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 - 199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가수 강산에의 노래입니다. 지금의 청소년들에게는 낯선 노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곡의 백미는 연어의 삶을 힘차게 표현한 가사에 있습니다. 당시 IMF 구제금융으로 힘든 시기를 겪던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 주었지요. 그게 이 노래가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실제로 바다를 거슬러 태어난 하천으로 돌아오는 연어의 여정은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줍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신기합니다. 연어는 그 먼 길을 어떻게 찾아오는 걸까요? 내비게이션이라는 첨단 기기를 갖춘 인간도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목표 지점을 찾아가기란 쉽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비단 연어뿐만이 아닙니다. 철새, 나비, 바다거북 등도 대륙 단위의 긴 거리를 이동하지요. 지능이 미미한 이 생물들이 길을 잃지 않는 비결은 대체 무엇일까요?
연어들은 바다에서 수년을 보낸 후 산란을 위해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되돌아옵니다. 예컨대 태평양의 연어들은 바다를 가로질러 3,000km 이상 이동해 고향 하천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뇌가 크지도 않은 물고기나 새가 이처럼 먼 거리를 기억해 찾아온다는 사실은 과학자들에게도 오랜 미스터리였습니다. 20세기 후반까지도 연어와 철새들이 어떻게 경로를 파악하는지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여러 가설만 무성했지요.
1970년대에 들어서야 과학자들은 단서를 찾았습니다. 연어의 코 안쪽과 철새의 몸 일부에서 미세한 자성 광물인 마그네타이트(자철석) 결정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철 성분의 결정들은 지구의 자기장과 반응하여 특정 방향을 가리키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어요. 쉽게 말해 연어와 철새는 몸속에 생물학적 나침반을 품고 있었던 셈입니다. 과학자들은 연어가 바다를 헤엄칠 때 이걸로 지구 자기장의 방향과 세기를 감지하여 위치를 알아낸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실험에서 인공적인 자기장을 연어에게 쬐었더니, 연어의 회귀 방향이 바뀌는 현상이 관찰되기도 했습니다.
그럼 연어가 오직 자기장만으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고향의 위치를 찾아내는 걸까요?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지구 자기장은 남북 방향을 알려주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동서 방향이나 정확한 지점까지 알려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은 자기장 + α의 메커니즘이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에 대한 여러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일례로 연어는 자기장으로 대략적인 이동 경로를 잡은 뒤, 고향 근처에 이르러서는 후각 신호로 마지막 위치를 찾아낸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하천의 냄새가 바닷물 속에 극미량만 섞여 있어도 맡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미스터리는 남아 있습니다. 연어의 자기장 감각 세포는 체내에서도 극히 드물게 존재하기 때문인데요. 이러한 자기 감각 기관을 어떻게 만들어 활용하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연구에서는 이 자기장 감지 능력이 오래전 세균으로부터 기원했다는 진화 가설까지 제시되고 있지요. 긴 여정을 마치고 고향 하천에 도달한 연어는 짝짓기와 산란을 마친 후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연어의 몸은 강에 녹아들어 영양분이 되고, 이는 다시 치어들의 성장을 돕는 등 자연의 순환이 이어집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힘인 지구 자기장은 연어와 철새 같은 동물들의 신비로운 이동 본능 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사실 자기장은 인류에게도 오래전부터 신비 그 자체였습니다. 자석은 서로 닿지 않고도 힘을 주고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석은 고대부터 ‘마법의 돌’로 인정받았습니다. 11세기 무렵 중국에서 발명된 나침반은 자석의 이러한 성질을 이용해 항해와 지도 제작에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나침반이 종이, 화약, 인쇄술과 함께 중국의 4대 발명품으로 꼽히는 것만 봐도 그것의 인류사적 의미를 알 수 있지요.
그러나 자기장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야 본격화되었습니다. 그 발단이 1600년 영국의 윌리엄 길버트가 쓴 『자석에 관하여(De Magnete)』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길버트는 지구가 하나의 거대한 자석이라고 했습니다. 즉 나침반이 북쪽을 가리키는 현상은 우연이나 천상의 힘이 아니라, 지구 내부의 자성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 발상은 지구를 물리적 법칙으로 설명가능한 대상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죠. 길버트는 자석 구슬을 만들어 나침반 바늘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실험하여 이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이는 과학의 핵심 요소인 실험과 재현성을 보여주는 초창기 사례로 평가됩니다.
