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운명이 정해지는 두 순간
글쓰기에서 가장 숨이 막히는 순간은 언제일까? 빈 화면 위에 커서만 깜박이고 있을 때. 그리고 모든 말을 다 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끝내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한 줄을 덧붙이게 될 때. 많은 사람이 이 두 지점을 꼽는다. 시작 앞의 정적과 끝 앞의 망설임.
이것은 글을 못 써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시작과 끝은 글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구성’이 드러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글의 한가운데는 얼마든지 수습할 수 있다. 문장을 고치고, 자료를 보태고, 논리를 다듬으면 된다. 그러나 어디서 문을 열고, 어디서 닫을 것인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것은 기술보다는 설계의 영역이다.
시작은 독자를 안으로 끌어들이는 입구다. 입구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 독자는 발을 들이지 않는다. 끝은 독자를 돌려보내는 출구다. 출구가 보이지 않으면 그는 지쳐 버린다. 글의 중심이 아무리 탄탄해도, 입구와 출구가 허술하면 독자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무엇보다 독자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늘 다음 문장으로 가지 않을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 자유를 전제로 글을 써야 한다. 시작은 그것을 잠시 붙잡는 일이고, 끝은 존중하며 놓아주는 일이다. 글은 대개 입구에서 선택되고, 출구에서 평가된다.
글을 시작하는 것은 독자를 유혹하는 일이다. 유혹이라는 단어가 과한 비유 같지만, 글이라는 매체의 냉정함을 생각하면 오히려 정확하다. 독자는 이미 바쁜 하루를 살고 있다. 그의 화면에는 내 글이 아닌 다른 것들이 끝없이 떠오른다. 첫 문장과 첫 단락은 그 경쟁 속에서 내가 꺼내 드는 ‘딱 한 번의 제안’이다.
그래서 첫 문장, 첫 단락에서 독자의 시선을 붙잡아야 한다. 작가와 독자도 결국 비즈니스 관계다. 바꿔 말해서 작가는 독자에게 자신의 글을 세일즈하는 입장이다. 세일즈에 성공하려면, 이 글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읽을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글의 첫 문장과 첫 단락이다.
따라서 도입부는 금방 독자를 붙잡아 계속 읽게 만들어야 한다. 참신함, 진기함, 역설, 유머, 놀라움, 비범한 아이디어, 흥미로운 사실, 질문으로 독자를 유혹해야 한다. … 그렇다고 너무 이성적으로 호소하지는 말자. 독자를 조금 더 꾀어 계속 호기심을 갖게 하기만 하면 된다.
- 윌리엄 진서, 『글쓰기 생각쓰기』
진서도 도입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세일즈 예시를 다시 떠올려보자. 작가가 글이라는 상품을 독자에게 팔 때, 가장 먼저 드러나는 부분이 첫 문장이다. 그러니까 마트에 시식 코너가 있고, 영화에 예고편이 있고, 뮤직비디오에 티저가 있다면, 글에는 첫 문장이 있다. 첫 문장에서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다면 그 글은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흔히 소개팅에서 애프터 여부는 상대방이 모습을 드러내고 첫인사를 나누는 1분 사이에 결정된다고 한다. 글도 비슷하다. 시작부터 지루하고 어렵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문장을 끝까지 읽을 독자는 많지 않다.
따라서 첫 문장을 쓸 때는 더욱 고심해야 한다. 첫 문장만 자리를 잘 잡으면 나머지 문장들은 술술 풀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독자에게 '이 글을 계속 읽어야 할 이유'를 매력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 그것은 독자를 유혹하는 것과도 같다. 유혹의 핵심은 새롭고도 강렬한 무언가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다.
유명한 작품들의 첫 문장을 예로 들어보자. 이 작품을 다 읽지는 못했더라도, 아마 한 번쯤은 들어본 문장들일 것이다.
