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하다'의 기준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서 '망하다'를 찾아보면 '개인, 가정, 단체 따위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끝장이 나다.' 또는 '아주 고약하다'라는 설명이 나와있다.
이러한 기준에 따른다면 '망한 여행'이란 같이 간 누군가와의 사이가 틀어지거나, 훗날 떠올렸을 때 모종의 고약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류의 여행일 것이다.
비행기를 놓치거나, 여행지에서 생각하지 않았던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된다거나, 날씨 운이 따르지 않았거나, 일행과 여행 스타일이 맞지 않아 감정이 폭발하거나 등등....
생각해 보면 즐거운 여행만큼이나 망한 여행을 경험하게 될 확률도 꽤나 높지 않은가?
주변 사람과 수다를 떨다가 여행이 화두에 오르게 되면 이러한 '망한 여행'에 대한 경험담과 푸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특히나 첫 여행에서 망한 여행을 경험했을 경우 '다시는 여행을 가지 않겠다'는 분노 섞인 다짐이 으레 따라오기 마련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망한 여행으로 인해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좌절을 맛보았을 테니 말이다. 여행을 안 가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고개를 드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일지도.
이야기의 초점을 나에게로 맞추어보면, 나 또한 망한 여행의 범주에 들 수 있는 여행을 경험했다.
인생 첫 해외여행으로 엄마와 여동생을 이끌고 야심 차게 향한 홍콩에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아, 망했다'였다. 겨울에도 늦가을 날씨 정도로 온화하다는 설명과 다르게 우리가 마주한 홍콩의 날씨는 한 겨울 날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애써 웃으며 올라간 관광 명소인 빅토리아 피크에 선 우리 셋은 결국 상 정상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에 남아있던 한 줄기 웃음기마저 거두어야만 했다. 이후 홍콩 여행을 되새길 때 우리 모두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진짜 추웠어'가 되었다.
대학 졸업 후 친구와 떠났던 상해에서도 또 한 번의 망한 순간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음식이 복병, 아니, 우리 입맞이 복병이었던 것으로 정정하겠다. 관광지 근처에서 먹은 딤섬도, 심지어 믿었던 프랜차이즈의 피자에서도 형용할 수 없는 대륙의 향기가 펼쳐진 것이다.
이국적인 음식을 꽤나 잘 먹는다고 자신했던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순간이자, 먹는 것이 여행의 팔 할을 차지하는 나에게는 진정 '망했다'라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그렇게 상해에서의 시간은 '망한 여행'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순간으로 자리 잡는 오명을 얻게 되었다.
어느 겨울 떠났던 제주 여행에서는 잊지 못할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이 또한 '망함'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제주에 도착한 첫날의 일정을 신나게 즐기고 난 다음 날.
평온했던 조식시간이 지나고, 들뜬 마음으로 동백꽃 군락지로 향하던 택시 안에서 사건은 시작되었다. 평소에도 소화불량을 자주 겪는 터인데, 택시 안에서 위장이 심하게 꼬여버린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동백꽃 따위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 설상가상으로 상비약마저 가방에 없는 것이 아닌가. 야속하게도 상태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함께했던 동생의 걱정 속에 결국 응급실 신세를 지게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열이 난다며 코로나 의심 환자를 위한 격리실에 홀로 남겨졌을 때에는 당황스러움과 속상함에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 누가 보아도 이 순간은 확고한 '망한 여행'일 것이리라.
이렇게 돌이켜보니 나는 생각보다 다양한 망한 여행의 기억을 가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중 몇 가지 순간은 지금까지도 함께한 이와 때때로 떠올리는 에피소드로 자리 잡았다. 분명 그 순간은 괴롭고 힘들었을 것이다. 추운 여행지, 입에 맞지 않는 음식, 아픈 몸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한 순간이 아쉽고 안타까웠으니 말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순간을 괴로움이 아닌 추억의 이름표가 붙은 서랍에서 꺼내게 되는 것은 왜일까.
홍콩의 추웠던 날씨는 온갖 옷을 껴 입은 패션 테러리스트급 사진을 보며 '우리 진짜 촌스러웠다'라고 깔깔거리는 시간을 선물해 주고, 음식으로 고생했던 상해에서의 순간은 '다음에는 기필코 음식에 적응해 가리라' 하는 의지와 함께 마침내 우리를 구해주었던 프랜차이즈 샌드위치의 꿀같았던 맛에 대해 즐거운 호들갑을 떨게 해 준다. 제주에서의 아팠던 순간은 다시 겪고 싶지는 않지만, 큰 아픔이 아니었음에 또 한 번 감사하고, 병원에서 나와 먹은 감귤 타르트의 맛과 예뻤던 카페의 모습을 떠올리면 아직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짓게 되는 것이다.
여행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의 순간이 이러한 것이 아닐까. 매일을 살아가며 어찌 모든 순간이 평탄하고 행복할 수만 있겠는가.
때로는 걱정했던 일로, 또 때로는 예상치 못한 일로 '이번 생은 망했어'라고 외치고픈 순간이 불청객처럼 찾아오니 말이다.
나 또한 가끔씩 찾아오는 절망의 불청객을 만나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곤 한다.
작게는 꼬여버린 하루 일정부터 크게는 예상치 않게 부러져 퉁퉁 부어버린 발을 보면 '망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고 의욕은 그야말로 차게 식어버리니 말이다.
다만 몇몇 망한 여행을 추억으로 덧칠해 본 경험은 그것이 인생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직관적으로 알려주었다. 그 순간은 지나가고, 견디기 어려웠던 시간이 활짝 웃지는 못할지라도 어쩌면 작은 미소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돌이켜보면 어떠한 순간이 후회나 괴로움의 이름표를 달게 될지, 씁쓸하지만 결국 웃게 되는 추억의 이름표를 달게 될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그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인 것이다. 망한 여행이 있으면 잊지 못할 만큼 즐겁고 감동적인 여행도 있듯이, 우리 삶 또한 힘듦과 행복이 공존하는 '단짠'의 맛이기에 그 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다만 '망함'을 '망함'의 순간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그 안에서 달콤한 추억거리를 찾을 수 있다면 그 시간은 더 이상 망한 기억으로만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여행이 그렇듯 인생은 달고도 짜다. 짜디 짠 순간에도 달콤한 한 순간을 기억하고 간직하는 것. 그것이 '달콤한 인생'의 비법이 아닐까? 나는 나의 망한 여행에서 달콤함을 찾는 법을, 그리하여 인생의 달콤함을 느끼는 법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