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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지방이 Jun 30. 2024

미풍

 쉬는 날이 잘 없는데 딱 오늘이 그날이었다. 손 하나 까딱할 힘도 없다. 다리도 후들거린다. 30대 중반이 되어가니 현장이 영 고달프다. 딱히 유별난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라 이런 날에도 찾는 건 결국 또 드라마다. 이렇게 바보 같고 불행하게 살아도 되나? ㅎㅎ      

 무튼, 이번에 협업하게 된 감독님이 연출한 드라마 <돌풍>을 열심히 보는 중이다. 내가 정치인은 아니지만, 꽤나 이입되는 지점이 많아 재미있게 시청 중이다.


 프리단계를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무산될 위기에 빠졌다. 남은 시간은 한 달. 한 달 안에 해결하지 못하면 이 프로젝트는 터진다. 왜 이런 불의하고 부조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나? 반성과 복수는 나중에 할 일이다. 해결이 먼저다. 2년 반 동안 글을 써온 작가가 있고. 일을 함께하자고 데려온 스텝들도 많다. 주저앉아 신세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런데 고작 일개 사원인 내가 뭘 할 수 있나. 무력하고 또 원통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드라마를 보니 주인공 박동호가 너무 짜릿했다. 썩어빠진 이 편성시스템을 바꿀 수만 있다면, 드라마 속의 그처럼 회사 우두머리를 시해라도 하고 싶다. 당장 회사로 쳐들어가 그의 커피에 약이라도 타고 싶은 심정이다. 주어진 시간은 한 달. 썩은 편성 시스템을 뒤집어엎는데 일주일, 간 보는 매니지먼트들의 멱을 잡는데 일주일. 그지 같은 기획안들을 쳐내는데 일주일, 그리고 쓰레기들을 모아 회사 밖으로 내보내는데 일주일..ㅎㅎ      


 속으로 이딴 상상을 신나게 하고 있지만, 아마도 회사 우두머리를 만나면 한껏 불쌍한 표정을 하며 한 번만 잘 봐달라고, 다시 고민해 달라고 애원하겠지. 현실과 드라마를 구분할 정도의 멘털은 아직 되니까. 프로젝트만 살릴 수 있다면 내 무릎 따위야 얼마든지 꿇을 수 있다. 다만 내가 일으킬 수 있는 바람이 돌풍도, 강풍도, 약풍도 아닌 고작 미풍도 되지 못해 속상할 뿐이다. 그래도 계속 펄럭거려 볼 예정이다. 앞으로 한 달간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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