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사는 것도 재능일 수 있다.

by Woo seo
ChatGPT Image 2026년 3월 12일 오후 06_37_19.png

왜 이렇게 짧은 인생인데 고통은 많은 걸까


얼마 전, 아주 사소한 장면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몸에 좋다고 믿는 것을 씹고,

쓰고 이상한 맛을 견디고,

그 안에서 또 나름의 위안을 찾는다.


그 모습을 보다 보니 이상한 질문이 떠올랐다.


인간은 대체 어떤 존재일까.

어떻게 보면 참 강하다.

망가져도 또 살아내고,

잃어도 다시 만들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하루를 또 꾸역꾸역 건너간다.


그런데 또 어떻게 보면 너무 약하다.


말 한마디에 무너지고,

비교 하나에 흔들리고,

작은 상처를 오래 붙들고 산다.


강한 것 같다가도 한없이 약하고,

미련해 보이다가도 끝내 버티는 존재.


그 모순을 생각하다 보니

결국 하나의 질문 앞에 멈추게 됐다.


왜 이렇게 길지도 않은 인생인데

고통은 많고,

행복한 순간은 이렇게 짧은 걸까.


아마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이 질문 앞에 도달하게 되는 것 같다.


인간의 인생은 길어야 백 년 남짓인데

왜 이렇게 고통은 많은 걸까.


몸은 쉽게 망가지고

마음은 더 쉽게 상처받고

겨우 조금 알겠다 싶으면 나이가 들고

이제 좀 살아볼 만하다 싶으면 또 무언가를 잃는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이렇게 사는 게 어렵게 느껴질까.

행복한 순간이 더 많을 수는 없는 걸까.


이건 단순한 투정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바라보다가

한 번쯤 도달하게 되는 본질적인 질문에 가깝다.


냉정하게 보면 인간은

그리 효율적으로 설계된 존재가 아니다.


오래 살지도 못하고

몸은 약하고

마음은 더 약하고

겨우 세상을 좀 이해하려는 순간

늙어가고, 지치고, 잃는다.


효율만 놓고 보면

인간은 꽤 잔인한 조건 위에 놓인 존재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인간은 살아간다.

아주 짧은 행복 몇 조각 때문에

오늘을 버티고,

다시 사람을 믿고,

또 무언가를 만들고,

또 사랑하고,

또 기대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행복이 많아서 사는 존재가 아니라
적은 행복을 너무 크게 느껴서 버티는 존재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자주 행복을 이야기한다.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소소한 것에 감사하라고.

지금을 즐기며 살라고.


이 말들은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말일 것이다.


특히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사람들은 서로를 압박하고

이익과 경쟁 속에서 살아간다.


누군가는 회색지대를 이용해

압박하고 협박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무엇이든 한다.


이런 시대에

작은 것에 감사하며 사는 태도는

분명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이해한다.


그래서 명상을 하기도 하고

가능하면 마음을 단순하게 가져보려 노력한다.


행복을 향한 태도 자체는

분명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정말 누구나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작은 것에도 잘 웃고

쉽게 털어내고

현재에 머무르는 데 능하다.


그런 사람들은

행복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느낀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다르다.


생각이 오래 남고

상처를 쉽게 잊지 못하고

끊임없이 비교하고

만족의 기준이 높다.


이 사람들에게

''소소한 것에 감사하며 살라''는 말은

좋은 말이지만

쉽게 실행되는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행복하게 살아가는 태도도

어느 정도는 기질과 성향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태도가

어떤 사람에게는 훈련이고 노력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행복하게 사는 것도

어쩌면 하나의 재능일 수 있지 않을까.


이 말은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노력의 난이도와 속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는 소모가

사람마다 너무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는 마음을 조금만 돌려도 편안해지고

누군가는 아무리 다독여도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는 현재에 머무는 일이 자연스럽고

누군가는 늘 더 나은 것, 더 먼 것, 더 깊은 것을 보게 된다.


그 차이를 무시한 채

행복을 하나의 정답처럼 말하는 순간

좋은 말은 때때로 누군가에게 숙제가 된다.


또 하나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은

대부분 현재에 만족하지 못했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더 빠르게

더 안전하게

더 편하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불편함을 붙들고

집요하게 고민했던 사람들 말이다.


전기와 의학,

교통과 기술,

인터넷과 제도,


오늘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


이것들은 대체로

“이대로는 안 된다”는 감각에서 나왔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람들,

문제를 오래 붙들고

불편함을 견디지 못했던 사람들,

더 나은 방향을 상상했던 사람들.


어쩌면 인류의 발전은

어떤 사람들의 불만과 집요함 덕분에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세상에

현재에 만족하며

작은 것에 감사하는 사람들만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세상이

과연 쉽게 만들어졌을까.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세상을 바꾼 것은

어쩌면 만족할 줄 몰랐던 사람들일 수 있다고.


그리고 세상을 유지하는 것은

어쩌면 만족할 줄 아는 사람들일 수 있다고.


그렇다면 인간 사회는

한쪽의 태도만으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성향이 함께 맞물려 움직여 온 셈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을 이야기하는 말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지금 같은 시대에는

더 필요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생각해 본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반드시 따라야 하는

하나의 진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행복은 분명 좋은 말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가능한 말은 아닐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소소한 것에 감사하며 사는 삶이 맞을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세상을 파고드는 삶이 맞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내려놓음 속에서 편안해지고,


어떤 사람은

끝까지 붙드는 과정 속에서

자기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아직

행복이라는 태도를 잘 실천하지 못한다고 해서

스스로를 탓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보다 덜 평온하고

누군가보다 더 복잡하다고 해서

그 삶이 틀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하게 사는 태도는

아름다운 방향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같은 방식으로,

같은 효율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나는 가끔 아주 개인적인 방식으로

이 마음을 떠올릴 때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먹을 때에도

그 안에 어떤 생명이 있었음을 떠올리며

미안하고 고맙다는 마음을 가져보려 한다.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태도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예의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행복도 어쩌면 비슷한 것인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정답처럼 내미는 문장이 아니라,

자기 삶을 살아가며

조금씩 배워가는 태도.


강요가 아니라 연습에 가깝고,

평가가 아니라 이해에 가깝고,

정답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에 가까운 것.


그래서 어쩌면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말한 행복 공식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기준과 신념을

조금씩 만들어 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삶이 맞는 사람도 있고,

끝없이 질문하며 살아가는 삶이 맞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더 옳으냐가 아니라

자기 삶에 맞는 방식으로

자기 삶을 살아내는 일일 것이다.


행복론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무조건적인 진리가 되는 순간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아니라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행복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행복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누구나 행복을 향해 갈 수는 있지만,

그 길의 모양과 속도와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다름 속에서

자기 기준을 만들고

자기 신념을 세우며

자기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일.


어쩌면 결국 중요한 것은

행복의 정답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기준을 만들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이란 지상전, 왜 또 쿠르드인가... 미국은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