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뒤통수를 보는 일이 잦은 요즘이다.
누군가의 뒤통수를 오래 보고 있으면 뒷모습만 봐도 무슨 표정인지 알아맞힐 수 있는 신기한 능력이 생긴다. 까만 뒤통수에 눈 코입이 생기더니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해리포터의 퀴렐교수일지도.
메가폰을 잡고 있는 J군의 뒤통수는 너무 외롭다. 최근에 바짝 자른 투블럭 머리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그가 테이크를 한 번씩 더 갈 때마다 주변의 술렁이는 소리가 그의 헤드폰을 뚫고 들어온다. 원망하는 소리가 안 들릴 리 없건만 그는 애써 무시한다. 그럴 때 즈음 J군의 뒤통수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외롭다. 외롭기 그지없구나. 무시하고 가자니 연기가 맘에 안 들고, 다시 가자니 촉박한 시간이 눈에 밟힌다. 알아주는 이 없어도 한 번 더 테이크를 가야겠다. 이런 목소리랄까. 촉박한 시간에 테이크를 고집하는 건 그의 용기다. 그의 말에 거역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의 맘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그 용기가 객기가 되지 않길 나는 그저 바랄 뿐.
스크립을 하고 있는 L양의 뒤통수는 잔뜩 성이 나있다. 농부들이나 쓸 법한 거대한 밀짚모자로 중무장한 그녀의 뒷모습에 성난 아우라가 일렁인다. 열을 딴딴히 받은 아스팔트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꽤나 어울리기도……. 무튼. 날은 덥고. 연결은 안 맞고. 더블액션은 튀고. 무엇보다 L양은 이런 것들에 무심한 A군을 이해할 수 없다. 이딴 그림이 편집실로 넘어가면 고스란히 그녀에게 질문 폭탄이 쏟아질 터다. 왜 항상 현장의 안일함이 후반 스태프의 부담이 되어야 하나? 그녀가 투덜거리는 건 단지 감독이 테이크를 한번 더 갔기 때문만은 아니다. 도무지가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그 바로 옆에는 모니터 주변을 오줌 마려운 똥개처럼 서성거리는 조연출 K군이 있다. 그의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건 초조함이다. 미친 감독이 디자인 컨펌을 하나도 해주지 않는다. 당장 오늘엔 컨펌이 나야 이틀 뒤 촬영 스케줄에 맞춰 소품을 준비할 수 있는데, 이놈의 감독은 도무지 말을 들어 처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슛이 잠깐 멈췄을 때 소품을 들이밀어도 보는 둥 마는 둥. 모니터 옆에서 스크립을 하는 L양과만 얘길 나눈다. 도대체 저 인간들은 매일 붙어서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는가? 뭐가 급한지 모르는가?라고 반문하는 듯한 초조한 뒤통수.
이 정도면 뒤통수학 개론 교수는 아니더라도 조교까지는 무난히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나. 그러다 보니 문득 궁금해진다. 세트 뒤에 짱 박혀 몰래 이런 글이나 싸지르는 내 뒤통수에서는 어떤 목소리가 들리는지. 하지만 나는 항상 맨 뒤에 앉아 있기 때문에 누가 날 볼 일은 분명 없을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