다. 피를 많이 흘린 거에 비해서 모든 수치가 정상이라, 집에 가도 된다고 했다.
이러다 코피가 다시 나면 다시 응급실을 와야 하지만, 지금으로썬 너무 깨끗하고 모든 게 정상이라는 말을 듣고,
그렇게 우리는 또 귀가 조치 되었다. 집에 가는 길에 유명한 갈비탕 집에 들러서 엄마는 갈비탕 나는 설렁탕을 먹으며, 소감을 나눴다.
엄: 어떻게 피가 그렇게 났는데 아무 일도 아닐 수가 있지?
웅: 그게 좀 신기하긴 한데, 의사선생님이 아무 일도 아니라잖아
사실 나올 수 있는 결과 중에 최상의 결과가 나왔어, 아무 일도 아님!
엄: 아니 그게 참 신기하다니까
웅: 진짜 신기하지, 그렇게 호러 영화처럼 피를 흘렸는데 아무 일도 아닌게...
난 큰 병인 줄 알고 진짜 쫄았잖아
엄: 엄마도. 아니 이게 대체 뭔 일인가...살면서 한 번도 코피를 흘려본 일이 없는데
웅: 드라마 대사가 생각난다. "신이 날 너무 사랑해서, 시험에 들게 하실지라도 오래 괴롭히지 않는다구 날!"
이번에 우리한테 딱 어울리는 대사지. 어쨌든 모든 경우의 수 중에 최상의 수가 나왔잖아, 아무 병도 아님!
엄: 근데 언니는 어디갔니?
웅: 엄마 검사 결과까지 듣고는 너무너무 피곤하다고 죽는 소리를 하면서 집에 갔어
엄: 웜메 그 자식 그거 몸 관리 안해가지고 엄마보다 먼저 장례 치르게 생겼네
웅: 내가 두 사람 장례 다 치르게 생겼어 이그
그렇게 택시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오후 1시 경이었다. 이번엔 진짜로 끝났구나 했다.
진짜로 진짜로 큰 해프닝이었구나 하하 별 일이 다 있네 했다.
거의 잠을 못 잔 우리는 또 다시 바로 침대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눕자마자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는데, 웅비야 하는 소리가 들려 눈을 뜨니 엄마가 얼굴에 피 범벅을 하고 방 문가에 서있었다. 아 정신이 아뜩했다. 이게 대체 무슨...
바로 응급차를 불렀고, 또 다시 엄마에게 옷을 입히고 나도 옷을 입고, 가방에 물건들을 던져넣고 양말에 물수건까지 챙기고, 다시 수건과 휴지로 피를 틀어막고 일층으로 내려갔다.
응급실 침대에 앉아 비닐에 피를 받고 있으면서도 엄마는 계속 입가에 묻은 피를 닦고, 양말을 안 신고 왔다고 운동화도 안 벗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편의점에서 양말을 사다주자 그제서야 운동화를 벗었다. 잠 옷으로 입던 티를 그대로 입고 병원에 가니 이것저것 경황 없는 와중에 속옷 끈이 보이기도 했는데, 엄마는 그것도 계속 신경쓰고 불편해했었다. 그렇게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그래서 이번엔 목이 좁은 티를 입히고, 양말과 물티슈를 챙겨서 갔다. 응급실에 도착하니 오후 3시쯤, 간호사와 의사들이 웅성거렸다.
-어머 저 분 또 오셨어 어떡해...
이번에야말로 보통일이 아님을 직감한 나는 오히려 침착해졌다. 머릿 속으로 엄마가 들어 놓은 보험들을 생각하고, 오전 알바, 오후 알바 둘 중 어떤게 병수발 하기에 더 좋을까 생각했다. 혹시 유럽 여행을 다녀온게 도화선 같은게 되서 엄마가 아픈 건 아닐까, 엄마에게 유럽을 보여주고 싶다라는 마음이 내 욕심이었나보다..라고도 생각했다. 아니야 오히려 아프기 전에 같이 여행을 다녀와서 너무 다행이야, 내가 만약 그리스에 있었으면 어쩔 뻔 했어, 엄마가 지금 혼자였으면 진짜 어쩔 뻔 했어, 이게 내가 한국에 온 이유야.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주문을 걸었다.
이번엔 엄마가 말도 하지 않고 웃지도 않았다. 두번 째 실려왔을 때까지만 해도 내 말에 대답도 하고, 가끔 희미하게 웃기도 했는데 이번 엔 내가 말을 걸어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멍한 눈빛으로 비닐을 대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세 번째라고 진짜 익숙해진 나는 병원의 비닐을 서너장 뽑아 주머니에 넣고, 휴지를 두세장 씩 겹쳐 접어서 엄마가 언제든 입가를 닦을 수 있게 옆에 놓아주고, 엄마의 신발을 벗겨 양말을 신겨주고, 가져온 외투를 발위에 덮어주고, 물티슈로 눈가와 입, 목덜미 손 등등 피가 묻은 모든 곳을 깨끗이 닦아 주었다. 손톱 사이사이에 낀 피들은 닦이지가 않았지만, 손톱을 제외하고는 꼼꼼하게 피를 다 닦아주고 옷 매무새를 말끔히 해주고, 중간중간 피 받는 비닐을 새 것으로 갈아주고, 피를 흘린 적 없는 사람처럼 보이게, 옆에서 꼼꼼히 돌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다른 사람이 보기에 티가 나도록 계속 닦아주었다. 이번엔 거의 기다리지 않고 바로 이비인후과로 올라갔다.