1)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장면의 시작과 전환을 압도적 간결함으로 표현했다. 문장 한 줄 안에 이동(긴 터널) → 전환(빠져나옴) → 풍경(설국)이라는 시간과 공간의 교체가 드라마틱하게 압축돼 있다. 이것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독자는 카메라가 긴 암흑의 터널을 지나서 하얀 설원을 스크린 가득 펼쳐 보이는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문장에 쓰인 단어들도 강렬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터널’은 경계, 단절, 고립을, ‘설국’은 순백의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즉 첫 문장에서부터 현실과 환상, 아름다움과 허무가 교차하는 세계를 그린다. 첫 문장이 향후 전개될 이야기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셈이다.
2) 김훈, 『칼의 노래』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짧은 문장이지만 함축성과 상징성이 강하다. 전쟁이라는 소설의 배경, 거기서 생기는 죽음과 생존의 대비, 그리고 주인공 이순신의 시선까지 단 한 문장에 들어가 있다. 그럼으로써 작품이 다루는 주제, 즉 ‘전쟁의 허무와 인간적 고뇌’가 자연스럽게 암시된다.
문장 구조적으로도 뛰어나다. 단문으로 끊어 말하면 리듬이 생겨난다(“버려진 / 섬마다 / 꽃이 / 피었다”). 그럼으로써 산문인데도 서정시와 같은 울림을 준다.
3)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세상살이의 보편적 진리를 짧고 굵게 표현했다. 소설의 서두라기보다 철학의 명제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독자에게 “이 이야기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이 문장은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압축이기도 하다. 『안나 카레니나』는 사랑과 결혼, 가정과 사회의 모순을 다룬다. 그 첫 문장에서부터 이미 작품의 주요 갈등을 관통하는 테제가 제시된다.
문장의 대비 효과가 뚜렷하다는 점도 강점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다”의 보편성과 일관성,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이다”의 특수성과 다양성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대비 효과를 통해서 독자의 긴장과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
4) 칼 세이건, 『코스모스』
“코스모스는 과거에 있었고, 현재에 있으며, 미래에 있을 모든 것이다.”
불멸의 우주에 대한 존재론적 선언이다. 세이건은 코스모스를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존재로 정의한다. 이로써 우주는 천문학적 공간을 넘어 철학적 의미를 획득한다. 독자는 '우주야말로 모든 것'이라는 압도적인 관점을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이 문장은 과학적 사실을 서술하면서도 반복적 리듬(The Cosmos is all that is or ever was or ever will be)을 통해 시적 울림을 만든다. 문학적 아름다움을 갖춘 과학적 서술인 셈이다.
이러한 우주에 대한 압도적 규정은 인간 위치의 상대화로도 이어진다. 즉, 인간은 거대한 우주 속의 미미한 존재라는 사유가 자연스럽게 열린다. 이는 저자 세이건의 독특한 철학적 관점이기도 하다. 게다가 짧고 단정적인 어조는 과학적 진리의 표현에 필수적인 권위와 카리스마를 갖추는 효과까지 낸다. 『코스모스』는 과학 지식(천문학, 생물학, 물리학)과 인류 문명사(철학, 역사, 문화)를 엮은 대서사시다. 그 모든 내용을 관통하는 관점이 바로 이 첫 문장에 담겨 있다. 이후의 13개 장은 이 선언을 구체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위대한 작품의 첫 문장은 아름다운 이미지나 철학적 명제 등으로 독자를 사로잡으면서도, 향후 펼쳐질 주제의식을 암시한다. 이러한 예시를 본받아 강렬한 첫 문장을 만들어 보자. 그리고 여세를 몰아 첫 단락 전체를 통해 독자의 호기심을 끌 이야기나 정보로 발전시키자. 예컨대, 서두에 질문을 던졌다면 바로 다음에 단서를 제공하여 독자가 답을 찾고 싶게 만들 수 있다. 또는 인상적인 장면의 묘사로 시작했다면, 그 맥락과 의미를 풀어주면서도 너무 많은 정보를 주지 않는 편이 좋다. 도입부의 역할은 독자와 밀당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다음 문장을 읽고 싶게 만드는 연쇄적 흡인력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만 되면 이후 본론으로 독자를 안내하기는 한결 쉬워진다.
