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스타일 요즘 발라드 모음
명절 분위기에 무신경한 나지만, 이번 추석은 좀 달랐다. KBS 추석 특집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 공연 덕분이다. 3시간짜리 공연을 본방사수하고 이틀 뒤 방영된 특별판까지 복습했다. 정말 명절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고퀄 콘텐츠가 가능하겠나 싶다. 20년 전 북한에서도 조용필 공연을 성사시키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던데, 그 심정이 이해가 간다. 아무튼 그렇게 공연을 두 번이나 정주행했는데도 여운이 오래 남았다. 그래서 지금은 유튜브에서 좋아하는 곡들의 무대만 따로 찾아보고 있다.
사실 내가 조용필 곡들을 좋아하긴 해도, 팬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 음악을 들으며 자란 세대는 더욱 아니다(그래도 공연 셋 리스트의 전곡을 다 아는 건 함정). 그런데 왜 이렇게 이 공연이 좋았을까? 아마도 대가의 음악에 함유된 진한 보편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조용필의 음악에는 시대를 넘어서 공명하는 정서적 코드가 있다. 그걸 공영방송 KBS가 명절이라는 이벤트에 맞춰 작정하고 빵 터뜨렸으니, 안 좋을 수가 없다(수신료의 가치 개쩖).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있다. 노래를 따라 부르던 아재 관객들이 눈물을 훔치던 모습이다. 그 마음이 이해되는 걸 보니 나도 나이를 먹었나 보다(혹시 갱년기가 벌써…?). 아마 그분들에겐 청춘의 희로애락을 함께 한 노래들이었을 것이다. 오래전 어느 사회학자가 조용필을 두고 “뭇사람의 고해성사를 들어주는 성직자 같은 가수”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 문장이 오글거렸는데, 지금 다시 보니 참 적절한 비유였구나 싶다.
생각해 보면 내게도 그런 음악들이 있다. 조용필의 곡들은 아니지만, 가장 열심히 들었던 1990년대의 음악들이 그렇다. 사춘기 또래들 사이에서 음악 좀 듣는다고 잘난 척하고 싶어서, 별의별 장르를 파던 시절이다. 헤비메탈, 얼터너티브록, 프로그레시브록, 브릿팝, 포크록 등등(적어놓고 보니 죄다 록이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 시절의 보편적 감성으로 남아 있는 음악은 스탠더드한 팝발라드들인 것 같다. 때는 마침 변진섭과 신승훈이 열어젖힌 발라드 전성시대였고, 거기에 김형석, 윤상, 정석원, 김현철, 김동률 같은 프로듀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시절 발라드는 장르적으로 대중성과 음악성의 교차점에서 가장 안정적인 선택지이기도 했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접하면서도 오래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요즘도 그런 1990년대풍 발라드가 나온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조용필의 음악이 강렬한 보편성을 발휘하듯, 그 시절을 함께 했던 내 세대의 수요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방증인 듯하다. 조용필의 공연으로 간만에 감성이 되살아난 김에 이 곡들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다만 이미 여기저기서 사골처럼 우려낸 오리지널 명곡들을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최근에 나온 1990년대 스타일 발라드들로 한정해 보겠다.
날이 갈수록 고인 물이 되고 있는 내 플리에서 몇 안 되는 요즘 가수다(…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이미 데뷔 8년 차다). 순순희는 SG워너비와 V.O.S.를 잇는 남성 중창단인데, 옛날 발라드 리메이크가 주력인 이색적인 팀이다. 이 <슬픈 초대장>도 2003년 나온 한경일의 곡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사실 한경일의 원곡 자체가 1990년대 발라드의 연장선에 있었다. 편곡 관점에서 보자면 대략 이런 거다. 피아노 인트로로 시작해 현악기들이 켜지고, 후반에 드럼과 기타가 합류해 풀 밴드로 치닫는다. 이렇게 배경에서 고조되는 감정을 보컬이 이끌어 간다. 기교보다는 호소력, 그러니까 직선적 감정 폭발이 강조되어야 한다. 또 보컬에 리버브를 길게 넣어 홀에서 울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가사에는 계절, 거리, 편지 같은 서정적 어휘를 주로 쓴다.
순순희의 이 곡도 거의 정확히 이 패턴을 따른다. 피아노로 담백하게 시작한 뒤, 오케스트라가 들어오면서 그 시절의 감정 고조법을 충실히 재현한다. 보컬 역시 당시 발라더들의 호소력 기반 창법을 택했다. 여기에 긴 리버브로 공간감을 살린 점, 제목에서부터 ‘초대장’이라는 단어를 쓴 점은 덤이다. 그야말로 1990년대를 상징하는 테이스트들로 도배를 했다. 그런데도 2025년인 지금 들어도 좋다는 게 함정이지만. 내가 음치에 고음고자만 아니었어도, 직접 불러보고 싶다.
벅스 추천으로 처음 접한 곡이다. 첫 소절에서 가수가 조장혁인 건 바로 알았다. 다만 오래전 앨범에 수록된 ‘숨은 명곡’인가 싶었다. 이미 시작부터 너무너무 1990년대스러워서. 그런데 노래를 다 듣고 확인해 보니 이럴 수가, 무려 2024년 곡이었다. 챗gpt의 시대에 이런 나우누리 같은 음악이라니.
