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risee Jul 28. 2024

이 사랑의 이름은 :  '용기'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언제나 가족이 함께하곤 한다. 

주말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났던 기억, 지도책에 의지하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가며 새로운 곳을 향했던 기억은 세월의 흐름에도 변함없이 미소짓게 하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번에는 어디로 갈까?',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생각하는 어린 마음이 늘 설렘으로 가득했음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창문을 내려 누군가에게 길을 물을 때의 미묘한 긴장감, 알려주는 길을 따라가 목적지에 도착했을때의 성취감은 마치 어제의 일처럼 지금도 내 마음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스스로 길을 물어본것도 아니요, 운전을 한 것도 아닐진데 그 순간들이 이토록 오랜 시간 성취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이유가 때로는 궁금해지기도 한다.     


아마도 여행지를 향해 가는 그 시간을 여과없이 즐기고 나누었던 부모님의 모습이 성취의 한 갈래로 자리잡은 것이 아닐까.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와 성취감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지만 비록 목적지에 원활하게 도착하지 못했더라도 늘 그 순간을 행복과 즐거움으로 만들어갔던 부모님의 모습은 기대한 속도와 방향으로 가지 못하면 자책하곤 하는 내게 위로와 용기가 되어준다. 

“좀 돌아가긴 하지? 그래도 창 밖 구경을 하다보면 곧 도착할거야!” “꼭 거기로 가야할까? 여기서 보는 저 산도 참 예쁘다! 저 산 이름이 뭔지 알아볼까?" “천천히 가도 괜찮아! 도착만 하면 되지!” 

목적지를 벗어난 여행길에 볼멘소리를 하던 나를 다독이는 부모님의 목소리는 지금도 초조하고 성급해하는 나의 마음을 달래주는 신기하리만치 효과 좋은 처방이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아니 오히려 돌아갔기에 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기도 하고, 우연이 빚어낸 멋진 시간을 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어린날의 여행을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일찍 도착했다면 보지 못했을 아름다운 석양과 목적지에 가는 길을 헤매던 중 먹었던 잊을 수 없는 맛의 점심 식사는 인생에서의 여정 또한 돌아가도 아름다울 수 있으리라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여행의 여정 뿐 아니라 목적지에서의 시간들 또한 추억이라는 도화지 위에서 더 없이 풍요롭고 다채로운 아름다움으로 그려지곤 한다. 

어느 여름날 마주했던 남해와 통영의 모습은 푸른 비단같은 바다로 가득했으며, 밤바다를 빛내는 노란 불빛은 그곳만의 낭만을 선사하였다. 여름 바다의 습기를 싣고 흐르는 묵직한 공기는 한낮의 푸른 물결과 일렁이는 밤바다의 불빛에 참으로 잘 어울리는 일행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남해와 통영을 떠올리면 언제든 나는 푸른빛과 노란빛, 묵직한 여름의 공기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가족 모두가 먹는 것에 진심이기에 낯선 곳에서의 식사시간은 여행지를 향하는 시간만큼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그 기대와 설렘을 함께 나누니 모두에게 더 없이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이 될 수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여기는 물회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한 번 먹어볼까?”

“이 음식은 무슨 맛일까?”

“이 빵 너무 맛있다! 돌아가서도 생각날 것 같아!” 와 같은 기대와 감상을 나누는 여행지에서의 한때는 유년시절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는 마법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이처럼 어린 시절의 여행이 기억 속에 짙게 남아있는 이유에는 아마 그 시간 자체의 기쁨도 있었겠지만, 그 시간에 가득 담긴 부모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어느덧 나는 열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떠나던 부모님의 모습에 더욱 친숙함을 느끼는 나이가 되었다. 그 시절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가며 그 시간을 지나온 부모님의 모습을 생각하노라면 함께 한 여행의 추억은 더욱 짙은 사랑의 향기를 되새겨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표현하노라면 함께 떠오르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용기'이다. 사랑과 용기라니. 일면 어울리지 않는 듯한 두 단어의 조합은 어쩌면 가장 잘 어울리는 조합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할때에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 큰 용기를 필요로하고, 상대방의 위로와 사랑으로 용기를 얻기도 하지 않는가. 어떠한 관계에서든 그 관계에 깊이와 진정성을 더하는데에는 용기가 필요한 법인지도 모르겠다. 어찌보면 사랑은 용기를 요구하고, 또 용기를 주기도 하는. 용기와 가장 밀착되어있는 감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부모님이 내게 보여준 사랑 또한 일종의 용기였다고 생각한다. 

그 용기가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종류의 것이기에 더욱 소중하고 감사한 용기이기도 하다. 

에너지는 넘치고 변수는 많은 열 살배기와 다섯살짜리 아이. 눈을 떼면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지, 낯선 여행지에서 아프지는 않을지-때때로 정말 여행지에서 아파 초행길에 병원을 찾아 헤매는 불상사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에 대한 걱정을 무릅쓰고 떠난 여행은 가히 사랑과 용기의 결정체라 할 수 있겠다. 

언제쯤 도착하는지 수 없이 물어가며 지루해하는 아이를 달래며, 모르는 길을 찾아가고, 덥거나 추울때를 대비하여 가방 한가득 들어찬 짐을 챙겨야 하는 여행이라니. 이것이 사랑이자 용기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아이가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기를. 일상의 단조로움이 아닌 다양함으로 이 시간을 추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렇게 나에겐 사랑이자 용기로 남아있으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생의 한 챕터이다.      


나는 지금도 여행을 좋아한다. 

성인이 되어 떠나곤 하는 여행은 내게 일상의 단조로움을 벗어나는 도구이자 타인의 삶을 경험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되어주곤 한다.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과정은 늘 즐겁고 두근거리며, 낯선 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평범한 일상에 주어지는 선물처럼 소중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을 하며 겪는 우여곡절과 새로운 하루하루는 나조차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나는 이런 동네를 좋아하는구나', '나는 이런 음식도 좋아하는구나' 와 같은 것을 느끼며 나는 새 학기 새로운 친구를 만나듯 새로운 '나'를 만나가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도, 그리고 지금에도 여행은 늘 나에게 행복과 기쁨, 새로움을 선사한다.      


물론 여행에 앞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서 사고 없이 잘 지내다 올 수 있겠지?', '비행기 안에서 별 일이 없겠지?' 와 같은 걱정이 간혹 그늘을 드리우기도 하니까 말이다. 

다만 여행의 설렘이 곧 그 그늘을 없애주곤 하기에 나는 다시금 기대감으로 새로운 여행을 그려나간다. 

작은 변수가 생기더라도 그건 여행지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기에 걱정보다는 설렘으로 새로움을 받아들이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라는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나온 과거에 대한 후회,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후회나 걱정보다는 설렘과 충실함으로 나의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긍정의 용기를 알려준 것은 어린 시절의 여행이다. 

잘못 들어선 길에 때로는 초조하고 시간이 더 걸릴지라도 그 길에서 어쩌면 더 멋진 풍경과 경험을 선물받을 수도 있다는 것. 

누군가는 더위나 추위, 육체적 피로도 감수하고 수 많은 여행길을 떠날만큼 용기내어 나를 사랑해주었다는 것. 어린 시절의 여행에 부모님께서 아낌없이 보여주신 사랑의 마음은 지금도 나의 삶을 여행하는데에 가장 소중한 길라잡이가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의 삶을 여행하면서도 어린 시절의 사랑과 지금의 설렘을 간직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 마음을 가지고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삶을 여행할 수 있기를!

그리고 나 또한 용기내어 사랑을 전할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소녀는 왜 불도저에 올랐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