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수명 +10분, 1시간, 1일의 가치

마지막으로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by 우니크


가끔씩 산책로나 지하철 입구 등 계단이 많은 곳을 지날 때면 계단 1개, 또는 몇 개를 오를 때마다 건강수명이 1분씩 늘어난다는 표지판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평소엔 조금 더 돌아가더라도 높은 계단보다는 완만한 경사로를 선호하지만, 이런 표지판을 보면 이상하게도 힘을 내어 기어코 계단을 올라간다.


엊그제도 뜨거운 햇빛을 피해 걷기 운동을 하고자

남산 둘레길로 가던 중 수명을 늘려주는 계단길을 만났다.


계단을 오르고, 오르고 또 올라 완만한 평지에 다다랐을 때 내가 얻은 건강수명은 +23분이었다. 오르는데 약 10분 정도 걸렸는데 그 2배가 넘는 시간을 더 벌었으니 남는 장사(?)인 셈이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앞둔 순간, 조금의 시간이 더 허락된다면? 단 십 분, 한 시간, 하루의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그 마지막 시간은 어떻게 쓰일 수 있을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죽기 직전에는 사실 거동은 고사하고 호흡도 가빠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추가로 연장된 짧은 시간은 무의미하다고. 물론, 현실적인 관점에서 틀린 말은 아니다. 또한 사람마다, 상황에 따라 그 시간의 유용성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비록 짧은 시간일지라도, 추가로 주어진 그 시간이 삶의 마지막을 앞둔 이와 사랑하는 가족에게 충분히 가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플러스 10분.

사랑하는 이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사랑한다는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시간. 설령 호흡이 가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어도, 들을 수 있다. 아무리 들어도, 아무리 말해도 절대 과하지 않은 '사랑해'라는 말, 그에 담긴 마음. 플러스 10분은 그 마음을 한 번 더 나눌 수 있는 시간이다.


플러스 1시간.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시간. 한 번 더 얼굴을 쓰다듬고, 입을 맞추며 고마웠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시간. 비록 소리 내어 말할 수 없어도, 눈을 맞추지 못할지라도 마음은 전할 수 있는 시간이다.


플러스 24시간.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시간. 어떤 이유로 죽음을 맞든, 마지막 순간은 갑자기 찾아온다. 때문에 해외에 나가 있는 등, 멀리 있는 가족들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와도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승을 떠나기 전 기적적으로 하루를 더 연명할 수 있다면, 보고 싶은 이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볼 수 있고, 그들도 임종을 지키지 못했음에 평생 가슴 아파하지 않으리라.



사실 건강수명은 기대수명과 달리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하여 활동하지 못한 기간을 제외한, 말 그대로 '건강하게 산' 기간을 뜻한다. 따라서 건강수명이 추가된다는 것은, 나의 상상처럼 삶의 끝에서 시간이 조금 더 연장되는 것이라기보단 인생 전체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현재 건강하게 살고 있다면 십 분, 한 시간, 하루라는 시간은 크게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죽음 앞에선 너무나도 간절하게 느껴질 시간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의 인생이니 언제나 건강을 자신할 수도 없고, 삶의 마지막 순간 또한 내 의지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몇 분의 시간조차도 소중하게 여기며 잘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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