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화, 구조화, 상세화
글을 쓰다 보면 막히는 순간이 있다. 시작하자마자 멈추기도 하고, 중간까지 썼는데 갑자기 길을 잃기도 한다. 더 곤혹스러운 건 “끝까지 다 썼는데도 뭔가 허전할 때”다. 문장도 그럴듯하고, 자료도 충분하고, 예시도 넣었다. 그런데도 읽고 나면 손에 잡히는 게 없다. 이럴 때 우리는 대개 ‘문장’부터 의심한다. 표현이 별로인가? 문체가 밋밋한가? 단어가 부적절한가?
하지만 많은 경우 문제는 문장이 아니라 결정의 미완성에 있다. 무엇을 말할지, 어떤 순서로 말할지, 어떤 근거를 쓸지, 어떤 어휘를 고를지 -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끊임없이 선택한다. 윌리엄 진서가 『글쓰기 생각쓰기』에서 “글쓰기는 결정의 연속”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 있다. 글쓰기는 문장을 생산하는 기술이 아니라, 생각을 정렬해 독자에게 도착시키는 설계 과정이다.
건축에 비유하면, 우리는 종종 도면 없이 벽지부터 고른다. 그 결과는 뻔하다. 공사가 길어지거나, 구조가 뒤틀리거나, 완공해도 어딘가 불편한 집이 된다. 글도 같다. 글이 막히는 건 대개 문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설계 단계에서 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쓰기를 가장 단단하게 해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글쓰기 과정을 감각이 아니라 단계로 나누는 것이다. 그것은 다음의 세 가지다.
추상화 → 구조화 → 상세화
이 '추상화 → 구조화 → 상세화'는 그럴듯한 구호가 아니다. 글쓰기에서 가장 자주 겪는 문제들을 단계별로 분해한 진단표에 가깝다. 글이 막힐 때 우리는 “문장이 안 나온다”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원인은 대개 셋 중 하나다. 중심이 없거나, 순서가 없거나, 문장이 걸리거나. 하고 싶은 말이 흩어져 한 줄로 모이지 않으면 추상화 문제고, 논점이 뒤엉켜 독자가 길을 잃으면 구조화 문제다. 중심과 순서가 있는데도 읽히지 않으면 상세화 문제다. 결국 이 3단계는 각각 저마다의 문제를 해결한다.
‧ 추상화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를 해결한다.
‧ 구조화는 “중간에서 길을 잃는다”를 해결한다.
‧ 상세화는 “읽기 힘들다”를 해결한다.
그럼 이제 각 단계에서 실제로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1) 추상화: "이 글은 결국 무슨 말인가"
추상화는 글쓰기의 출발점이다. 이 첫 단계에서 하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 하지만 가장 어렵다. 글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추상화는 ‘대충 뭉뚱그린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세부를 모두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글의 전체 구조를 가장 상위 레벨에서 대표할 핵심 메시지를 뽑아내는 일이다. 즉 추상화는 글을 ‘줄이는 기술’이 아니라 글을 지탱할 '중심을 세우는 기술'이다.
우리는 글을 쓸 때 대개 재료를 잔뜩 갖고 시작한다. 관찰한 장면도 있고, 분노한 지점도 있고, 읽은 책에서 건진 문장도 있다. 하지만 그 많은 재료가 곧 메시지가 되지는 않는다. 추상화 단계에서 반드시 끝내야 하는 질문은 정확히 이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말하려는가?” 실전에서는 이 질문이 다음의 네 가지로 쪼개진다.
‧ 이 글은 누구에게 필요한가?
‧ 독자는 읽고 나서 무엇을 얻어야 하는가?
‧ 내가 붙잡고 있는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 그 문제의식을 독자가 이해할 핵심 주장으로 어떻게 압축할 것인가?
이 네 가지가 결정되면 이후의 모든 선택이 ‘감’이 아니라 ‘기준’으로 바뀐다.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지,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낼지, 어떤 예시가 적합한지. 전부 “이 한 문장에 도움이 되는가?”로 판단할 수 있다.