길버트의 자석론은 ‘접촉 없이 작용하는 힘’을 과학적으로 사유할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요하네스 케플러는 행성의 운동을 설명하면서 “태양이 일종의 힘을 발휘한다”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즉 태양이 행성을 끌어당기거나 미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고 본 것이죠. 이걸 수학의 법칙으로 확립한 사람이 아이작 뉴턴입니다. 저 유명한 만유인력의 법칙이죠. 보이지 않는 힘이 공간을 가로질러 작용한다는 발상은 중세적 자연관에서는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길버트의 자석론이 그 금기를 깨뜨린 셈입니다. 이로써 힘을 중심으로 자연을 설명하는 근대과학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자기장 연구는 전자기학이라는 일대 혁신을 가져오게 됩니다. 19세기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과 20세기 전자의 발견이 대표적이죠. 그 결과로 전기 모터, 발전기, 통신 기술 등이 등장하게 됩니다. 현대 인류문명에서 전기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지요. 오늘날에도 주변을 둘러보면 스피커, 컴퓨터 하드디스크, 신용카드의 자기 띠 등 자석과 자기장을 응용한 것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자기장을 이용한 가장 놀라운 발명으로 꼽히는 기술이 MRI(자기공명영상)입니다. MRI는 강력한 자기장과 전자기파를 이용해 인체를 상세하게 들여다보는 영상의학 장치입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의학에서 인체 내부를 들여다본다는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 1895년 빌헬름 뢴트겐이 우연히 X선을 발견하면서 새로운 지평이 열렸습니다. 사람들이 처음으로 뼈와 장기를 사진처럼 찍어 볼 수 있게 된 것이죠. 하지만 연조직은 여전히 흐릿했고, 여러 장기도 겹쳐 보여 한계가 뚜렷했습니다. 1970년대 등장한 컴퓨터 단층 촬영(CT)은 수학적 재구성을 통해 단면 영상을 만들어 이 겹침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X선을 써서 연조직의 대비가 약한 건 여전했지요.
이때 등장한 것이 MRI입니다. 그것은 작은 원자핵이 자기장 속에서 특유의 신호를 내는 현상을 규명하려는 연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즉 MRI는 물과 지방 분자의 미세한 차이를 신호로 잡아내, 뇌·근육·인대 같은 ‘부드러운 세계’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MRI가 작동하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초전도 자석을 활용해 인체를 둘러싸는 매우 강한 자기장을 형성한 뒤, 거기에 고주파 자기파를 쏘아 원자핵의 공명을 유도합니다. 이렇게 발생한 신호를 컴퓨터로 해석하면 인체 내부의 단면을 3차원 이미지로 구현할 수 있지요. 수백 톤에 이르는 거대한 자석이 환자 주변에 보이지 않는 자기장 우리를 만들고, 우리는 그 힘을 빌려 인체 속을 들여다보는 셈입니다. 이제 현대의 병원에서 MRI는 뇌와 장기 진단에 필수 장비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병원에서 쓰는 MRI의 자기장 세기는 1.5~3 테슬라 수준이며, 연구용으로는 7 테슬라가 넘는 초강력 장비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MRI를 가능케 한 초강력 자석 기술의 원조는 의학이 아니라 물리학이라는 점입니다. MRI 등장 이전부터 물리학자들은 입자가속기로 물질의 미세한 세계를 탐구해 왔거든요. 양성자나 전자를 빛에 가까운 속도로 쏘아 충돌시키는 이 거대한 장치를 통해 물리학자들은 자연의 기본 입자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고에너지 입자를 작은 궤도 안에 붙잡아 두려면 더욱 강력한 자기장이 필요했습니다. 1970년대부터 물리학자들은 거대한 입자 가속 실험에 필요한 강력한 자기장을 얻고자 초전도 자석을 개발했고, 이러한 기술 축적이 의료용 전신 스캐너의 탄생을 이끌었습니다.
