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칼에 베는 검객의 문장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강의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만약 대재앙으로 모든 과학 지식이 사라지고 단 한 문장만 후대에 남길 수 있다면, 가장 적은 말로 가장 많은 정보를 담는 문장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그의 답은 ‘원자 가설’이다.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라는 하나의 개념만 있어도, 물질의 성질과 화학반응, 열과 생명 현상까지 다시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질문을 그대로 글쓰기로 옮겨 보자. “글 잘 쓰는 법에 대해 단 한 문장만 남긴다면 무엇이어야 할까?” 기술은 대부분 여러 원칙의 묶음으로 구성되지만, 그걸 관통하는 근본 규칙이 하나쯤은 있다. 글쓰기의 기술에서 그 규칙은 이것이다. “간결하게 써라.” 파인먼이 원자라는 개념에 세계를 접어 넣었듯, 좋은 글은 논지를 가장 적은 말로 가장 또렷하게 작동시킨다. 이것은 선호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문장을 장식품이 아니라 작동 장치로 볼 때, “간결하게”는 곧 성능 개선을 뜻한다. 불필요한 부품이 달린 기계는 무겁고 고장 나기 쉽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불필요한 말은 사고를 둔하게 만든다.
윌리엄 진서도 그의 책 『글쓰기 생각쓰기』에서 "간소한 글이 좋은 글이다"라고 선언하며 글쓰기의 제1원칙으로 삼았다. 하지만 여기서 오해가 생긴다. 간결하게 쓰는 것을 단순히 '짧게 쓰는 것(Short)'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짧음'이 물리적 길이의 속성이라면, '간결함(Concise)'은 쓸모와 가치의 속성이다. 글쓰기의 고전 『영어 글쓰기의 기본』을 쓴 윌리엄 스트렁크 주니어는 이를 이렇게 정의했다. "강한 글은 간결하다. 문장에 불필요한 단어가 없어야 하고, 단락에 불필요한 문장이 없어야 한다. 이는 도면에서 불필요한 선이 없어야 하고, 기계에서 불필요한 부품이 없어야 하는 이유와 같다."
그는 이 원칙이 모든 문장을 짧게 만들라는 뜻이 아니라, "모든 단어가 제 몫을 하게 하라(Every word tell)"는 뜻이라고 했다. 즉, 간결함이란 '의미의 밀도'와 '논지의 기여도'에 관한 문제다. 어떤 단어가 논지를 전진시키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단어를 걷어내는 과정, 그것이 바로 간결하게 쓰는 일이다.
작가는 문장이라는 칼을 휘두르는 검객과도 같다. 뛰어난 검객일수록 불필요한 초식이 없다. 화려한 회전이나 과시적인 기교는 실전에서 허점만 될 뿐이다. 고수는 최단 거리에서 단 한 번의 베기로 목표를 타격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언어적 장치들로 논지를 전달해야 한다.
문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멋 부리기 본능'이다. 우리는 글을 쓸 때 본능적으로 지적 우월감이나 감수성을 뽐내고 싶어 한다. 화려한 수식과 개념어로 치장된 글은 겉보기에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논지라는 목표물을 향해 나아가는 데에는 방해만 될 뿐이다. 검객이 명검을 자랑하느라 정작 베기를 소홀히 한다면, 그는 검객의 자격이 없다. 문장에서의 단어는 논지라는 기계를 가동하는 부품이다. 기능하지 않는 부품은 과감히 제거해야 한다.
간결함이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이처럼 멋있어 보이고 싶은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과장하거나 수식을 덧붙이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것을 깎아내어 본질만 남기는 데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단순함은 궁극의 정교함이다”라고 했다. 단순해 보이는 문장일수록 그 뒤에는 더 많은 사유와 선택이 숨어 있다. 간결함은 포기가 아니라 숙련의 결과다.
문장을 간결하게 유지하려면 형용사와 부사의 사용을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 형용사는 명사를 수식하지만, 지나치면 명사가 가진 고유의 힘을 가린다. 부사는 동사의 역동성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들로 뒤덮여 있다." 문장은 명사와 동사 자체의 힘만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이상적이다.
어휘 선택도 간결해야 한다. 같은 의미라면 더 적은 글자 수의 어휘를 고르는 것이 좋다. 이 관점에서 보면 한자어가 유용하다. 대개 한자어는 여러 단어를 한 덩어리로 묶어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힘이 센 사람’보다 ‘강자(强者)’, ‘내용을 분석해서 따짐’보다 ‘검토(檢討)’, ‘급격히 바꾸어 아주 달라지게 함’보다 ‘변혁(變革)’ 같은 단어들이 그렇다.
또 다른 예도 있다. 몇 해 전 인터넷에서 현학 논란을 일으켰던, 이동진의 영화 <기생충> 한 줄 평을 보자.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 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불과 몇 개의 한자어에 영화의 주제의식과 서사적 특성을 모두 담아냈다.
