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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구름 Oct 03. 2020

감정과 판단 (2) - 직장 남녀


양치기 소년에 관련된 동화에서는 세 번이나 '늑대다~!'라고 외쳐 동네 사람들을 속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두 번까지는 속아줄 수 있지만, 세 번째부터는 '일관된' 거짓말에 아무도 속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양치기 소년'같다고 할 만큼 양치기 소년은 일종의 거짓말 대명사가 되었다. 불쌍한 양치기 소년.


2019년 두산과 NC 경기가 있던 날이다. 두산에서 NC로 이적을 한 양의지 선수가 타석에 들어섰다. 타율 3할 5푼을 넘고 있는 타율 1위 선수. 투수의 유니폼에는 '윤명준'이라고 되어있는데, 해설자들은 '최원준'이라고 부른다. 최원준 선수가 유니폼을 가지고 오지 않아 윤명준 선수의 유니폼을 빌려 입었단다. 야구 선수가 유니폼을 깜빡하다니, 이런 일도 다 있네.


초구는 몸 쪽 깊은 곳으로 '볼'판정을 받았다. 두 번째 공은 몸 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양의지 선수의 배 부분에 있는 옷을 살짝 스쳤다.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에 성공.

해설을 듣고 있자니 해설자와 캐스터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귀에 들어왔다. (누가 캐스터이고 해설자였는지는 기억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 대략의 내용만 쓴다.)


'몸 쪽으로 바짝 붙이는 공을 던지려다 실투가 나왔다.'

'포수가 바깥쪽에 앉아있네요. 바깥쪽으로 던지려다 손에서 미끄러졌어요.'


두 캐스터와 해설자는 몸에 맞는 공에 대한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최원준 투수는 몸 쪽 깊은 곳으로 던졌을까, 바깥쪽으로 던지려다 공이 빠졌을까?


우린 타인의 행동에 대해 다양한 평가를 내린다.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을 거야'라거나, '또, 또...또 저러는 군'이라며 비난을 하기도 한다. 타인에 대한 행동 판단의 중요한 근거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에 기인한다. (1) 그 행동에 대한 '내부 요인(의도성)'이 있었는가? 이는 행동의 원인을 내적 요인에서 찾는다. 불쌍한 양치기 소년의 '늑대야~!'라는 외침은 진짜 늑대 때문이 아니었다. 순전한 양치기 소년의 불손한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2) 그 행동에 대한 '외부요인'이 있었는가? 항상 일찍 출근하는 동료가 오늘은 어쩐 일인지 지각을 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어제오늘 무슨 사고라도 났나 보다. 지각에 대한 원인을 외부 요인으로 판단한 것이다.


직장생활에서 화가 나거나 우는 동료들을 보면 우리들은 어떤 판단을 하게 될까? "또.. 또 저러는군!"이라며 혀를 끌끌 찰 수도 있다. "무슨 일이 있나?"라며 그런 감정을 이끌어낸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만약, 화를 내는 동료가 남자 vs. 여자라면, 우리는 그 판단을 달리 할까?


한 연구에 따르면, 직장에서 화를 내는 남자 동료들을 보면 그 행동에 대한 외부 요인을 먼저 살펴본다고 한다. 즉, 남성 동료가 화를 낼 때에,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화를 내고 있다고 판단하거나, 누군가 부하(혹은 상사)가 화를 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화를 내는 것을 정당화하려 한다. 반면, 여성 동료가 화를 낸다면 그 원인을 내부 요인으로 판단하려는 경향이 높다. 즉, 여성 동료가 화나는 것은 그녀의 성격 때문이라고 단정 짓거나, 자기 관리가 부족하다고 판단한다. 화를 내는 사람이 잘못이라는 태도이다.


이것은 '우는' 모습을 보일 때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남성 직원들이 우는 이유를 외적 요인으로 생각하는 반면, 여성 직원들의 우는 모습에는 내적 요인으로 (예: 나약하다) 판단하려는 경향이 높다.


화를 내는 것도, 우는 것도 여성 직원들에게는 불리한 상황이다. 사실 여성들이 감정 표현에 풍부하다고들 한다.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감정 표현의 차이가 유전적 요인보다는 어릴 적부터 자라면서 겪게 되는 사회화 과정에 더 큰 영향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직장에서는 이런 감정의 표현은 여성 직원들의 지위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니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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