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지상전, 왜 또 쿠르드인가...
미국은 부인했다

by Woo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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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항상 쿠르드인가 — 이란 지상전에 등장한 이름


최근 이런 뉴스가 나왔다.


쿠르드 반군 수천 명이 이란 국경을 넘어 지상전을 시작했다.


보도에 따르면

쿠르드 무장세력은 미국의 요청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백악관은 이를 부인했다.


사실 여부는 시간이 지나야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그 뉴스에서

내 머릿속에 남은 것은 다른 질문이었다.


왜 항상 쿠르드인가.


쿠르드족은 약 3천만에서 4천만 명으로 추정되는 민족이다.


대한민국 인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규모다.


하지만

국가는 없다.


쿠르드족은

터키

이라크

시리아

이란

네 나라에 나뉘어 살고 있다.


그래서 종종 이렇게 불린다.

''세계에서 가장 큰 무국가 민족.''


이 구조의 시작은 1차 세계대전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면서

중동의 국경은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다시 그려졌다.


당시 협상 과정에서는

쿠르드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만들어지지 않았다.


쿠르드 지역은

산악 지형의 전략 요충지였고

석유가 있는 지역이었다.


결국 쿠르드는

네 개 국가에 나뉘어 남게 된다.


이후 쿠르드의 역사는

독립과 자치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 이어진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단순한 민족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 주변에는 항상

강대국 정치가 함께 등장한다.


대표적인 사건이 몇 번 있었다.


1975년
미국과 이란은
이라크를 압박하기 위해
쿠르드 반군을 지원했다.
하지만 이란과 이라크가 협정을 체결하자
지원은 바로 중단됐다.
쿠르드 반군은 붕괴했다.

1991년 걸프전 이후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타난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약해지자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와 남부의 시아파가 봉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미국은
정권 붕괴까지 개입하지 않았다.
사담 후세인 군은
북부 쿠르드 지역을 공격했다.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2019년 시리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ISIS와의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지상군 중 하나는
시리아 쿠르드 세력이었다.
미국은 공군과 무기를 지원했고
쿠르드는 지상에서 싸웠다.
하지만 미군이 시리아 북부에서 철수하자
터키가 공격을 시작했다.
터키는 시리아 쿠르드 세력을
자국 내 쿠르드 반군과 같은 뿌리를 가진 조직으로 보고 있었고,
국경 바로 남쪽에 쿠르드 자치 세력이 자리 잡는 것을
안보 위협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미군이 주둔해 있을 때는
그 공격이 사실상 어려웠지만,
미군이 빠지자 그 완충막이 사라진 셈이었다.
그래서 쿠르드 사회에는 이런 말이 있다.


우리에겐 산밖에 친구가 없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쿠르드를 단순히 피해자로만 볼 수는 없다.


쿠르드 정치 세력은 하나가 아니다.


이라크 쿠르드 정치세력은

서로 경쟁하고 때로는 충돌한다.


터키의 쿠르드 무장조직 PKK는

터키에서는 테러 조직으로 지정되어 있다.


시리아 쿠르드 세력 역시

지역 정치 갈등 속에서 논쟁의 대상이 된다.


즉 쿠르드는

하나의 단일한 집단이라기보다

여러 정치 세력과 이해관계가 얽힌 집합이다.


그래서 중동의 많은 국가들은

쿠르드 독립을 매우 경계한다.


만약 하나의 쿠르드 국가가 만들어진다면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네 나라 모두에서 국경 문제가 동시에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또 다른 구조가 나타난다.


국제정치에서는 이런 상황을

대리전(Proxy War)이라고 부른다.


강대국이 직접 전쟁을 하지 않고

현지 세력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특정 국가만의 전략이 아니다.


미국도 사용했고

러시아도 사용했고

이란도 사용해왔다.


형태는 다르지만

구조는 비슷하다.


''강대국은 전쟁을 시작하지만 지상에서 싸우는 사람은 항상 다른 누군가다.''


그래서 이번 뉴스에서

내가 궁금했던 것은 단순한 전쟁 이야기가 아니었다.


만약 쿠르드가

이란 내부에서 군사 행동을 한다면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쿠르드에게

자치권이 더 생길까.


아니면

또 다른 정치적 거래가 이루어질까.


혹은


이란 내부 갈등과

주변 국가들의 불안이 겹치면서


또 다른 전쟁의 씨앗이 만들어질까.


쿠르드 문제는

단순히 한 민족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곳에는


민족 문제

국경 문제

석유

강대국 전략

이 모두가 얽혀 있다.


그래서 이 문제는

100년이 넘도록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뉴스를 보면서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쿠르드는 왜 항상 전쟁에 등장하는가.


그들은

누군가의 동맹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전략 속에서

잠시 등장하는 지상군일까.


그리고 문득 또 하나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늘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상식처럼 굳어진 합의.
''어떤 일이 있어도 폭력은 안 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전쟁은 무엇일까.


물론 국가들은 언제나

안보와 억지, 그리고 질서라는 논리를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이 현실에서 작동하는 방식은

대개 누군가의 죽음 위에 세워진다.


내 눈에는

전쟁이 아주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욕심과 이익,

권력과 욕망을 위해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

사람들을 전장으로 보내는 일.


어쩌면

전쟁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다른 방식의 살인을

정치라고 부르는 것 아닐까.


이번 전쟁은

또 몇 명이 죽어야 끝이 날까.


그리고 그 전쟁에서


우리는

다시 누구의 이름을 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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