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는 거라고들 말한다. 그 흐름 속에 나 자신을 맡기다 보니 어느새 새로운 물결을 눈앞에 마주하게 되었다.
때는 바야흐로 2021년 2월 1일.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하지만 아직 나를 둘러싸는 두꺼운 옷에서 벗어나기는 싫은 그런 날씨였다. 어느 무난한 2월의 하루였다. 날씨의 무관심 속에 나는 다른 세상으로 입장했다. 같은 대한민국, 같은 도시, 하나로 이어진 땅이지만, 초라한 철문을 경계로 그 너머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 발걸음은 7주 동안의 논산, 3주 동안의 임실을 거쳐, 곤양에까지 뻗어갔다. 그렇게 곤양에서 계속 걸었다. 햇빛이 강렬하게 반겨주는 무더운 여름, 여유를 부리며 부는 바람 덕에 유난히 선선한 가을, 하양보다는 회색빛이 어울리는 겨울 속을 헤쳐가며 꾸준하게 걸었다.그발걸음은 성주에까지 다다랐다. 그 곳에서 3월의 뜻밖의 추위와 4월의 만연한 봄까지 지나쳤다. 그리고 한 층 표정이 밝아진 태양과의 조우와 함께 시작된 5월, 나는 곤양으로 돌아와 다시 이곳에서의 발걸음을 이어갔다. 그렇게 하염없이 걸었다.
그리고 지금, 유난히 길었던 장마를 지나 햇빛과 인사할 틈도 없이 이제는 태풍의 시기로 접어든 지금, 나는 다시 철문 밖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여전히 똑같은 대한민국, 똑같은 땅이지만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이다. 그렇게 나는 철문 속의 세상에서의 마지막 발자취를 남긴 채, 다시 새로운 세상에서의 발걸음을 시작했다.
1년 반 동안의 발걸음은 무엇을 남겼을까.
바깥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지금, 철문 안 쪽에 찍혀있는 발자국들을 돌아보며 회상에 잠겨보았다.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친 것은 나에 대한 성찰이다.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1년 반 전의 나는 스스로에 대해 잘 몰랐다고. 나를 하나의 존재로 인식하기보다는, 공부하는 학생이자 사회의 일원으로 여기며 나 자신을 주변 환경에 끼워 맞추는 데에 급급했다. 하지만 모든 틀에서 벗어나 철문 속이라는 새로운 틀로 들어오며, 주변과는 별개인 독립적인 관점에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나라는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어떤 의미인가, 주변과의 상호작용이 없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인가 등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물론 말만 거창하지, 사소한 질문에서부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 쉬는 것을 좋아할까, 유튜브에서 어떤 영상을 보는 것을 즐길까, 나는 어떤 취미를 가지고 싶어할까.사소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으로 차차 나에 대한 이해도를 쌓아나갔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나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스스로에 대해 이만큼 무관심했다는 사실이 괴로우면서도,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퍼즐 푸는 것처럼 재밌기도 하고 그 속에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쌓여나가는 것이 뿌듯했다.
이런 문답은 범위를 확장하여 내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고민까지 가능케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인간으로 살아갈지, 어떻게 삶을 꾸며나가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질문이 추상적인지라 찾아낸 대답 또한 추상적이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방향성과 비전은 설정할 수 있었다. 이 나침반에 근거하여 가까운 미래 또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에 대한 밑그림도 잡아갔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미래를 어떻게 설계하고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든, 그것을 해내는 '나'라는 주체가 명확해졌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바람이 내 진행방향의 반대로 불면 그 방향으로 날아가며 주변에 맞추곤 했다. 이제는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어떤 시간대에서 어떤 공간에서든 바람이 어떤 방향으로 불든, 꾸준히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는 힘과 자신감을 얻었다.'나'와 '주변'의 경계가 또렷해지면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한다. 1년 반 동안의 발걸음이 남긴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그다음으로는사람의 소중함에 대한 부분이 있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 간의 연결이 희미해지면서 혼자에 점차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원체 사람의 반응을 살피는 데에 많은 에너지를 쓰는 타입이라 혼자인 것이 에너지 비축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채워지지 않는, 하지만 참을 수는 없는 외로움이 마음 한편에서 조용히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들어오게 된 철문 속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 기본이 되는, 때로는 그것이 과잉되어 되려 압박을 주는 그런 조직이다. 관성 탓에 혼자에 익숙해진 터라 이런 세상이 편하지만은 않았지만, 어색한 이런 연결에 적응하는 과정을 가졌다.
