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지의 미학: 전설의 레전드 무대들 (2)

by 배대웅

1편에서 다룬 간지는 요란하고 폭발적이었다. 마이클 잭슨은 칼각으로 무대를 썰어 버렸고, 건즈 앤 로지스는 록스타의 과잉된 자의식을 존멋으로 승화했으며, 메탈리카는 난닝구 차림으로 역사의 전환점을 뒤흔들었다. 불꽃이 튀고, 볼륨이 터지고, 관객이 집단으로 출렁이는 무대들. 그야말로 풀악셀 밟은 머슬카 같은 간지였다.


하지만 꼭 이렇게 때려부숴야만 간지가 사는 건 아니다. 1편이 엔진 소리부터 심장을 폭행하는 간지였다면, 이번 편은 소리도 없이 스윽 지나간 뒤에야 “방금 뭐였지?” 하고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간지다. 엔진음은 안 들리는데 존재감은 뚜렷한 롤스로이스 같은 무대들. 즉, 이번 편의 주제는 절제와 여백의 미학이다.


원래 고수들은 무대에서 윽박지르지 않는 법이다. "나 멋있지? 아 멋있다고 좀 해줘!"라고 구걸하는 순간, 그건 이미 간지가 아니라 열정 페이다. 진짜 고수는 의자에 걸터앉아, 괜히 먼 산 한 번 바라보고, 슬쩍 기타 줄을 튕길 뿐이다. 그러면 관객들은 박수칠 타이밍조차 못 잡고 입꾹닫 모드로 강제 진입하고 만다. 다음의 무대들에서 그 생생한 현장을 확인할 수 있다.




Eric Clapton, <Layla> MTV Unplugged 1992

더 이상 증명할 게 없어서 폼나는 간지

1971년의 <Layla>는 질주하는 전기 기타와 집요한 리프, 격정적인 감정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21년이 지난 뒤 에릭 클랩튼은 뜬금없이 통기타를 들고 나타났다. 그것도 무슨 동네 기원에서 바둑 두다 오신 것 같은 비주얼로. 지천명을 바라보는 클랩튼이 돋보기 쓰고 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았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이고 이 형님도 이제 기력이 다하셨구나…”


근데 첫 리프를 어쿠스틱으로 스윽 긁자 <Layla>는 전혀 새로운 무드의 곡으로 재탄생한다. 클랩튼은 그 치열했던 사랑과 고통의 서사를 인생 다 산 철학자의 선문답으로 바꿔버렸다. 그저 발로 박자를 맞추며 손끝으로 기타 줄을 튕길 뿐인데, 그 소리가 가슴 깊숙한 곳까지 퍼져 나간다. 연주 내내 손놀림은 빠르지 않고, 솔로는 화려하게 튀지 않는다. 대신 코드와 코드 사이의 여백이 유난히 길다. 손가락이 안 보이는 속주? 그런 건 뉴비들이나 하는 거라는 듯, 음 하나하나에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담아 툭툭 던진다. 보고 있으면 “저 선생님은 밥 먹고 기타만 치셨나?” 싶은데, 진짜 평생 기타만 쳤다는 게 팩트다.


결국 이 무대는 잘해서 멋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이상 증명할 것이 없는 경지라서 폼난다. 그러니까 이제 와서 굳이 잘할 필요가 없다는 거장의 태도 자체가 간지다.


Simon & Garfunkel, <The Sound of Silence> The Concert in Central Park 1981

50만 명을 입꾹닫시킨 정적의 간지


1981년 9월 뉴욕 센트럴파크. 사이먼 앤 가펑클의 재결합 공연에 무려 50만 명이 모였다. 그러니까 그날 밤 센트럴파크는 공원이 아니라, 인구 50만 명짜리 도시 하나 - 안양시 정도 되는 - 가 잔디밭에 그대로 압축된 공간이었다.


이 정도 인원이 한자리에 모이면 보통 소음부터 문제가 된다. 그런데 사이먼 앤 가펑클은 통기타 한 대만 들고 홀연히 무대에 올랐다. 마치 단기필마로 장판파에 나선 장비 같다. 이윽고 폴 사이먼의 기타 연주에 아트 가펑클의 미성이 얹어지는 순간, 50만 명이 내뿜던 공기가 차분히 가라앉는다.