이 문장에서 한자어를 최대한 배제하고 순우리말로 다시 써보면 이렇다. “인물들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과정을 통해 계급의 현실을 매우 선명하게 드러내며, 그 이야기를 날카롭고도 애잔한 분위기로 치밀하게 짜 맞춰 구성한 풍자극" 설명은 길어졌지만, 의미는 모호해졌다. ‘명징’ 하나로 전달되었던 의미는 ‘매우 선명하다’라는 표현으로 늘어났다. 또한 ‘직조’는 ‘치밀하게 짜 맞춰 구성하다’라는 서술로 풀어졌다.
이처럼 한자어는 말을 압축하고 논지를 정제하는 강력한 도구다. 흔히 한자어를 쓰면 현학적으로 보인다는 오해가 있다. 그러나 한자어는 ‘유식함’이 아니라 ‘경제성’을 위한 것이다. 이동진의 <기생충> 한 줄 평이 뛰어난 이유도 있어 보여서가 아니라, 복잡한 영화적 구조를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해 낸 경제성의 승리에 있다. 이렇듯 간결한 글을 쓰려면 한자어를 능숙하게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간결함의 미학을 실제로 구현한 대가들의 문장을 살펴보자. 이들은 단순히 문장을 짧게 쓰는 것을 넘어, 문장에 엄청난 중력과 리듬을 담아낸다.
1) 김훈
김훈의 문장이 강력한 이유는 감정을 형용사로 설명하지 않고, 사실로써만 제시하기 때문이다.
"진주성에서 조선 군사 5천이 죽었다. 닭 한 마리 살아남지 못했다.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
- 김훈(2001), 『칼의 노래』
이 문장에는 “슬프다”, “비참하다”, “처절하다'라는 표현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닭 한 마리 살아남지 못했다"라는 사실의 제시가 그 어떤 수식어보다 강렬한 비극성을 전달한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닭이라는 하찮은 생명의 전멸로 치환하여 보여주는 방식이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더 큰 감정의 파고를 만들어낸다.
"임금은 장수의 용맹을 원했으나, 그 용맹을 두려워하였다."
- 김훈(2001), 『칼의 노래』
이 문장은 선조와 이순신의 복잡한 정치적 관계를 단 한 줄로 요약했다. '원함'과 '두려움'이라는 두 동사의 대비만으로 수십 페이지의 역사적 설명을 대체했다. 이 또한 수식어 없이 주어와 동사만으로 논리의 뼈대를 세우는 김훈식 간결함의 정수다.
2)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의 간결함은 '투명함'에 있다. 그는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으면서도 세계의 본질을 명료하게 정의한다.
"모든 건 스쳐 지나간다. 누구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 무라카미 하루키(1979),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이 문장은 '허무'라는 추상적 관념을 평범하고 쉬운 단어들로 재조립했다. 주어와 서술어 사이의 거리가 짧고 리듬이 경쾌하여, 독자의 뇌에 막힘없이 전달된다. 하루키는 복잡한 내면세계를 간단한 문장으로 그려낸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그 안에 담긴 세계의 복잡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한정된 목적은 인생을 간결하게 한다."
- 무라카미 하루키(2013),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이 문장 또한 하루키 문체의 본질을 보여준다. 긴 인생의 철학을 '한정된 목적'과 '간결'이라는 두 단어로 정의했다. 복잡한 삶 속에서 명확한 목표에 집중할 때, 불필요한 고민과 번뇌가 줄어들고 삶이 담백해진다는 의미를 담아냈다. 이렇듯 그의 문장은 주어와 서술어 사이의 거리가 짧고 논리 전개가 명확하다. 그래서 인지적 부하가 거의 없다.
3) 조지 오웰
오웰의 간결함은 정치적 태도에서 나온다. 그는 언어가 흐려지면 사고도 흐려진다고 했다. 그래서 문장도 가장 단순한 구조로 세운다.
“정치적 언어는 거짓을 진실처럼 들리게 하고, 살인을 존경스러운 일처럼 보이게 하며, 순전히 공허한 말에 견고함의 외양을 부여하도록 고안된다.” - 조지 오웰(1946), 『정치와 영어』
이 문장은 길어 보이지만 구조는 단순하다. 주어 + 동사 + 병치된 목적의 구조. ‘거짓/진실’, ‘살인/존경’, ‘공허/견고함’이라는 대비가 의미를 확장한다. 형용사를 남발하지 않고, 평가를 덧붙이지도 않는다. 대신 작동 원리를 분명히 드러낸다.
논픽션의 문장은 바로 이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 수식으로 분노를 표현하기보다, 정확한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것. 그럴 때 문장은 선명해진다. 오웰은 같은 책에서 “언어가 타락하면 사고도 타락한다”라고도 썼다. 이 문장 역시 주어와 서술어만으로 이루어진다. 설명은 없지만 의미는 또렷하다.
김훈이 사실을 제시하고, 하루키가 관념을 투명하게 보여준다면, 오웰은 메커니즘을 드러낸다. 세 사람 모두 공통점이 있다. 불필요한 수식을 제거하고 핵심 구조만 남긴다는 점이다. 역시 간결함은 길이가 아니라, 기능의 문제다.