이 곡도 <슬픈 초대장>과 비슷한 감정 고조 빌드업을 따른다. 다만 순순희의 깨끗한 보컬과 달리 조장혁은 록 보컬에 가깝다. 특유의 허스키 톤과 강한 비브라토는 '1990년대 절창'의 표본 같은 느낌마저 준다. 이뿐만 아니다. 요즘은 듣기 힘든 호흡 길게 끌기 신공까지 시전했다. 게다가 기타 사운드도 묵직하게 뽑지 않고, 가볍고 맑은 옛날 톤을 일부러 살린 것 같다. 이쯤 되면 1996년작 <그대 떠나가도>와 비교해 뭐가 달라졌는지 모를 지경이다. 조장혁 센세 당신은 대체 지난 30년간 어떤 삶을 살아오신 겁니까… 근데 또 그렇게 말하기에는 이 곡도 참 좋다. 나 같은 고인 물들을 저격하려고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나 보다.
다만 한 가지, 가사가 아쉽다. “담밴 나빠요 입 맞추던 그대 생각에”라니… 이 부분에서 헤드셋을 집어던지고 싶었다. 그래도 노래가 전체적으로 좋아서 참고 계속 들었다.
이 또한 작정하고 만든 곡이다. 프로듀서 정석원이 제작 노트에서 “1990년대의 발라드 작법을 충실히 따른 곡”이라고 밝힐 정도다. 사실 정석원쯤 되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 양반이야말로 1990년대 발라드의 일각을 차지했던 거장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30년 전 본인이 확립한 스타일을 어떻게 재현했는지 살펴보는 게 이 곡의 꿀잼 포인트가 되겠다.
이 곡도 키보드 위주로 잔잔하게 출발한다. 이어서 드럼, 베이스, 기타가 더해지며 볼륨을 키워간다. (앞의 두 곡과 마찬가지로) 1990년대 발라드의 전형적 패턴이다. 여기에는 악기를 쌓으며 사운드를 풍성히 한다는 기술적 의미만 있지 않다. 그보다는 리스너의 감정을 점점 끌어올리겠다는 심리적 의도가 더 클 것이다. 이렇게 하면 초반의 여백이 커서 보컬의 호소력이 더 잘 표현되고, 중반부터 리듬 파트가 더해지면 긴장감이 자연스럽게 커지기 때문이다. 드럼과 베이스가 안정적으로 곡을 지탱하면서 보컬이 마음껏 감정을 표출하도록 도와주는 건 물론이다.
이런 방식은 라디오로 들을 때 특히 효과적이었다. 그 시절의 작은 스피커에서도 선율과 목소리가 또렷하게 전달될 수 있었다. 1990년대에는 이런 매체 환경까지 고려해서 곡을 만들었다. 그걸 온갖 첨단 기기가 일상화된 요즘에 일부러 재현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그리고 제목인 ‘325㎞’. 이거야말로 화룡점정이다. 325㎞는 서울-부산의 직선거리인데, 한 마디로 장거리 연애를 상징하는 제목이다. 이렇게 지리적 거리를 이별의 심리적 거리감으로 치환하는 것도 1990년대식 서정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실제로 장거리 연애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마음을 후벼 파는 제목이긴 하다(ㅜㅜ)
이 곡에도 1990년대를 휩쓴 마이너풍 발라드의 스타일이 살아있다. 신승훈이나 조성모를 떠올리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래도 안 슬퍼?”하고 주장하는 듯한, 그 시절 발라드의 전형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큰 틀에서는 비슷하나 차이도 있다. 일단 사운드 설계가 더 현대적이다. 1990년대 발라드가 강조했던 공간감이 이 곡에서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로 들어보면 베이스가 더 전면에 나서고, 드럼 소리도 좀 더 단단하다. 보컬의 리버브도 적어서 가수의 음색이 더욱 또렷하다. 그래서 전체적인 사운드가 꽉 차게 들린다. 요컨대 이 곡은 1990년대의 정서를 구현하면서도, 스트리밍 환경의 이어폰과 헤드폰에서 풍성하게 들리도록 디테일의 차이를 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두 가지 점이 인상적이다. 우선 보컬 안지영이 표현하는 처연하고 애절한 감정선이 감탄스럽다. 예전에는 볼빨사 특유의 상큼발랄한 모던록에 최적화된 목소리라고만 생각했었다. 이 곡에서는 마이너풍 발라드에 걸맞은, 아주 성숙한 보컬로 느껴진다. 가사에서도 작은 놀라움이 있었다. 바로 이 부분. “네 계절을 다 사랑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 우리가 그려온 시간들은 내겐 전부였어" 여기서 ‘네 계절’과 ‘내겐’이라는 비슷한 발음을 의도적으로 반복해서 운율을 살렸다. 난 이런 건 힙합에서나 하는 건 줄로만 알았다. 보컬로서나 작사가로서나, 안지영이라는 뮤지션을 다시 보게 된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