글을 잘 마무리하는 것은 시작만큼이나 중요하다. 결말에서는 그동안 끌고 온 주제의식을 임팩트 있게 맺어 주어야 한다.
끝날 듯하면서 절대 끝나지 않는 결론이 계속 이어지는 목사의 설교처럼, 끝나야 할 곳에서 끝나지 않는 글은 질질 끌다가 결국 실패한다. … 글의 종결부는 희극에서 한 장의 마지막 대사와도 같다. 한참 어떤 장면을 보고 있는데(우리 생각이지만) 어떤 배우가 재미있거나 엉뚱하거나 날카로운 이야기를 하고는 갑자기 불이 꺼져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한 장이 끝난 것을 알고 깜짝 놀라지만, 이내 그 재치 있는 마무리에 감탄하게 된다.
- 윌리엄 진서, 『글쓰기 생각쓰기』
이게 말로는 쉬워 보인다. 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톤으로 끝내기는 의외로 쉽지 않다. 결론은 본론의 재확인이자 강조다. 그런데 많은 작가가 마지막에 와서 이것저것 덧붙이거나, 앞에서 한 말을 장황하게 반복하곤 한다. 이것은 실수다. 독자는 이미 핵심을 이해했는데 같은 논지를 되풀이하거나, 본론에 없던 거창한 교훈을 갑자기 추가하면 흥미를 잃는다. 이제 결론이니 글에 대한 인상적인 이미지를 한 번 더 남겨 보려는 과욕이 부르는 참사다.
글이 끝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끝내야 한다. 진서도 조언하듯, 전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전했다면 언제든 가장 가까운 출구를 찾아야 한다. 그러니 과감히 마침표를 찍자.
그럼 어떻게 해야 인상적으로 끝낼 수 있을까? 우선 결론에서는 새로운 논점을 억지로 추가하지 말아야 한다. 즉 결론의 메시지는 본론보다 크면 안 된다. 지금까지 제시한 생각을 가장 강렬하게 응축하는 데만 집중하자. 결론의 첫 문장부터는 독자가 “아, 이제 마무리구나” 하고 느끼도록 톤을 잡되, 주제의식이 가장 빛날 수 있는 한 방을 준비하자. 예컨대 본론에서 전개한 복잡한 논리 흐름을 한 문장으로 깔끔하게 요약하면 좋다. 또는 핵심 개념이나 내용을 본론과는 다른 톤으로 변주해서 보여줄 수도 있다.
1) 명언의 인용
한 가지 유효한 방법은 명언이나 격언을 인용하는 것이다. 이때의 인용 문구는 본론과 어차피 같은 내용이다. 다만 위대한 인물의 말로써 그것을 표현함으로써, 기존 맥락을 조정하고 메시지에 권위를 부여하는 효과가 생긴다.
연구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는 곧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느냐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오늘의 문제는 어제의 해법으로는 풀리지 않는다.”라고 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인구절벽, 저성장, 국제적 기술경쟁, 기후변화, 신종 감염병 등과 같은 미증유의 문제가 산적해 있다. 연구소야말로 이를 해결할 ‘오늘의 해법’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것은 사회의 과제를 과학의 논리로 전환하고, 과학의 성과를 사회의 언어로 번역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래서 연구소는 다시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과학을 설명하고, 미래를 상상하며, 시민과 신뢰를 쌓아야 한다.
