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성공 요인은 흔히 이렇게 나열된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 공감 가는 가사, 정교한 사운드 설계…” 무대로 넘어가면 이렇다. “라이브 실력, 밴드의 합, 하이엔드 음향기술…”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하나가 빠졌다. 바로 ‘간지’다.
물론 간지는 공식 용어가 아니다. 음악 이론에도 없고, 음대에서도 안 가르쳐준다. 그럼에도 세계 최고 아티스트의 여부는 이 단어에서 갈린다. 그것은 노래를 잘한다거나 무대 장악력이 뛰어나다는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춤동작의 타이밍, 무대 세팅과 패션, 표정의 변화, 악기 연주의 긴장감 등이 만들어내는 정서적 총합. 그게 흔히 말하는 간지다.
단언컨대 간지 없이 세계 정상에 오른 아티스트는 없다. 아무리 음악이 좋고 퍼포먼스가 뛰어나도, 결국 오래 남는 건 아티스트가 무대의 모든 요소를 빨아들이는 간지 폭발의 순간이다. 이 글에서는 팝음악사에 길이 남을… 까지는 아니고, 개취로 뽑은 간지 무대 세 편을 소개해본다. 장르도 시대도 제각각이지만, 단 하나의 기준만큼은 명확하다. “저건 그냥 멋있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가 다르다.”
마이클 잭슨의 레전드 무대는 조금만 검색해도 줄줄이 쏟아진다. 그중에서도 이 1995년 MTV <Dangerous> 무대는 간지의 표준규격을 창조한 순간과도 같다. 마잭이 얼굴을 한 번 들었다 내리거나, 옷을 툭툭 터는 동작만 봐도 공기의 흐름이 뒤바뀐다. 즉 이 무대는 시작부터 간지의 기압이 다르다.
무대로 쏟아져 나온 댄서들은 전주의 비트가 깔리면 곧바로 공장 로봇처럼 돌아간다. 그리고 마잭은 가운데에서 이 공장의 지배인처럼 퍼포먼스를 조립한다. 뉴잭스윙 특유의 쫀득한 비트 위에서 동작들을 쪼개고 붙이는 맛이 그야말로 미쳤다. 정지했다가 눈만 탁 치켜뜨는 타이밍, 발 한번 쓱 미는 박자감, 어깨선의 미세한 떨림까지 칼같이 정확하다. 이 모든 게 과장된 제스처가 아니라, 어깨·발목·시선 단위로 세공된 계산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경악스럽다.
더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이 무대가 생방송이었다는 것. 카메라 동선부터 컷 타이밍까지 다 마잭이 직접 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앵글이 안무에 딱딱 물려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데, 마치 실시간으로 편집된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하다. 우리도 한때 비, 유승준, GD, 박재범 같은 간지남들을 추앙하던 시절이 있었다. 근데 이 무대를 보면 원조는 저 멀리 신계에 존재함을 알게 된다. 국산 꼬꼬마들의 간지는 그냥 귀엽다. 마잭의 인류사적 스케일에 비하면.
건즈 앤 로지스 하면 거칠고 강렬한 사운드, 난장판 무대 매너, 그리고 망나니 같은 사생활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기적처럼 모든 폭주가 멈추고 순수하게 간지만 남았다. 바로 불멸의 록발라드 <November Rain>이 오페라 수준으로 구현된 무대다. 그리고 그 주연 배우 두 명 - 액슬 로즈와 슬래시 - 이 번갈아 가며 관객을 으악 기절시킨다.
먼저 피아노의 액슬 로즈. 언제나처럼 두건과 빨간 재킷 차림이다. 하지만 무대를 찢어놓는 평소와 달리 이 곡에서만큼은 점잖게 피아노를 두드린다. 물론 의자 대신 걸터앉은 오토바이와 피아노 위에 놓인 술잔이 이 양반의 숨길 수 없는 캐릭터를 보여준다. 피아노 연주로 시작한 곡은 스트링과 밴드 사운드가 더해지며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슬슬 존재감을 드러내는 기타의 슬래시. 이 반인반수의 기타리스트는 검은 실크햇에 긴 곱슬머리로 얼굴의 반을 덮고, 맨살에 재킷을 대충 걸쳤다. 그리고 기타를 거의 무릎까지 내려서 맸다. 실제 연주자들은 이게 연주에 몹시 불편한 자세라고 하는데, 간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이 무대를 완성시키는 것은 곡의 시그니처인 후반부 기타 솔로다. 절정에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딱 멈추면, 슬래시는 이제 내 차례니 다들 뒤로 빠지라는 표정으로 피아노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그 유명한 기타 솔로를 연주한다. 사실 슬래시는 작곡 능력도 없고, 기술적으로도 그리 뛰어난 기타리스트가 아니다. 하지만 특유의 폭풍 간지 스타일 때문에 사람들이 환장한다. 이 무대도 마찬가지다. 슬래시가 피아노 위에서 기타를 후려갈기는 장면에서는 관객도, 엘튼 존도, 다른 밴드 멤버도 다 배경에 불과하다. 영상에 달린 어느 팩폭 댓글이다. “이 무대의 유일한 문제점: 엘튼 존까지 데려다 놓고도, 결국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슬래시의 실루엣뿐임.”
1991년 모스크바, 냉전 말기 혼란의 시대. 그 한복판에서 메탈리카가 헤비메탈로 ‘자본주의의 맛’을 선사했다. 특별한 무대 효과도, 멋진 의상도 없었다. 난닝구와 티셔츠 차림의 네 명이 기타 둘, 베이스 하나, 드럼 하나를 들고 나왔을 뿐이다. 그런데 <Enter Sandman>의 그 유명한 첫 리프가 울려 퍼진 순간, 160만으로 추정되는 불곰국 성님들에게 강한 전류가 관통한다. 영상으로 보는 나도 믿기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단출한 악기 구성으로 저런 핵폭탄급 사운드가 터져 나오는지.
대전시 인구를 가뿐히 넘기는 관객들이 동시에 출렁이는 모습은 장관이라고 표현하기조차 민망하다. 곡이 진행될수록 장면은 점점 더 비현실적으로 변한다. 순수한 에너지의 홍수 앞에서 군인들은 총 대신 주먹을 흔들고, 시민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 가사 대신 기타 리프를 따라 외친다. 적어도 이날만큼은 레닌이 세운 체제 위에 제임스 헷필드의 헤드뱅잉이 국기처럼 휘날린 셈이다. 소련은 얼마 뒤 정치적으로 완전히 붕괴하게 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메탈리카가 헤비메탈로 선행 폭격을 해놓은 상태였다.
결국 이날의 모스크바는 이렇게 기록된다. “난닝구 입은 네 명의 미국 아재들이 기타로 사회주의 체제의 숨통을 열어젖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