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님들과 글쓰기 세미나를 하고 있다. 벌써 두 번째와 세 번째 모임이 돌아가는 중이다. 1기는 6명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2기에 14명, 3기에 2명이 함께 하고 있다. 처음 계획할 때만 해도 22명씩이나 모일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호파파B 작가님 말씀처럼, 내가 브런치에서 인기는 없어도 매니아층은 확실해서인가 보다. 참여해 주시는 매니아 작가님들(ㅋㅋㅋ)께 감사드린다.
세미나에서 꼭 하는 질문이 있다. “글쓰기가 정말 즐거우세요?” 사실 글쓰기는 가성비로 따지면 극악의 행위다. 글로 돈을 벌거나 이름을 알리는 사람은 전체의 1%도 안 될 것이다. 99%는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실리적으로 얻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정말 많은 사람이 글쓰기에 매진한다. 이곳 브런치에만 8만 명이 넘는 작가가 있다. 내 세미나에 오는 작가님들도 대부분 좋은 직업을 가졌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지위에 있다. 이런 분들이 글을 잘 쓰고 싶다며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토론한다. 그 모습을 보면 궁금증이 든다. 글쓰기가 대체 뭐길래, 무슨 매력이 있기에 이렇게까지 열심인 걸까. 그래서 나는 묻게 된다. “진짜 즐거우세요?”
작가님들의 답은 다양하다. “쓰는 동안은 괴롭지만, 다 쓰고 나면 뿌듯해요.” “글쓰기는 등산 같아요. 올라가는 길은 힘들어도 정상에 서면 세상이 달라 보여요.” 즉 글쓰기는 고통과 기쁨이 늘 짝을 이루는 일이라는 의미다. 시작은 고통스럽지만, 끝에는 기묘한 희열이 기다린다. 마치 근육통 속에서 느끼는 운동의 쾌감 같다. 글쓰기도 그런 모순의 예술인지도 모르겠다.
그럼 글쓰기를 주제로 세미나까지 열고 있는 나는? 나야말로 글쓰기가 정말 즐겁다. 결과가 좋을 때만이 아니라, 과정 자체도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즐겁다고까지는 말 못 하겠다. 그러나 가장 즐거운 일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로 글쓰기는 나를 자유롭게 한다. 나는 15년 넘게 회사에서 글을 써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남을 위한 글’이었다. 보고서, 기획서, 발표문, 설명서 등등. 문장은 넘쳐났지만 내 목소리는 없었다. 문장을 쓸수록 오히려 숨이 막혔다.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 단어를 고르고, 승인받기 위해 문장을 다듬는 일. 글이 아니라 족쇄였다.
그렇게 남의 문장을 써오던 내가, 어느 날 처음으로 내 이름을 내걸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곳이 브런치였다. 아무도 승인하지 않아도 되는 문장, 오직 내 흥미로만 쓰여진 글. 그러자 비로소 글쓰기가 숨통 트이는 일이 되었다. 이전까지 나는 회사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품에 불과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독립된 사유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이러한 자유가 주는 기쁨에 매일 썼고, 그러다 보니 관성마저 생겼다.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가 보지 않아도 꾸준히 쓴다.
둘째로 문장을 만들어내는 일이 즐겁다. 나는 글을 쓸 때 문장 하나하나를 오래 만지작거린다. 단어를 바꾸고, 어순을 뒤집고, 호흡을 조절한다. 겉보기에는 번거롭고 지루한 일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묘한 리듬이 있다. 생각이 형태를 갖추고, 언어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그 순간이 좋다. 복잡한 퍼즐의 한 조각이 딱 맞게 끼워질 때의 느낌이랄까. 예컨대 내 브런치 글 중 가장 많이 읽힌 〈주기율표의 원소는 왜 118개일까〉에는 이런 부분이 나온다.
자연에서 발견된 가장 무거운 원소는 92번 우라늄입니다. 과학자들은 이보다 무거운 93번 원소를 합성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성공한 줄로 착각했으나 아닌 경우만 수차례였습니다. 그러다 1940년에야 겨우 성공하는데, 이름을 넵투늄이라고 했습니다. 92번 우라늄이 천왕성(uranus)에서 유래해서 93번은 해왕성(neptune)의 이름을 딴 거죠. 그럼 뒤이어 발견한 94번은? 명왕성(pluto)에서 가져온 플루토늄이 됩니다. 그야말로 힙합 래퍼 찜쪄먹을 펀치라인입니다.
이 문장들을 쓸 때 나는 혼자서 웃었다. 과학의 원리를 힙합의 펀치라인으로 옮겨 놓는 순간, 무미건조한 과학사가 살아 있는 이야기로 변했다. 그게 너무 재미있었다. 독자들도 댓글로 재미있는 표현이라며 공감해 주었다. 그러자 이 문장에 들인 노력이 다 보상받는 것 같았다.
글쓰기란 결국 이런 일이다. 머릿속에서 떠도는 생각들을 한 줄의 문장으로 붙잡는 일. 논리와 감정을 오가며 가장 정확한 표현을 찾아가는 일. 때로는 어렵지만 그 과정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작은 전율이 있다. 나는 그 전율이 좋아서 쓴다. 글이 완성되는 기쁨뿐만 아니라, 그 기쁨이 만들어지는 과정 또한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계속 쓸 수밖에 없다. 세미나 발제문에 담은 다음의 문장들처럼. 나와 함께 공부하는 작가님들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글쓰기는 외롭고도 긴 여행과 같다. 남들의 기준이나 당장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내 안의 목소리를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처음에는 끝도 보이지 않던 목적지에 마침내 다다라 있을 것이다. 그 길 위에서 얻는 배움, 그리고 자신을 표현하는 기쁨이야말로 글쓰기가 주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