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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구름 Apr 02. 2021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상호 주관적 실제

강아지 '달리'를 키운 지 이제 3주 정도 되었다. 강아지를 키우기로 결심하면서 "어떻게" 각자의 역할을 분담할 것지 논의를 했다. 딸아이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기에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대변과 소변을 담당했다. 나는 목욕을 시키고 털과 발톱을 깎아주는 역할이다. 아들은 강아지와 잘 놀아주는 담당을 한단다. -.-  아내는 전체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담당이다(모든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등등의 역할 분담 회의는 수월하게 끝이 났고, 지금까지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역할 분담의 힘이다.  


역할 분담의 힘은, '누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상호간의 동의에서 나온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만약 내가 "딸은 강아지의 대변/소변 담당"이라고 생각하는데, 딸은 "나는 강아지 목욕 담당"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상호간에 동의하지 않는 역할 분담이 생긴 것이다. 각자 자신만 알고 있는 역할 분담은 '주관적 실제'이다. 이것이 서로 다를 때 역할 분담은 혼란을 일으킨다. 반면, 이것이 서로 공유되어 역할 분담에 대한 동의가 이루어지면 '상호 주관적 실제'가 되는 것이다. 이때 역할 분담은 힘을 발휘한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서로 같은 것을 믿고 있는 상태인 '상호 주관적 실제'가 다른 동물들에게 없는, 인간의 경쟁우위라고 했다.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조직행동 연구에서 transactive memory system(TMS)이라는 것이 있다. 굳이 번역하자면 "분산 교류 기억체계"정도가 된다. 영어로는 "agreement about knowing who knows what"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이는 (1)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것(knowing who knows what) (2) 그러한 지식들이 서로 간에 일치하는 상태(agreement)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나는 가족, 친척들의 생일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한 정보를 아내가 알고 있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필요할 때마다 아내에게 물어보면 되니까. 반면, 캠핑용품이나 연장과 같은 도구들이 어디에 있는지 아내는 알 필요가 없다. 내가 알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된다. 그리고 이러한 담당 역할에 대해 서로 동의하고 있는 상태가 agreement about knowing who knows what이다. 이때 효율적인 역할 분담이 작동할 수 있다. 




팀의 문제, 조직의 문제에 대해 직장인들과 토론하다 보면 많은 아쉬움을 토로한다. 예를 들어, '심리적 안정감' '리더의 침묵' '일의 의미' 등등은 너무 좋은 개념인데 그것을 어떻게 적용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나는 독서 토론부터 하라고 권한다.


나는 책을 함께 읽고 토론을 하라고 권한다. 혼자 책을 읽고 좋은 개념을 안다는 것은 '주관적 실제'를 경험한 것과 같다. 그것을 자신의 팀에게 적용하려 노력해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관적 실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혼란만 야기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너도 알고, 서로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것. 즉, '상호 주관적 실제'를 형성해야 한다. 그때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힘이 된다. 함께 하는 독서 토론은 좋은 출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수업시간에는 항상 과제가 있다. 수업 전에 필요한 내용을 미리 읽고, 비평을 하고, 질문을 만들고, 온라인으로 토론을 한바탕 해야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너도 알고 있고, 우리가 같은 내용을 이해한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뒤에 비로소 "진정한 토론"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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