이 무대의 간지는 크기를 키우지 않는 선택에서 나온다.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은 서로를 앞서지 않고, 상대의 소리를 덮지도 않는다. 대신 각자의 몫을 정확히 지킨다. 덕분에 “Hello darkness, my old friend”라는 첫 가사가 울려 퍼질 때, 그 문장은 더 이상 노랫말이 아니라 이 공연의 주제의식처럼 들린다. 거대한 군중 앞에서 굳이 소리를 키우지 않아도 되는 거장들. 사이먼 앤 가펑클은 그렇게 조용한 상태 자체를 무대 위에 올려놓았다.


Sting, <Englishman in New York> Street Performance 2010

무대가 따로 필요 없는 중년의 섹시 간지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거장도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스팅의 이 길거리 공연도 그걸 정확히 보여준다. 관객석도, 조명도, 사운드 체크도 없다. 뒤로는 차들이 지나다니고, 사람들은 힐끗힐끗 쳐다본다. 하지만 스팅이 특유의 쇳소리 섞인 고음을 내뱉자, 이 무대는 우연한 버스킹이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연출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도대체 저곳이 어디일까 궁금해서 뒤에 나오는 상점의 글자들로 검색까지 해봤다. A La Vieille Russie, 뉴욕 센트럴파크 근처의 유명한 앤티크 숍이란다. 노래에 5번가를 걸어가는 나를 보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이 가게도 실제로 5번가에 있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현실 고증까지 지리는 갓벽한 무대였다.


이 무대의 간지 포인트는 한둘이 아니지만, 역시 재즈의 리듬과 찰지게 엮이는 가사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워옭~ 암언 엘리연, 암어 리글 엘리연, 암언 잉글리시만 인 누이~옼” 이렇게 무심한 듯 시크하게 내뱉어야 한다. 단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잉글리시맨 인 뉴욕”이 아니다. “잉글리시만 인 누욕” 이렇게 영국 스타일로 발음해줘야 한다. 그래야 이 곡의 간지가 산다.


흔히 팝 남성 가수 계보에서 ‘섹시’의 아이콘으로는 조지 마이클이 꼽힌다. 하지만 내 생각에 스팅이야말로 진정한 섹시 가수다. 다만 종류는 좀 다르긴 하다. 조지 마이클이 퇴폐적인 섹시함이라면, 스팅은 지적인 섹시함에 가깝다. 딱 맞는 핏의 새하얀 셔츠를 입고, 흔들흔들 리듬을 타면서 영국인의 부심을 내뿜는, 중년의 저 섹시 간지를 보라. 이제는 스팅과 함께 늙어가고 있는 나도 이렇게 외치게 된다. “형 나 죽어”


Noel Gallagher, <Don't Look Back In Anger> Live at the O2 2012

노래를 부르기도 귀찮은 간지


오아시스 시절의 노엘 갤러거는 시도 때도 없이 독설을 내뱉는 상돌I였다. 인터뷰만 하면 누군가 하나쯤은 패고 나왔고, 공연에서는 관객이 아니라 세상을 상대로 싸우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하이플라잉버즈를 할 때의 노엘은 통달한 도인처럼 느껴진다. 싸울 필요도 없고, 증명할 필요도 없고, 굳이 목에 핏대 세울 이유도 없다. 기타 하나 들고 서 있으면 사람들이 알아서 감동한다.


그래서 O2 아레나를 꽉 채운 관객들 앞에서 노엘은 퍼포먼스 같은 건 안 한다. 무대 위를 뛰어다니지도 않고, “Hands up!”, “Sing it!” 같은 클리셰 구호도 안 외친다. 그냥 무심하게 기타를 뚱땅거리며 노래를 시작할 뿐이다. 너무도 유명한 이 곡의 제목을 말해줄 성의조차 없는 표정으로. 바로 세기의 히트곡 <Don’t Look Back in Anger>다.


백미는 역시 후렴구다. 노엘은 아예 노래를 멈추고 마이크를 관객에게 돌린다. 수만 명이 "쏘오오오 샐리 캔 웨잇~"을 떼창할 때, 그는 미묘한 표정 - 흐뭇해 보이기도 하고, 시건방져 보이기도 하는 - 으로 기타만 친다. 그 모습을 보자니 이런 바이브가 느껴진다. 본인이 만든 노래가 전 인류의 송가가 되었음을 감상하는 아티스트의 여유. 굳이 내 목청 안 높여도 세상이 내 노래를 대신 불러준다는 자신감. 왠지 이 양반 성격상 끝나고 스태프들에게 한마디 했을 것 같다. "봤나? 이기 마 클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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