다만 간결함에 대한 잘못된 맹신은 위험할 수 있다. 강준만은 『글쓰기가 뭐라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훈을 함부로 흉내 내다간 큰일 난다." 김훈의 단문은 수십 년의 기자 생활과 한문학적 소양을 통해 정제된 결과물이다. 내공이 부족한 초보자가 단순히 마침표만 자주 찍는다고 해서 김훈 같은 힘이 생기지는 않는다. “김훈이라는 황새를 따라가다 뱁새의 가랑이가 찢어지는 불상사를 막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실제로 무조건 문장을 짧게 자르기만 하면, 논리적 연결 고리가 끊어져 글이 파편화될 수 있다. 진정한 간결함은 물리적 짧음이 아니라 의미의 효율성이다. 때로는 긴 문장이 논리적 선후 관계를 명확히 하는 데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앞서 본 오웰의 문장이 그렇다. 길어도 불필요한 단어가 없고 모든 단어가 제 기능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간결한 문장이다. 중요한 것은 짧고 길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문장 안에 군더더기가 섞여 있는가이다. 따라서 우리는 김훈의 '길이'가 아니라 '절제'를 배워야 한다. 단문과 중문을 리듬감 있게 배치하되, 모든 단어가 논지를 전진시키는 데 기여하게 만드는 균형감각이 핵심이다.
실제 글쓰기에서 어떻게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간결한 '검객의 문장'으로 바꿀 수 있을지 예문을 통해 살펴보자.
1) 부사의 과잉
(Before) 그는 매우 극도로 분노한 상태에서 격렬하게 항의 의사를 표출했다.
(After) 그는 분노하여 항의했다.
‘매우’, ‘극도로’, ‘격렬하게’는 강도를 중복해 설명할 뿐 새로운 정보를 더하지 않는다. 감정을 과장하나 의미는 늘어나지 않는다. ‘항의 의사를 표출했다’ 역시 ‘항의했다’로 충분하다. 명사와 동사만 남기니 문장은 짧아졌으나 오히려 힘이 생긴다. 감정의 크기는 독자가 맥락에서 판단하면 된다.
2) 결정을 미루는 말의 남용
(Before) 우리는 다양한 측면에서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현안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After) 우리는 이 현안을 검토해야 한다.
‘다양한 측면에서’, ‘복합적으로’, ‘심도 있게’, ‘필요가 있다’는 방향을 분명히 하지 않은 채 책임을 흐리는 말이다. 문장은 늘어나고, 결론은 사라진다. ‘검토해야 한다’라는 한 단어로 압축하면 문장이 단정해지고 논지가 앞으로 나아간다.
3) 중복 표현의 장황함
(Before) 이 정책은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있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
(After) 이 정책은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
‘향상하는 데 있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기여할 가능성’은 같은 의미를 반복한다. 불확실성을 과잉 표현하며 문장만 늘린다. ‘개선할 수 있다’라는 동사 하나로 정리하자 의미는 그대로 유지되면서 문장은 단단해졌다. 단순히 길이만 줄인 것이 아니라 밀도를 높인 것이다.
4) 설명형 표현의 과잉
(Before) 내용을 분석해서 꼼꼼하게 따져보고 판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After) 내용을 검토해야 한다.
‘분석해서 따져보고 판단하는 과정’은 ‘검토’라는 한 단어로 대체 가능하다. 같은 의미를 단계적으로 풀어쓴 장황한 구조다. 한자어를 활용해 압축하자 문장은 가벼워지고 의미는 더 또렷해졌다.
5) 평가적 수식의 과잉
(Before)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매우 심각하고 중대한 병폐를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After)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병폐를 드러냈다.
‘매우’, ‘심각하고’, ‘중대한’, ‘여실히’, ‘결정적인’은 모두 평가를 덧붙이는 말이다. 사실을 설명하기보다 감정을 밀어 넣는다. 이를 걷어내고 사건과 결과만 남겼다.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사실을 제시하는 것, 이것이 김훈식 절제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이렇게 말했다. “완벽함은 더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이루어진다.” 이 문장은 간결함의 의미를 정확히 보여준다. 글은 덧붙임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남겨야 할 것만 남겼을 때 비로소 형태가 선명해진다. 불필요한 말을 제거하는 순간, 문장의 핵심이 드러난다.
우리는 흔히 ‘풍부함’을 ‘많음’으로 착각한다. 설명을 덧붙이고, 감정을 강조하고, 수식을 보태면 글이 충실해진다고 믿는다. 그러나 말이 많아질수록 독자의 사고는 분산된다. 핵심과 주변이 구분되지 않으면,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의미의 힘은 양이 아니라 집중에서 나온다. 군더더기를 걷어내면 독자의 시선이 한 지점에 모인다. 그때 문장은 가벼워지고, 독자의 사고는 더 멀리 나아간다. 덜어낸 자리에는 공백이 아니라 방향이 남는다.
이제 오늘 쓴 당신의 문장을 다시 읽어보자. 그 문장은 단칼에 목표를 찌르고 있는가? 만약 화려한 칼춤만 추고 있다면, 주저 없이 군더더기를 베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