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책은 좀 팔렸으면 좋겠다

by 배대웅

요즘 나는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다시 쓰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미 쓴 문장을 지우고 새로 쓰는 쪽에 가깝다. 세 번째 출간작 『자기만의 글쓰기 수업』 때문이다. 초고는 거의 끝났는데, 출판사에서 한마디를 던졌다. “어렵습니다.”


이 말은 짧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교양서 작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듣는 주문이다. 문제는 ‘쉽게’라는 말이 생각보다 까다롭다는 데 있다. 문장을 풀어쓰는 문제가 아니다. 생각의 밀도를 유지한 채, 독자의 언어로 다시 써야 한다. 이건 매번 새로 배우는 기술이다.

게다가 이번 책은 과학이 아니라 글쓰기 이야기다. 바깥 세계가 아니라 내 안에서 출발한 주제다. 그래서 더 까다롭다. 세계를 설명하는 것보다, 내 생각을 꺼내 보편적인 언어로 옮기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붙는다. 이번 책은 잘 팔려야 한다. 이건 꽤 노골적인 목표다.


첫 책 『최소한의 과학 공부』는 데뷔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두 번째 책 『연구소의 승리』는 아무도 다루지 않았던 분야에 깃발을 꽂는다는 의미가 있었다. 둘 다 나름의 목표는 이뤘다.


다만 판매량은… (잠시 눈물 좀 닦고) 자부심만 남았다. 특히 『연구소의 승리』는 정말 안 팔렸다. 누군가는 의미 있는 책이라고 치켜세워주지만, 작가도 사람인지라 순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책을 보는 마음은 쓰라리다.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다. 글쓰기 책은 독자층이 훨씬 넓다. 그리고 나 역시 욕심이 난다. 이 책에는 흔히 말하는 ‘자기계발서’의 성격도 한 스푼 섞여 있으니, 이번에는 좀 터져줬으면 싶다. 작가로서 오래 버티려면 한 번쯤은 시장에서도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데뷔 후 아싸 오컬트 작가로 쭈굴거리다가 『노르웨이의 숲』으로 단숨에 핵인싸가 되었다. 나에게도 그런 전환점이 필요하다.


이게 아주 근거 없는 기대는 아니다. 실제로 이번 연재는 브런치에서 반응이 있다. 지난 5년 동안 나를 모른 척하던 브런치가 이번 연재 글은 두 편이나 메인에 걸어주었다. 또 80만 구독자가 모여 있는 카카오톡 채널에도 한 편을 꽂아주었다. 덕분에 새로 유입된 구독자분들이 꽤 많다.


그래서 지금 나는 정성스럽게 퇴고를 하고 있다. 책을 내기 위한 마지막 고비를 넘고 있다. 책은 한 번 세상에 내놓으면 다시 불러들일 수 없다. "아, 그 문장 좀 수정할게요"라고 외쳐봐야 이미 늦었다. 그래서 계약서의 마감 기한을 한참 넘긴 이 순간에도,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문장을 매만진다.


아마 6~7월에는 책이 나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계속 이 상태일 것이다. 문장을 붙잡고, 조금 더 나은 문장을 찾겠다고 버티는 상태. 그래도 이 지겹도록 반복적인 작업이 싫지는 않다. 이것도 책을 쓰는 작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에.




어제 독서모임에서 재미있는 주제로 이야기를 했다. “나중에 어떤 이름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나는 거의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저는 ‘작가’요!”


이제껏 살면서 수많은 호칭을 거쳐왔다. 회사에서는 '책임'이라 불린다. 회사에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직급이니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그 호칭을 들을 때마다 나는 거대한 기계 속의 부품이 된 것 같다. 조직이 요구하는 기능과 책임을 다해야만 유효한 이름이랄까.


반면 '작가'라는 호칭은 다르다. 나를 독립된 주체이자 사유하는 자유인으로 세워준다. 그 안에는 기능보다 방향이 들어 있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느냐를 드러내는 이름이다.


본격적으로 작가라 불린 지 이제 2년 남짓이다. 주위에서 나를 작가라고 부를 때마다 나는 여전히 조금 어색하다. 동시에 신선한 자극도 받는다. 아직 완전히 익숙해지지는 않았지만, 그 호칭만큼은 다른 어떤 이름보다 또렷하게 나를 설명해 주는 느낌이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꽤 늦게야 나 자신을 알아봤다. 어릴 때의 나는 특별히 잘하는 게 없었다. 공부, 운동, 예술, 어디에도 재능이 없었다. 어른들의 평가는 늘 비슷했다. “착하다”, “성실하다.” 물론 좋은 의도로 한 말이었지만, 방향을 알려주는 말은 아니었다.


마흔을 앞두고서야 한 가지가 분명해졌다. 나는 글쓰기를 꽤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시간을 들일수록 더 잘하고 싶어졌고, 문장을 다듬는 그 지루한 과정이 전혀 낭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글을 잘 쓴다”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고, 그게 단순한 격려가 아님을 스스로 납득하게 됐다.


내 글이 다른 사람에게 도달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어떤 이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고, 어떤 이는 관심 없던 분야를 다시 보게 되었다고 했다. 파편적으로 알던 지식이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되었다는 이도 있었다. 독서모임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평소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책이었는데, 생각보다 좋은 지적 경험이었다는 말들.


결국 세 가지가 겹쳤다.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 내게 ‘작가’라는 이름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물론 나는 내가 어떤 작가가 될 수 있는지도 안다. 모두가 아는 이름이 되기는 어렵다. 소위 베스트셀러를 쓰는 것은 아마 내 길이 아닐 것이다. 대신 나는 다른 쪽을 택한다. 많이 읽히는 글보다는, 읽은 이에게 분명한 이해와 지식을 남기는 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세우게 만드는 글.


그래서 바람은 거창하지 않다. 누군가 내 이름을 떠올렸을 때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그 작가 책은 쉽게 읽히지는 않는데, 읽고 나면 뭔가는 남더라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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