추상화 단계에서 흔한 착각은 “처음부터 완성된 결론을 정해야 한다”라는 강박이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진서가 『글쓰기 생각쓰기』에서 조언하듯, 초반에는 떠오르는 장면들과 문장 조각들을 자유롭게 적어 모으는 편이 낫다. 핵심은 ‘처음부터 완성’이 아니라, 흩어진 조각들 가운데 글의 중심이 될 한 문장을 ‘끝내 조립해 내는 것’이다.
2) 구조화: 독자가 따라올 수 있는 길을 내기
추상화가 “무슨 말을 할지”라면, 구조화는 “어떤 순서로 보여줄지”다. 이 단계에서 글은 비로소 독자의 눈높이로 재배치된다. 구조는 곧 독자의 이동 경로이기 때문이다. 글쓴이 머릿속에서야 어떤 생각이든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독자는 내 머릿속을 모른다. 그러니 글은 독자의 움직임에 맞게 길을 내야 한다.
구조화 단계의 핵심 도구는 개요(아웃라인)다. 개요는 목차가 아니라 설계도다. 서론 - 본론 - 결론의 틀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본론을 몇 갈래로 나눌지, 각 문단이 맡을 역할이 무엇인지, 문단 사이 연결을 어떻게 만들지까지 정한다. 이때 가장 강력한 체크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까지 독자가 얻은 것이 무엇이고, 다음에 독자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붙들면 글은 독자의 이해 순서로 배열된다. 반대로 이 질문을 놓치면 글은 '내가 아는 것을 그냥 늘어놓은 결과'가 된다. 정보는 많을지 몰라도 독자는 길을 잃는다. 독자는 정보를 축적하지 않고, 이해를 이동한다. 그래서 구성은 ‘내용의 양’이 아니라 ‘이동의 질’이다.
그리고 구조화 단계에서 반드시 통과해야 할 문턱이 하나 더 있다. 버리는 결정이다. 자료를 많이 모을수록 우리는 그 재료들에 애정을 갖게 된다. 하지만 글은 애정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글은 목적과 흐름으로 완성된다. 중심을 강화하려면, 중심에서 벗어난 재료는 과감히 제외해야 한다. 쓰는 것만큼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은, 이 단계에서 가장 잔인하게 깨닫게 된다.
3) 상세화: 걸림돌을 치우는 문장 공사
추상화와 구조화가 끝나면, 사실상 글은 이미 존재한다. 이제 남은 것은 그 글을 ‘읽히게’ 만드는 일이다. 이것이 상세화다. 흔히 상세화를 “문장 다듬기”라고 부르지만, 본질은 더 명확하다. 상세화란 독자를 위해 문장의 걸림돌들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문장이 길면 독자는 호흡을 잃는다. 수식어가 많으면 의미를 놓친다. 같은 말을 반복하면 지루해진다. 용어가 통일적이지 않으면 의미가 헷갈린다. 문장의 일관성이 무너지면 글의 신뢰도도 같이 무너진다.
조지 오웰이 강조한 문장 원칙이 있다. “짧은 단어를 쓸 수 있으면 긴 단어를 쓰지 말 것, 빼도 되는 단어는 반드시 뺄 것” 이것은 문장 기술이면서 동시에 독자에 대한 태도다. “쉽게 읽히는 글은 쓰기 어렵다”라는 격언도 결국 같은 뜻이다. 어려움은 작가가 감당하고, 독자는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만드는 것. 상세화는 그 윤리를 구현하는 단계다.
‘추상화 → 구조화 → 상세화’의 원리를 이해해도, 막상 글을 쓰려하면 손이 멈춘다. 그때 도움이 되는 것이 유형별 구성 템플릿이다. 글은 무한히 다양하지만, 우리가 자주 쓰는 논픽션 글은 몇 가지 전형으로 나누어진다. 처음 시작할 때는 전형이 오히려 글을 구해주기도 한다.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가 한눈에 잡히기 때문이다. 아래 네 가지는 특히 활용도가 높은 기본형이다.
