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좋은 것이라는 광신적인 믿음 아래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불행하고 초조하다.
행복을 한 인간이 추구하는 어떤 상태라고 정의해본다면, 우리 사회에 있는 행복에 대한 이미지는 너무 좁다. 이에 대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시는 자신의 슬픈 드라마에 취해 비극적 인물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 주변인들이다. 아주 간단히 그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음에도 슬프고 가련하고 희생적인 나의 역할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 이 사람들을 슬픔 중독 이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 나는 그게 그 사람들의 행복의 형태다 라고 말하고 싶다. 비극이 행복인 사람들이 있는거지
그들을 희극 속에 던져 놓는다면 자신의 역할을 잃어버리고 얼마나 방황하게 될 것인가
그 사람들에게 오 그게 당신의 행복의 모습이군요 라고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조금은 경이로운 슬픔의 아우라를 가진 인물로 바라봐줘야 완성되는 역할 설정이 깨지기 때문에 그 사람이 행복하길 원한다면 당신은 참 불행하군요 라고 말해주는게 그 사람의 행복을 돕는 것이다.
니체는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망마저 의심하라고 말했다. 내말이 그 말이다. 삶이 나에게 어떤 역할을 맡기는지, 나는 어떤 역할을 맡고자 하는지, 내가 원하는 인물은 눈물을 흘리는 지 무표정한지 눈감고 있는지 웃고있는지, 행복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웃는 얼굴 표상을 깨부수고 자신의 자아와 완전히 부합하는 행복의 이미지를 재창조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