- 배대웅, 『연구소의 승리』
“연구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는 곧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느냐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라는 문장은 책 전체의 논지를 압축한다. 곧이어 리처드 파인먼의 “오늘의 문제는 어제의 해법으로는 풀리지 않는다”라는 명언이 들어가면서, 시대적 도전과 맞닿는 진지한 성찰로 격상된다. 즉, 논리적 요약 → 명언 인용 → 사회적 화두 제시라는 구조가 주장에 힘을 더해준다. 결국 이 문단이 노리는 효과는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메시지에 권위 부여(파인먼이라는 이름이 주는 신뢰감), 맥락 전환(같은 주제를 새로운 언어로 표현), 감정적 여운(연구소와 사회를 연결하여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전달).
2) 수미상관의 강조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도입부로 되돌아가는 수미상관형 마무리도 강력하다. 글의 처음에서 제시한 장면이나 비유를 결론에서 다시 호출하는 방식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반복이 아니라 변형이다. 처음에는 상징이었던 것이, 끝에서는 의미가 된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대표적 사례다. 이 책은 어느 마을에 이상한 침묵이 찾아왔다는 상상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새가 노래하지 않고, 봄이 와도 생명이 움직이지 않는 마을. 독자는 그 장면을 하나의 우화처럼 받아들인다. 이후 카슨은 농약 사용과 생태계 파괴의 과학적 근거를 차분히 제시한다.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 처음의 그 ‘침묵한 마을’을 다시 불러온다. 그것이 더 이상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는 경고다. 도입부의 우화는 결말에서 시대적 경고로 변한다. 이처럼 처음의 장면이 마지막에서 다른 의미로 울릴 때, 글은 비로소 하나의 원을 그리면서 완성된다.
이러한 수미상관형 마무리의 장점은 분명하다. 독자는 다음과 같은 효과를 체감할 수 있다.
첫째, 글의 통일성이 강화된다. 처음에 던졌던 질문이나 장면이 마지막에 다시 등장하는 순간, 독자는 무의식적으로 구조를 인식한다. “이 글은 무의식적으로 흘러간 것이 아니라 철저히 설계된 것이구나.” 즉 설명이 아니라 구조 자체가 메시지를 증폭시킨다.
둘째, 장황한 요약 없이도 주제의식을 응축할 수 있다. 결론에서 처음의 문장을 불러오는 것은 앞에서 했던 말을 반복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반복을 줄이는 기술이다. 독자는 이미 그 문장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문장이 다른 맥락에서 울릴 때 스스로 의미를 완성한다.
셋째, 글이 하나의 형태로 기억된다. 수미상관형 마무리는 정보를 덧붙이지 않는 대신 구조를 닫는다. 처음과 끝이 연결되는 순간, 글은 직선이 아니라 원을 이룬다. 독자는 논리를 이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하나의 설계를 경험했다고 느낀다. 그래서 문장이 끝난 뒤에도 글의 구조가 머릿속에 여운처럼 남는다.
결론은 글의 주제의식을 꽃피우는 자리다. 새로운 씨앗을 심는 일이 아니라, 처음에 심었던 씨앗이 만개하도록 마지막 햇살을 비춰주는 단계다. 그러니 너무 욕심내어 이것저것 더 넣지 말자. 대신 지금까지 쓴 글을 압축해 담을 수 있는 명징한 말을 찾도록 하자. 그것이 인용문이든, 도입부에서 쓴 문장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결론의 한두 문장이 독자의 마음에 작별 인사처럼 또렷이 남아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논픽션은 논리적인 글이므로, 결론에서는 감성적으로 마무리하는 편이 더 좋다. 요컨대 논리와 짝을 이루는 정서의 울림, 또는 여운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감성적 마무리는 본론에서 다뤘던 이성적 논리와 결합하며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처음 10%의 힘으로 독자를 끌어들였다면, 마지막 10%의 힘으로는 독자의 기억에 글을 각인시켜야 한다. 그래야 한 편의 글이 비로소 작품으로 남는다. 조지프 퓰리처의 가르침이다. “그림 같이 써라. 그러면 기억에 머물 것이다(Write graphically – and they will keep in mind).” 이 말은 특히 결론에 적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