1) 칼럼형(주장의 논증)
‧ 목적: 한 가지 입장(주장)을 분명히 세우고, 짧은 분량 안에 설득한다.
‧ 독자: 바쁜 대중, 빠르게 핵심을 얻고 싶은 사람.
‧ 구성 템플릿
- 도입: 문제 제기(상식의 흔들기)
- 핵심 주장(한 문장)
- 근거 1: 대표 논리, 사례
- 근거 2: 다른 각도의 보강 논리
- 반론(예상 반발) + 재반박(정리)
- 결론: 현실적 제안 또는 판단 기준 제시
칼럼은 전개보다 속도가 중요하다. 따라서 칼럼형은 “짧은 문단 + 빠른 논점 전환”이 핵심이다.
2) 에세이형(경험에서 통찰 추출)
‧ 목적: 장면과 경험에서 출발해 질문을 만들고, 해석을 거쳐 독자에게 잔상을 남긴다.
‧ 독자: 정보보다 ‘생각’을 얻고 싶은 사람.
‧ 구성 템플릿
- 장면: 기억에 남는 구체적 순간
- 질문: 왜 이 장면이 걸렸는가?
- 해석: 내가 내린 의미 부여
- 확장: 개인에서 사회, 구조, 보편으로
- 회수: 다시 장면으로 돌아오기
- 여운: 결론 대신 잔상 남기기
에세이는 결론보다 잔상이 중요하다. 따라서 논증보다 전환(장면 → 질문 → 해석)이 핵심이다.
3) 전기형(인물 조명 서사)
‧ 목적: 인물의 업적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 어떤 갈등을 통과하며 변화했는지 보여준다.
‧ 독자: 인물의 선택과 전환점에서 의미를 얻고 싶은 사람.
‧ 구성 템플릿
- 훅: 인물의 상징적 장면, 결정적 순간
- 배경: 출발점(환경, 결핍, 성향)
- 갈등: 인물을 움직인 문제(내적, 외적)
- 전환점: 결정적 선택 또는 사건
- 성과: 업적이 아니라 ‘변화의 결과’로 제시
- 유산: 오늘의 우리에게 남는 의미
전기형의 함정은 연대기 요약이다. 그것만으로 전기가 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전기형은 사건 나열이 아니라 변화의 논리(갈등 → 전환)가 핵심이다.
4) 교양서형(지식의 설계)
‧ 목적: 정보를 전달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독자의 세계관을 재구성한다.
‧ 독자: 읽으며 머릿속 지도가 바뀌길 원하는 사람.
‧ 구성 템플릿
- 큰 질문: “우리는 왜(또는 어떻게) ~~하게 되었나?”
- 기존 상식 깨기: 흔한 설명의 한계 지적
- 핵심 개념 1: 렌즈 제시
- 핵심 개념 2: 렌즈 확장
- 사례, 데이터, 에피소드로 증명
- 통합: 여러 요소를 한 모델로 묶기
- 시사점: 지금의 세계를 다르게 보게 만들기
교양서형은 독자에게 지식을 넘어 관점을 준다. 따라서 교양서형은 '개념 - 사례 - 통합'의 리듬이 핵심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 3단계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자. 결과물은 이미 있다. <기초과학에 어떻게 투자해야 할까>라는 신문 칼럼이다. 이 글을 앞으로 쓰는 대신 거꾸로 복원해 볼 것이다. 어떤 고민과 전략이 결합되면 이런 칼럼이 나오는지, ‘추상화 → 구조화 → 상세화’의 관점에서 역산해 보는 것이다. 아래는 칼럼의 전문이다. 먼저 훑어보고, 다음 문단에서 이 글이 어떻게 3단계를 거쳐 나왔는지 거꾸로 해부해 보자.
