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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환 Apr 08. 2023

냄새의 의미

냄새, 그리고 추억

난 후각이 예민한 사람이다. 


냄새를 잘 맡고 그에 잘 반응한다는 뜻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내 기준에서 후각이 예민한 사람이란 얼마나 그 향을 잘 추억하는 사람인가를 뜻한다. 



살면서 슬픈 시간을 보낼 때도 있고, 그냥 그런 순간을 흘려보낼 때도 있으며, 너무나도 행복한 순간을 만끽할 때도 있다. 그런 “때”들을 슬프거나 행복하다고 규정지을 때, 사람은 날 때부터 기본적으로 탑재 한 다섯 가지 감각을 사용한다.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누가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인간은 이 훌륭한 도구들을 어찌 그리 능숙하게 쓰는 건지 참 의문이다.


이 모든 감각들은 그 순간을 경험하는 대상에게 특정한 감정을 유발하도록 경험을 받아들이는 수단이다. 본능에 충실한 이 다섯 가지 감각들이 작성한 보고서는 최종 결재인인 뇌의 손에 들어간다. 각각의 보고서를 꼼꼼히,  하지만 인간이 감지할 수 없는 무의식의 범위 내에서 검토한 후 뇌는 그 상황을 평가한다.


“감각들로부터 보고받은 내용이 형편없잖아! 부정적으로 느껴야겠군. 슬픔!” 
“전체적으로 아주 긍정적이구만. 행복!”


이렇게 결재가 나면 “감정"들은 뇌가 호명하는 자신의 이름을 듣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서둘러 우리 몸을 누빈다. 이렇게 꽤나 복잡한 절차를 거치고 나서야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복잡한 일련의 과정을 곱씹으니 매일같이 느끼게 되는 감정이 갑자기 소중해진다.  


여기까지는 모든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감정을 인지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여기서 달라지는 점은, 이 다섯 가지 감각 중에서 어느 감각이 제일 활성화되는지이다. 


나의 경우, 후각이다.


내가 다니던 미국 고등학교에는 인근 지방에 위치한 대학교의 대표적인 과목 강의를 고등학생들에게 수강할 기회를 제공했었다. 성공적으로 수료하는 학생들은 고등학교 학점이 아닌 대학 학점 3점을 따갔다. 학교에서 주력으로 삼는 강의들을 제공함으로써 예비 대학생들 사이의 긍정적인 인지도를 높이는 셈이니 대학도 좋고, 고등학생들은 대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학점을 따 놓으니 학생들도 좋은 구도였다. 

11학년일 때, 뉴욕 시라큐스 대학의 심리학개론을 들을 기회가 생겨 냉큼 수강했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오로지 대학 학점을 고등학생 신분으로 미리 따 놓을 수 있다는 신박한 미국 고등학교 시스템에 혹 해서 신청을 했었던 터라 실제 수업 내용에는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다. 어떻게든 관심을 가져 보려 했지만, 영어인척 하는 라틴어로 된 온갖 학술 용어들이 그때 당시 가혹한 미국 학교 적응기를 겪으며 가뜩이나 다루기 어렵던 영어를 더 어렵게 만들어 버렸기에 수포로 돌아갔다. 


여느 때처럼 머리 아픈 단어들을 멀거니 쳐다보고 있다가, 뇌가 감각을 수용하는 과정에 대한 부분이 나왔다. 평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예시를 들기 좋아하던 선생님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자신의 경험담을 예시로 들어주셨다. 수업 시간 중 유일하게 이해하기 쉬웠고 심리학에 제일 가까워질 수 있었던 부분이어서 관심을 갖고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곧 학생들과 공유하게 될 예시를 떠올릴 때면 슬며시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몸을 사선으로 살짝 틀던 선생님. 그분은 간단명료하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 감각 중에서 후각이 제일 기억을 잘한단다. 저번에 길을 걷는데, 무심코 지나가는 사람에게서 나는 향을 맡았는데, 난 단번에 그게 우리 옛 할머니에게서 나던 체취랑 똑같은 향이라는 걸 바로 알아챘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설명하시던 선생님의 몸짓과 흐뭇한 미소가 묻어나는 표정. 

