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팅을 배우기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았다.
아직 용어도 낯설고, 온도도 헷갈린다.
그런데 그날, 처음으로 로스터기 앞에 섰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고요했다.
드럼 안에서 생두가 굴러가는 소리,
바람이 스치듯 흘러가는 열기,
그리고 조금씩 달라지는 냄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건 재밌다.”
그게 첫 생각이었다.
첫 로스팅은 정말 ‘감’으로 한 거였다.
엘로우 구간이 몇 도쯤인지,
마이야르 반응이 언제 시작되는지,
그저 선생님이 말해준 대로 “이쯤일 거야”라는 감각으로 따라갔다.
샘플봉을 뽑아 원두 색을 볼 때마다
“이 정도면 엘로우겠지?”
“이제 마이야르가 오고 있겠지?”
그렇게 머릿속으로 계속 상상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처음 시범으로 보여준 중배 전, 시티 로스팅.
그걸 떠올리며 그때의 냄새와 소리를 흉내 내보았다.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그 이미지가 나를 움직이게 했다.
놀랍게도 결과는 그때와 비슷했다.
겉과 속이 고르게 익었고, 색도 균일했다.
그건 분명 운이 아니었다.
‘그때 본 장면’을 내 안에서 복기한 결과였다.
불 앞에서 내 감각이 처음으로 방향을 잡은 순간이었다.
커피를 오래 좋아했지만,
로스팅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핸드드립처럼 부드럽지 않고,
커핑처럼 정답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두렵지 않았다.
커피는 결국 불과 사람의 대화라는 걸 느꼈다.
온도계 숫자보다,
눈앞에서 변해가는 색과 냄새가
더 정확히 말해줬다.
‘지금 이게 맞을까?’
그 의심 속에서도 확실한 게 하나 있었다.
이건 살아 있는 일이라는 것.
자격증은 분명 의미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자격’을 배우는 게 아니라 ‘감각’을 배우고 있다.
그 돈으로 로스터기를 사고,
생두를 사서 백 번이라도 볶고 싶다.
소리, 냄새, 색, 열의 흐름.
그 모든 걸 손끝으로 익히는 게 내 공부다.
자격증이 나를 증명하진 않는다.
오히려 내 손이, 내 눈이, 내 코가
조금씩 성장해 가는 걸 증명하고 있다.
커피는 결국 기다림의 예술이다.
불을 너무 세게 하면 망가지고,
조급하면 향이 달아난다.
로스팅을 배우며 가장 크게 느낀 건,
급하면 망한다는 것.
커피뿐 아니라, 삶도 마찬가지다.
불은 언제나 우리보다 앞서 가지만,
결국 그 불을 다루는 건 사람이다.
그걸 알게 된 순간,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하나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오늘도 원두가 익어간다.
그리고 나도,
그 불 옆에서 천천히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