사람과 연결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비록 스트레스를 주는 것도 사람이지만, 결국 힘을 주는 존재 또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평소에는 즐겁게 농담도 나누며 이야기를 즐기다가도, 같이 힘든 일이 있으면 서로를 북돋아주고 응원하며 서로가 서로를 앞으로 이끌었다. '전우애'라고 부르는 형태의 연결을 경험한 것이다. 평소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형태의 연결, 그것도 예상하지 않았던 연결을 경험하니 굉장히 신선하면서도 그 영향은 크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사람에게 힘을 얻는다는 것을 글로 써가 아닌 경험으로써 직접 겪게 되니, 무슨 말이었는지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
물론 행운이 따라준 부분이 많다. 일반적으로는 너무나도 색다른 사람을 만나 고생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하지만 주위에좋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각자의 개성은 모두 다르지만, 깊은 속에서는 상대방을 진심으로 대해주고 위해주며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주는 사람들이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마따나, 그런 배려와 존중의 선순환 속에서 즐겁고 좋은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소수에 불과했고, 되려 긍정적인 감정들을 이어받거나 심지어는 많은 점들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어쩌면 주변 사람들이 모두 좋고 멋졌기 때문에, 나 또한 평탄함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워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부분을 깨달으며 나 또한 이를 알리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다. 부정적인 감정과 삿대질보다는, 위로와 조언을 주변에 나누고자 노력했다. 계급이라는 허울에 짓눌리지 않고, 모두를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며 사람이라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려고 했다. 물론 의도와 노력이 행동에 제대로 비추어졌는지는 모르겠다. 실수를 한 적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의도가 행동에 반영되도록 스스로 최선을 다 했고, 그것을 몇 명이나마 알아채 주었으면 하는 것이 소박한 바람이다.
사회생활에 대한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고작 1년 반이라는 시간과 군대라는 공간에서 무슨 사회생활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내가 보고 들은 것이 사회생활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에 근접하는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나름대로 많은 일을 해보면서 이것저것 깨닫게 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일은 어떤 절차와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인지, 그 속에서 소통을 할 때에는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높은 효율성과 빠른 달성을 위해서는 무엇이 선제되어야 하는지 등. 그리고 행정이라는 시스템에 있어서 어떤 요소들이 있고 각각이 어떤 특징과 제한사항을 내재하는지까지 알게 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 또한 넓힐 수 있었다. 일을 만들면서까지 한 것이 때로는 부담이 되었고 힘들었지만, 지금 돌이켜보았을 때 그 속에서 배운 것들을 생각하면 등가교환이라고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책임감의 중요성에 대해 체감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한 번 내게 왜 열심히 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그저 일이 즐거워서라고 대답했지만, 지금 와서는 성취감과 책임감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일을 끝마칠 때의 성취감, 내가 맡은 일은 끝까지 내가 맡아 해결한다는 책임감. 이 두 가지 가치가 나를 많이 지탱해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덕분에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너무 스스로를 과대하게 평가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서 - 당연히 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생각을 하는 주체는 '나'이니까 - 이 정도면 많은 일을 했고 각 단계에서 최선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하튼 일련의 과정으로 어떤 과정에서든 결국 책임감은 든든한 창과 방패가 되어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렇게 적어놓고보니
꽤나 많은 것을 남긴 것 같고 담아내지 못한 내용도 있는 것 같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너무 좋게만 담아냈나 싶다.
지난 발걸음은 산책과 같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평범한 산책은 아니었다. 양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목적지를 향해서만 걷는 산책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자유롭지 않았고 그 속에서 힘들고 지치는 순간들도 분명 있었다. 남은 거리와 발목에 있는 모래주머니를 번갈아 보며 신세를 한탄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래주머니의 크기만큼, 그것 때문이 힘들었던 만큼, 더 천천히 걸었고 더 신중하게 걸었다. 그만큼 발걸음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와 감정이 크다. 그리고 평소에는 달리느라 보지 못했던 주변의 풍경들도 둘러보며 더 넓은 세상과 많은 지식들을 찬찬히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산책을 하며 새로운 공기를 마시고 생각을 환기시키듯, 이 또한 비록 특별한 형태이지만 산책의 일환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모래주머니를 풀게 되었지만, 바깥세상의 속도에 맞추어 달려야 할 때이다. 산책하던 속도에서 벗어나 마치 러닝머신을 뛰는 듯한 심정으로 바삐 움직이는 사회의 속도에 발맞추어야 한다. 이 달림 또한 상쾌한 때도 있고 불쾌한 때도 있을 것이고, 힘이 솟을 때도 있고 지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달릴 나는, 모래주머니를 달고 산책하던 사람이자 그 발걸음 속 많은 의미를 담아냈던 사람과 동일한 시간 축에 있는 사람이기에 믿어 의심치 않는다. 힘든 순간이나 왜 달리는지 의문이 드는 순간이 오면, 모래주머니를 달고 걷던 산책을 추억하고 그때의 발걸음을 되짚어 볼 것이다. 그때의 풍경, 그때의 공기를 되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것이 철문 속 세상을 떠나 새로운 세상에 다시 새로운 발자국을 찍을 나의 과거에 대한 소회이자 미래에 대한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