이비인후과로 올라가 더 깊은 곳까지 검사를 하니, 콧 속 너무 깊은 곳에서 혈관이 터져 이 전에 봤을 땐 못 찾았었다고 했다. 터진 혈관을 찾아 전기로 지지면 오분이면 되는 일인데, 그 터진 혈관을 못 찾아 어젯 밤부터 계속 그 혈관에서 피가 났던 거였다.
안심이 됐다. 피가 어디서 나는지, 왜 나는지 찾아서. 아까 왔을 때 잘 좀 찾아주지 하는 원망의 마음이 안 생긴건 아니었으나, 피가 어디서 나는지 찾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너무 커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에도 피가 대체 어디서 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 나는 저 피가 엄마의 몸 속 어디서 흘러나온 것인가, 어디서 저렇게 많은 피가 쏟아졌을까를 찾는 검사들을 거치며 비극의 날들을 예비했겠지.
얼마나 깊은 곳에서 혈관이 터졌는지, 그 수맥 찾는 봉 같은 걸 콧 속으로 집어넣어 지질 수 있으면 다행인데,
너무 깊어서 못 지지면 아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거의 눈 근처까지 봉이 들어가는 듯 했다. 아무리 아파도 아픈 티를 거의 내지 않는 엄마가 아이구아이구 앓는 소리를 냈다. 엄마한테 저 정도 소리가 나면 진짜 아픈거다. 중간엔 엄마가 그대로 기절했다. 그 동안 피를 너무 많이 흘린데다가, 전기로 지지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워 기절해버렸다. 엄마엄마 하고 불러도 아무 미동도 없었다. 십분인가를 기절해있다가 다시 깨어나 겨우 터진 혈관을 지졌다. 그리고 스스로 녹는 거즈로 지진 혈관 앞을 봉한 뒤, 진짜로진짜로 끝났다. 전기로 지져진 혈관을 화면을 통해 눈으로 보니, 몇 미리 밖에 안되보이는 혈관이 터졌는데 어떻게 저기로 피가 그렇게 많이 나왔을까, 손목 그으면 진짜 죽겠구나 싶었다. 어디서 피가 나는지 눈으로 보고, 그 곳이 봉해진 것 까지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너무 안심이 되서 저런 뻘한 생각도 들고.
이번엔 항생제, 진통제 등등 약까지 처방 받고, 내일 다시 와서 확인해야 하니 의사선생님 예약도 잡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침대에 누워 수액도 두 봉지나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엄마는 기진했다. 나도 힘든데 엄마는 오죽할까. 집에 돌아오니 저녁 일곱시였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는 또 실려갈지도 모르니 머리를 감고 샤워를 했고, 나는 비닐과 수건, 양말 등을 담은 응급실 가방을 문가에 챙겨두었다.
이번엔 이십초만에 갈 수 있어 라는 섬짓한 농담도 하면서.
우리는 9시도 못 넘기고 각자의 침대에 쓰러져 잠들었고, 다행히도 다음 날 아침까지, 그리고 11시 25분에 예약한 의사선생님을 만나 다시 검사를 받을 때까지, 엄마는 피를 흘리지 않았다. 검사 결과도 아무 이상 없음 으로 나왔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엄마는 다시 피를 흘리지 않았다.
웅 : 엄마 우리 머리하러 갈까?
엄: 엄마 머리해야 돼 뿌리염색도 해야하고
웅: 나도 파마하고 싶어, 우리 머리하러 가자. 엄마 고생했으니까 내가 머리 쏜다.
엄: 고생은 우리 웅비가 엄마 따라다니느라 고생 했지
웅: 아픈 사람이 제일 고생이지, 아픈게 제일 힘들지, 나는 건강한 몸으로 따라다녔는데.
엄: 니 언니는 아까 전화해봤더니, 목소리가 다 죽어가더라. 어린놈이 엄마보다 먼저 송장될라고 하여튼
그렇게 우리는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도 했다.
엄마 머리는 11만원이고 내 파마는 3만원인데, 엄마는 머리 맘에 안 든다고 투덜거리고,
나는 머리 엄청 잘 나와서 만족스러워 하는 중이다.
다음 날 엄마는 출근을 했고, 나는 코감기에 걸려 지금까지 고생중이다.
무슨 콧물이 이렇게 많이 나는지 자다가도 일어나서 코 풀어야 된다.
귀찮아서 안쓰고 미뤄뒀던 엄마와의 유럽 여행기를 다시 맘 잡고 부지런히 써야겠다. 엄마는 매일 밤 자기전에 우리 어떻게 여행했는지 처음부터 차근차근 되짚어 떠올린다고 했다. 혹시 하나라도 잊을까봐. 또 은근슬쩍 기록 안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죄책감이 들었다.
언니한테 카톡이 왔다. 다음 달 엄마 생일인데 뭐할거냐고
박찬호가 발라서 유명하다는 연골크림이나, 엄마가 겨울에 이불이 무거우면 좋겠다고 세네개씩 덮고 자는데,
원앙 금침같은 무거운 솜이불은 어떨까 등을 얘기했다. 다시 이런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서 기쁘다.
시시하고 평범한 대화와 일상들이 계속되는 나의 축복 받은 삶.
역시 신은 날 너무 사랑해서, 시험에 들게 하실지라도 오래 괴롭히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