기초과학에 투자하자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 기초과학 예산은 10여 년 전부터 정권과 무관하게 꾸준히 늘고 있다. 과거 큰 논란이 벌어졌던 4대 강 정비나 문화융성 사업을 떠올려보자. 그에 비하면 기초과학 투자는 범국민적 동의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기초과학의 어느 부분에 어떤 방식으로 투자할지를 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기초과학이 불확실성과 우연성의 영향을 많이 받는 학문이라서 그렇다. 그래서 발견의 예측이 어렵고, 발견했다 한들 그것이 뭘 의미하고 어디에 쓰일지 당장은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기초과학의 학문 범주 자체도 급속히 커지고 있다. 그만큼 국가가 예산 계획을 구체화하기가 쉽지 않다.
가장 기본적인 투자는 과학자들의 호기심 해결에 지원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자연에 대한 `왜?`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인류의 삶을 바꾼 발견이 나온 경우들이 많다. 빌헬름 뢴트겐의 X선이나 마이클 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가 대표적 예다. 이것들은 과학자들의 호기심 어린 작은 실험이 현대 기술문명의 토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쓸데없거나 황당해 보여도 과학자들의 독특한 아이디어에 많이 지원하면, 실생활에 유용한 성과를 얻을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이는 기초과학의 본질에 가장 부합하는 투자 논리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과학적 아이디어에 비해 쓸 수 있는 예산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부자 나라라 해도 모든 아이디어에 무한정 투자할 수는 없다.
그래서 기초과학을 특정한 목적과 결부시키자는 논리도 나온다. 응용 효과가 큰 분야를 먼저 정하고 그에 필요한 기초과학을 연구하자는 것이다. 최근 개발된 코로나19 백신이 그 사례다. 화이자, 모더나 등의 mRNA 백신은 첨단 생명과학 연구의 총체이나, 결정적으로 팬데믹이라는 상황적 요구에 대응하여 만들어질 수 있었다. 즉 뚜렷한 목적이 기초 지식을 혁신적 제품 개발로 이어지게 한 것이다. 다만 이 논리에도 맹점은 있다. 기초과학의 넓고 탄탄한 토대가 없으면 새로운 기술도 잘 개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로 든 mRNA 백신만 해도, 수십 년간 축적된 RNA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개발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최근에는 기초과학의 대형화에 따른 투자 필요성이 커졌다는 점도 중요하다. 예컨대 입자물리학이나 천문·우주 연구는 고도의 기술이 탑재된 대형 실험시설을 구축하고 실험을 할 연구자 집단도 확보해야 한다. 이는 기초과학과 공학 등을 망라하는 복잡한 체계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미치며 융합을 만들어낸다. 이미 현대과학의 최신 지식은 이러한 빅 사이언스, 팀 사이언스가 주도하고 있다. 다만 여기에는 기존과 차원이 다른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 분야에 투자를 결정하면 여타의 기초과학 분야들에도 재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음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할까? 세 가지 중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국가별로 발전 단계, 재정 상황, 연구 풍토, 인재 경쟁력, 인프라 규모 등을 고려하여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긴 안목에서 최대한 다양한 연구자들이 뜻을 펼칠 수 있게 지원하는 방법이 최선일 것이다.
- 배대웅, <기초과학에 어떻게 투자해야 할까>(대전일보 '22.01.18. 자 칼럼)
먼저 추상화다. 겉으로 보면 이 칼럼은 “기초과학에 투자하자”라는 글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핵심은 뻔한 당위론이 아니다. 첫 문장에서 이미 말한다. “기초과학 투자에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다.” 즉 논쟁의 주제가 찬반이 아니라는 선언이다. 곧이어 문제가 제기된다. “그런데 어느 부분에 어떤 방식으로 투자할지를 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바로 이 문장이 글의 중심을 세운다. 따라서 이 글의 추상화(한 문장 핵심)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기초과학 투자는 당연하다. 하지만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 ‘어떻게’ 투자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다음은 구조화다. 이 한 문장 핵심이 정해지면, 구조는 사실상 자동으로 따라온다. “어떻게 투자할까?”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서로 다른 투자 논리들을 구분해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칼럼은 세 가지 투자 방식으로 본론을 조직한다. 호기심 기반 지원, 목적 결부형 기초과학, 빅 사이언스·팀 사이언스. 각각의 장점과 맹점을 제시한 뒤, 결론에서 “셋 중 하나만 택할 수 없다”는 포트폴리오 논리로 회수한다.
