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님은 금요일이면 갈 곳이 있거든요
우리 아버님은 정말 재미있는 분이다. 그 피를 남편이 물려받았다. 벤츠를 타 보는 것이 꿈이셔서 따로 적금을 붓다가 아들이 갑자기 결혼하겠다는 선언을 해, 눈물을 머금고 적금을 깨 아들 결혼 준비에 쓰셨다고 한다.
아버님 나이를 정확하게 아는 친구들도 없다. 때에 따라 형이 되고 싶어서 한 살 높게 이야기를 해뒀다. 그 연유로 동네에서 주민증을 공개하지 못하신다. 동네 큰 형으로 지내시다 보니 막걸리 먹자는 친구들이 많아 작은 의류공장을 운영하시던 아버님께서 일 끝나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머님과 보낼 시간이 없을 정도였다.
새마을금고조합장 등등 감투 자리를 추천하는 아우님들(공식 감투자리에 가게 되면 주민등록증 공개가 불가피한 것도 한사코 그런 자리를 거부하신 이유 중 하나라고 쉽게 추측된다.)을 피해 궁여지책으로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에 위치한 한적한 동네를 찾아 이사하셨다. 이 집을 분양받을 때부터, 늘그막에 어머님과 맛있는 것 먹고 여행 다니며 오손도손 살려는 다정하고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
드디어 그 좋아하던 친구들의 품을 벗어나 어머니와 단 둘이서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오셨는데 어머님께서 배가 아프다고 하셨단다. 동네 병원 여기저기 다녀서 겨우 신우신염이라는 병명을 찾았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유방암 진단을 받으셨다. 수술과 항암치료가 끝난 몇 달 뒤에는 압박골절이었다. 그것이 실은 유방암이 혈액암으로 전이되어 나타난 증상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서 식당도, 여행도 다니지 못하셨다. 대신 아버님은 그 5년여 동안 누워 계신 어머님 곁에 앉아계셨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 곳도 가지 않고 그저 집안에 스스로를 가두시고 어머님 병간호에만 매진하셨다. 아버님은 그것이 너무 아쉽다고 했다. 어머니와 이곳저곳 구경 다니며 살고 싶었는데 젊은 시절 고생하던 시간을 뒤로하고부터 아프기 시작해 재미있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간 아내를 애달파하셨다.
말은 그렇게 하셔도 아버님도 아신다. 어머님은 맛있는 음식이나 멋진 풍경보다 아버님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시며 그토록 바라던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고 느끼셨을 터다. 부부묘를 한사코 거부하시며 저 인간과 가장 먼 곳에 따로, 산기슭 바람결에 뿌려달라셨던 어머님께서 5년여 병상 생활 끝에 아버님과의 납골당 부부단(부부 유골함을 함께 넣기로 계약하는 단)을 허락하셨으니까. 부부단을 계약해도 될지 조심스럽게 여쭙는 아들내미에게 어머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시자 아버님 얼굴이 그제사 화알짝 피어났던 것을 기억한다.
매주 금요일이면 아버님께서는 절룩이는 다리를 지팡이에 의지해 어머님 모셔진 납골당에 가신다. 금요일은 고인들께 바쳐진 꽃을 치우는 날이기 때문이다. 꽃이 치워지자마자 새로운 꽃을 바쳐야 어머님께서 일주일 내내 싱싱한 꽃을 바라보실 수 있으니까.
간혹 지난주의 꽃이 그대로 있으면 왜 아직 꽃을 치우지 않았냐고 납골당 사무실에 전화를 하신다. 대체 몇 시에 꽃을 치우는 건지 한참을 실랑이하신다. 빨리 꽃을 치워야 새 꽃을 둘 수 있지 않냐고 지치지 않고 민원을 제기하신다.
그럼 아들이 이야기한다.
아버지, 그냥 토요일에 가세요. (참 올곧은 ESFJ)
역시 아들다운 아주 현실적인 해결책이다. 나는 안다. 아버님은 금요일 꽃 세레나데를 멈추지 않으실 것이다. 꽃을 좋아하시던 어머님께서 하룻밤이라도 꽃 없이 주무시길 바라지 않으실 테니까. (제 말이 맞죠 아버님?)
어머님, 아버님께서 이렇게나 다정한 로맨티시스트인 줄 아셨어요? 살아생전 그렇게 투닥거리시더니.. 왠지 다음 생에도 아버님 만나 백년해로 하실 것 같은데 어쩌죠 어머님.
게다가 이번 명절도 운명처럼 금요일이에요 어머님. 이 지극한 로맨티시스트의 사랑을 받아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