 

일상적인 삶을 살면서도 우연히 익숙한 향을 맡을 때면 무심코 과거를 추억하곤 하던 내 성질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단순히 남들보다 조금 예민한 후각 때문에 익숙한 향기에 즉각 반응하던 것이 아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과학적 사실이었던 것이다. 나만 그런 경험을 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후각을 통해 각인된 기억을 추억하는 깊이는 사람마다 다른 건 확실하다. 


예를 들어, A라는 장소 특유의 향이 기억에 남고, 시간이 지나 B라는 장소에서 그 향을 다시 맡으면 다른 사람들은 A 장소에서 맡았던 냄새를 “기억"하는 표면적인 층에 도달하고 만다면, 나는 더 나아가 맡은 향과 연관되는 거의 모든 것들을 “추억"하는 단계까지 파고든다. 그 향을 맡던 순간의 날씨, 바람의 세기, 듣던 노래, 내 곁에 있던 사람의 표정, 몸짓, 그걸 본 나의 반응… 

다른 사람들은 현재에 머물러 있는 동안 나는 현재를 벗어나 과거의 내 삶을 다시 살다가 오기 때문에, 시간 여정을 마친 후 돌아올 때까지 현재를 사는 나의 모습은 빈 껍데기일 뿐이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장면이 이 상황을 가장 비슷하게 묘사한다. 나의 영혼은 과거로 사라졌지만, 몸은 끊임없이 흐르는 현재에 순응하기 위해 남아있다. 


과거의 냄새를 찾아 떠나는 나의 영혼.jpg  (출처: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96524)


현재를 살아가는 내가 과거의 나를 잠시 들여다보는 정도가 아닌, 시간의 태엽을 감아 현재에서 과거로, 시제를 뒤집어 지나간 삶 그 순간을 살다 온다. 유럽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는 사람들 마냥 과거로 냄새 홀리데이를 떠난다. 그러는 동안 현재에서의 나는 상대방의 말을 듣는 척하거나 길을 걷는 척하며 과거로 떠나 현재 시제에서 부재중임을 숨긴다. 


지나간 순간은 되돌릴 수 없기에 모든 것들은 그 당시 일어났던 일 그대로 재현된다. 


어느 날은 틈만 나면 컴퓨터를 켜고 게임을 하러 발걸음을 옮기던, 아무것도 모르는 인생 풋내기였던 내가 되었다가, 또 다른 날은 원격 수업, 원격 과제에 지쳐 주홍색 석양에 음악을 곁들여 집 주변에 펼쳐지던 풍경을 즐기며 자전거를 타던 판데믹 대학 시절의 내가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여태껏 살아보지 못했던 삶을 경험하며 맡는 향들이, 그리고 내일이면 새롭게 맡게 될 일상 속의 냄새들이 몇 년뒤, 혹은 몇십 년 뒤에 언제, 어떤 장소에서 다시 날 이 자리로 불러올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기대된다. 모순적이게도, 과거로의 여행은 언제나 새롭고, 향기가 불러일으킨 추억 한가운데가 대놓고 부정적인 기억으로 얼룩져 있다고 하더라도 항상 기다려온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설렌다. 


다시 재생되는 인생의 짧은 단편 속 모든 요소들은 이미 일어났던 대로 움직이고 반응한다. 즉, 난 이미 어떻게 될지 알고 있고, 정해진 사건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과거의 특성이 나의 추억들을 과거로 규정짓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다. 편안해서 더욱 그 당시 나의 상황, 감정, 반응에 집중할 수 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는 추억의 연장선상에서 그때 느끼던 감정을 지금 느낀다면 어떨지, 지금의 나는 어떻게 반응할지와 같이 터무니없지만 흥미로운 상상을 해 본다. 정말 사소하기 그지없는 내 삶의 부분이지만, 사소해서 그만큼 소중하다. 결국 나에게 있어 냄새는 과거의 내가 남긴 흔적들과 현재를 살아가는 나를 연결하는 훌륭한 수단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내가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치자. 난데없이 불쾌한 냄새가 나고 그와 동시에 내 눈이 공허해진다면, 그 냄새 때문에 충격을 받아서 그런 게 아니라 그 향을 감지한 과거 속 얼어붙은 내가 반응해서 움직이는 바람에 그 시절로 잠시 짧은 여정을 떠난 것이니, 이해 부탁한다. 나도 사람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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