마지막으로 상세화다. 신문 칼럼은 무엇보다 호흡이 중요하다. 짧은 분량 안에 논점을 압축해 넣어야 하고, 독자는 길게 사유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문장과 문단을 짧게 끊고, 어려운 개념은 용어가 아니라 사례로 보여준다. X선, 전자기 유도, mRNA 백신 같은 예시는 독자의 이해를 돕는 장치다. 그리고 결론은 훈계가 아니라 기준을 제시한다. 국가별 발전 단계, 재정, 연구 풍토, 인프라 등을 고려한 포트폴리오. 칼럼이 마지막에 남겨야 하는 것은 감상이 아니라 판단의 프레임이라는 점을 정확히 지킨다.
요컨대 이 칼럼은 ‘투자 방식의 설계’라는 문제의식(추상화)을 세우고, 세 가지 논리를 배열해 길을 만든 뒤(구조화), 짧은 호흡과 사례로 읽히게 만든(상세화) 결과물이다.
‘추상화 → 구조화 → 상세화’는 단지 글쓰기 절차를 나열한 공정표가 아니다. 그것은 글쓰기를 대하는 태도이자 철학에 더 가깝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결국 “표현을 예쁘게 한다”가 아니라, 독자에게 의미가 흔들림 없이 도착하도록 설계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글을 쓰다 막히면 습관처럼 문장을 탓한다. “오늘은 문장이 안 나와.” “표현이 너무 밋밋해.” “내 문체는 왜 이 모양이지?” 하지만 그런 순간 문제의 대부분은 문장이 아니다. 문장이 안 나오는 이유는, 대개 문장을 만들기 전에 끝냈어야 할 결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중심이 안 섰는데 문장을 쓰려하니 멈춘다. 길이 안 뚫렸는데 전진하려 하니 헤맨다. 독자의 동선이 설계되지 않았는데 미사여구로 밀어붙이려니 글이 무너진다.
그래서 글쓰기는 감각이 아니라 진단의 영역이 된다. 막힐 때마다 이렇게 물으면 된다. 지금 내가 못하는 건 정말 ‘표현’인가, 아니면 ‘설계’인가?
추상화가 흔들리면 글은 끝까지 가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가 된다. 아무리 열심히 써도 결론이 흐릿하고, 문단이 많아질수록 중심은 증발한다. 구조화가 흔들리면 독자는 중간에 길을 잃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무리 옳아도, 독자가 따라오지 못하면 그 글은 설득이 아니라 독백이 된다. 상세화가 흔들리면 아무리 좋은 생각도 전달되기 전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 문장이 길고 어조가 흔들리면, 독자는 내용을 보지 않고 불편함부터 느낀다.
좋은 글이란 결국 이 세 가지가 정확히 정렬된 결과물이다. 하나의 중심이 있고, 그 중심까지 이어지는 길이 있고, 그 길을 걷는 동안 걸림돌이 없는 글. 이 조건이 갖춰지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끝까지 읽는다. 그리고 바로 그때 글은 전달을 넘어 설득이 되고, 영향력이 된다.
이렇게 보면 글쓰기란 재능의 영역이 아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타고난 사람이 아니라, 결정을 잘 맺는 사람이다. 대충 쓰고 운에 맡기는 사람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설계를 완수하는 사람이다. 즉 글쓰기 실력은 “무엇을 더 아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끝내 결정하느냐”에서 갈린다. 그러니까 문장이 막히는 날이 있는 게 아니다. 추상화가 덜 된 날, 구조가 흔들린 날, 다듬기가 거친 날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다음에 멈춰 서거든 문장을 탓하지 말고, 설계를 점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