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스포트라이트 켜보기(1)
밀려 닥쳐오는 일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사회적 동물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발생하는 작은 이벤트와 사건들도 마음에 부담이 되었다.
치이고 치이고 치이다가, 결국 지쳐버렸다.
한참 행복해야 할 이러한 순간순간들이 삽시간에 육중한 무게로 다가오자 나는 더 힘들었다.
그 무거운 벽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취했던 어리석은 행동 리스트는 다음과 같았다.
해야 할 일을 매일매일 몽땅 적고 도망치고 회피하고 미루기
바쁜척하기 전화받지 않기, 알람 꺼버리기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뭔가 하고 있다고 떠들거나 허세부리기
마음껏 게을러졌다가 우울함과 죄책감에 좌절하기
당장 이익과 감정을 취할 수 있는 중독적인 것에 빠져들어 보기
생각 없이 쉬기... 계속 쉬기.. 그러다가 결국 숨만 쉬기
열정에 불타올랐다가 3시간 만에 지쳐버리기
낮과 밤이 바뀌거나 낮낮밤으로 살거나 밤밤낮과 같은 어지러운 루틴 만들기.... 등등
노트에 솔직하게 적힌 '이런 침체된 것들'을 쭉 보면서,
'손으로 기록해 두는 것, 나와 대화하기'를 389일째를 이어가고 있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고 했던가, 이불속은 더 위험했다.
'누군가는 깨어서 각자의 본분을 다하고 있을 텐데, 뒤처지면 안 되는데!! '
더 이상 잘 수 없을 때까지 자다가 결국엔 일어나게 되는 나만의 축축한 알람이 울린 어느 날.
암막처럼 드리워진 블라인드 뒤로 해가 중천에 떠있음을 확인했다.
누군가 이불 밖은 위험하다고 했던가.
내가 이불속에 오래 있어보니, 이불속은 더 위험하기도 하다.
그 어두운 이불속에서는 아무것도, 그 어떤 일도 결국 내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들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를 일으키는 것은 누구인가? 불을 켜는 것은 누구인가? 이불을 정리하는 것은 누구인가?
불 꺼진 동굴 속에서 내가 찾은 작은 불빛은 '키(Key)와 운전대'였다.
'뭔가를 해야 한다' 보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었다.
허겁지겁 얕게 쉬던 빠른 숨보다 길고 편안한 호흡이 마음에 들었다.
몸과 마음의 긴장 선이 어느 정도인지 편안히 느껴보았다. 정신없이 뭔가를 하고 있다고 느낄 때도 긴 호흡을 한번 할 수 있다면 나는 제자리가 어디인지 알 수 있다는 기분까지 들게 한다.
내 심장이 얼마나 어떻게 뛰고 있는지 손바닥을 통해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40여 년이 넘게 꾸준히 작은 진동을 울리는 이 친구가 새삼 대단하다.
이 것도 나였구나.
내친김에 사느라 잊어버렸던, 자주 들리지 못해 미안한 곳을 둘러보았다.
중둔근, 아킬레스건, 장요근, 복숭아뼈, 햄스트링.... 내 의지로 두개골을 제대로 만져본 게 얼마만이었던가. 유창한 손끝과는 달리 꼬물꼬물 하지만 발가락들도 여전히 잘 있었고, 잘하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할지 하나씩 찾아가는 작업'은 어느 곳 하나 익숙한 곳과 다를 만한 점이 없었다. 다만 그간의 부재를 증명이라도 하듯 어색함과 익숙함이 여기저기 공존하며, 뭉쳐있거나 흩어져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