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사유재산, 자유경쟁, 이익 추구라는 원칙 위에 세워졌다.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을 말하며, 개인의 이기심이 사회 전체에 이익을 준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출발선은 불평등했고, 경쟁은 공정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본주의는 끝없는 확장을 멈출 수 없는 구조다.
결국, 위기를 만들고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이 반복된다.
저신용자에게 무분별하게 대출을 퍼주고(서브프라임 모기지),
그 부실 채권을 ‘안전한 상품’으로 포장해 전 세계에 팔아넘겼다.
거품이 꺼지자, 미국 금융시스템은 연쇄 붕괴에 빠졌다.
리먼 브라더스 → 6,130억 달러 부채를 남기고 파산. 이는 세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파산이었다.
베어 스턴스 → 유동성 위기 후 JP모건 체이스가 사실상 헐값에 인수. 미 연준이 뒤에서 거래를 주도했다.
메릴린치 →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강제 인수. BoA는 이후 막대한 손실을 봤지만, 정부 구제금융으로 버텼다.
AIG → 세계 최대 보험사였지만 부도 위기에 몰리자, 미국 정부가 1,820억 달러를 투입해 사실상 국유화 수준으로 살려냈다.
원칙대로라면, 이들 기업은 자유시장 경쟁의 논리에 따라 무너졌어야 한다.
위험을 감수한 자본은 실패의 대가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선택적으로 개입했다.
‘너무 크기 때문에 망하게 둘 수 없다(Too Big to Fail)’는 명분 아래,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투입해 금융권을 살려냈다.
망했어야 할 금융 자본은 살아남았고,
그 비용은 미국 서민과 전 세계 약자들이 떠안았다.
자본주의는 스스로 내세운 원칙을 배신했다.
위기의 충격은 미국만의 일이 아니었다.
투자자들이 달러로 몰리자 신흥국 환율은 급등했다.
2008년 초 1달러=900원이던 원화 환율은 몇 달 만에 1,570원까지 치솟았다.
수입 원자재 가격 폭등 → 물가 상승.
경기 침체 → 소비 위축, 실업 증가.
한국은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 물가 상승)에 빠졌다.
위기를 만든 건 미국 금융 자본이었는데,
피해는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국민들에게 전가됐다.
이럴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IMF.
신흥국 경제가 휘청일 때 IMF는 늘 ‘구원자’처럼 나타난다.
그러나 IMF는 단순한 국제기구가 아니다.
1944년 미국 주도로 만들어졌고,
오늘날까지 미국이 최대 출자국이자 사실상 지배자다.
즉, IMF는 미국이 쥐고 있는 금융 무기다.
1997년 한국 외환위기 때 IMF는 580억 달러를 빌려주며 혹독한 조건을 붙였다.
고금리 정책 → 기업 줄도산
대량 구조조정 → 실업 대란
헐값 매각 → 외국 자본이 한국 기업 접수
이것은 구제가 아니라 수탈이었다.
그리고 2008년에도 IMF는 같은 방식으로 신흥국에 구조조정과 시장 개방을 강요했다.
IMF는 ‘시장 개방’을 명분으로 미국 자본이 약소국을 흡수할 길을 열었다.
2008년, 미국이 위기를 “해결”한 방식은 단순했다.
달러를 마구 찍어낸 것.
양적완화(QE)라는 이름으로 국채를 매입하고, 은행에 돈을 퍼부었다.
덕분에 월가는 살아남았지만,
미국 서민은 집을 잃고, 신흥국은 환율·물가 폭탄을 맞았다.
자유시장 자본주의 논리라면, 위기에 빠진 금융사들은 책임지고 무너졌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리먼브라더스만 버리고, 다른 거대 금융사들은 달러를 찍어내며 선택적으로 구제했다.
시장의 실패를 세금과 달러 인쇄로 덮은 것이다.
그 대가와 충격은 고스란히 미국 서민과 신흥국 국민들이 떠안았다.
현재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는 37조 달러(약 5경 원)를 넘어섰다.
GDP 대비 119%. 사실상 감당 불가능한 빚이다.
그런데 이 부채를 떠받치는 새로운 장치가 등장했다.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 서클(USDC) 같은 발행 사들은 달러 기반 코인을 찍어내면서,
담보로 현금과 미국 단기 국채를 대량 보유한다.
2023년 기준, 테더 준비금의 80% 이상이 현금 및 단기 미국 국채였으며,
그 규모는 1,270억 달러에 달했다.
전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보유한 국채만 해도 1,820억 달러를 넘어섰다.
즉, 전 세계 사람들이 스테이블코인을 쓰는 순간,
사실상 미국 단기 국채를 대신 사주는 꼴이 된다.
과거 IMF가 신흥국을 인질로 삼아 미국식 구조조정을 강요했다면,
이제는 전 세계 투자자 전체가 미국의 부채를 떠받치는 인질이 된 셈이다.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하는 체제다.
망했어야 할 기업들을 자유시장 논리 대신 달러 인쇄와 선택적 구제로 살려냈고,
IMF를 앞세워 신흥국의 위기를 기회 삼아 시장 개방과 구조조정을 강요했다.
이제는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새로운 구조를 통해,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부채를 떠넘기고 있다.
결국 자본주의는 ‘자유의 체제’라기보다,
강자가 약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체제임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달러를 무기로 삼는 미국이 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자본주의는 정말 자유로운 경쟁인가, 아니면 힘의 지배인가?
나는 자유롭게 선택하는가, 아니면 이미 설계된 시스템 속에서 길들여진 것인가?
그리고 이 체제가 또 한 번 무너질 때, 누가 다음 희생양이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