자기장은 병의 진단뿐 아니라 치료에도 활용됩니다. 현대의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자기장 치료 기술로 경두개 자기 자극법(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 TMS)을 들 수 있습니다.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처럼 뇌기능 이상을 동반하는 질환이 그 대상입니다. 그러니까 머리에 코일을 대고 강한 자기장을 발생시켜 뇌신경 세포를 자극하면, 증상이 호전되는 효과가 밝혀졌습니다. TMS는 200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시작으로 약물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우울증 환자 등을 위한 보조적 치료법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 장점은 역시 머리를 절개하지 않고도 뇌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최근에는 강박증 치료, 편두통 완화, 뇌졸중 재활 보조 등 다양한 분야로도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극만으로 뇌 기능을 조절한다니, 그야말로 SF 소설 스토리의 현실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과학자들은 더 나아가 자기유전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자기유전학(Magnetogenetics)이란 말 그대로 자기장과 유전공학을 접목하는 시도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생체 내 특정 세포의 활성을 자기장으로 원격 제어하는 기술을 뜻합니다. 이는 2000년대 후반 뇌과학을 혁신한 광유전학(Optogenetics)에서 영감을 얻은 접근법인데요. 광유전학이란 개념이 좀 어렵게 느껴지는데, 쉽게 말해 이런 겁니다.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을 신경세포에 발현시킨 뒤, 광섬유를 이용해 뇌 깊숙이 빛을 쏘아 특정 뉴런만 선택적으로 켜거나 끄는 거죠. 이 방법으로 뇌 회로 연구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빛을 전달하려면 머리에 케이블이나 광자기를 이식해야 한다는 한계도 있었죠.
그런데 자기장은 외부에서 흘려보내도 뇌를 통과해 전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기장에 반응하는 유전자만 심어줄 수 있다면, 뇌를 열지 않는 방법으로 뉴런을 제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이 자기유전학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자기유전학에서 세계적 성과가 나왔습니다. 2023년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진이 Nano-MIND라는 자기유전학 기술 플랫폼을 개발했는데요. Nano-MIND는 'Nano-Magnetogenetic Interface for NeuroDynamics'의 약자입니다. 이름처럼 나노 크기의 자성 입자와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나노 자석 수용체를 이용해 뇌신경회로를 무선 조종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방식입니다. 뇌 속의 특정 신경세포만 나노 자석 수용체를 만들도록 유전자를 주입한 뒤, 그 주변에 나노입자를 붙입니다. 그리고 바깥에서 회전하는 자기장을 걸어주면, 나노입자가 자기장을 따라 빙글빙글 돌면서 수용체 단백질을 당기거나 밀게 됩니다. 이 미세한 기계적 힘이 해당 뉴런을 흥분 또는 억제하는 원리이지요.
덕분에 머리에 어떤 장치를 꽂지 않아도, 외부 자기장만으로 뇌 속 깊은 곳의 신경세포를 자유롭게 켜고 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연구진은 동물실험을 통해 Nano-MIND 기술로 뇌신경회로가 만들어내는 사회성, 모성애, 식욕 등의 뇌 기능을 자석으로 스위치 켜듯 조절할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따라서 향후 뇌질환 치료나 뇌-기계 인터페이스 개발에도 응용될 수 있는 잠재력을 입증했습니다.
이러한 첨단의 시도는 전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미국의 와일 코넬 의과대학 연구진이 유사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자기유전학 시스템을 선보였습니다. 이들은 유전공학으로 강한 자기장에 반응해 열리는 이온 채널을 개발했습니다. 이걸 쥐의 뇌신경세포에 주입한 뒤, MRI 기기의 초강력 자기장과 임상용 TMS 장치를 이용해 해당 뉴런들을 자유자재로 활성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결과 선택한 신경회로를 켜거나 꺼서 쥐의 움직임을 조절할 수 있었지요. 특히 파킨슨병 모델 쥐에서 비정상적 경련 운동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이 연구는 발표 직후 큰 주목을 받았는데요. 이러한 기술이 파킨슨병, 우울증, 비만, 만성 통증 등의 뇌질환 치료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자석과 자기장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자연 현상입니다. 유치원생만 되어도 자석의 기본 작용에 대해서는 다 알지요. 그러나 그것은 동물들의 경이로운 삶의 비밀이자, 인류 의학을 혁신할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이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끈질기게 탐구해 온 과학의 노력 덕분입니다. 만약 과학자들이 이러한 자연 현상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우리는 연어의 귀소 본능을 영원한 불가사의로 여겼을 것이고, 몸속을 들여다보는 MRI나 뇌를 자극하는 첨단 치료법은 상상도 못 했을 것입니다.
자연이 숨겨둔 수수께끼는 여전히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 신비를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과학의 모험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의 유명한 말입니다. “어딘가에, 뭔가 놀라운 것이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