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바라기

by 계속계속

엄마바라기


세상에 태어난 지 다섯 해가 되는 사람. 키는 110센티미터 정도이며, 무릎 부근에 넘어져서 생긴 상처가 있다. 5월에 태어나서 일 년에 5월과 12월(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손꼽아 기다린다. 호기심이 왕성하고 주변의 모든 자극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해 질문을 끊임없이 하며, 스스로를 엄마바라기로 지칭하는 특징을 지닌다. 서울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분포하기 바라는 가족들이 많으나 집에만 분포한다.



침대에 누우면 1,2,3 딱하고 잠드는 남편은 일상의 소소한 일은 말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회사 점심 메뉴가 자신이 싫어하는 오이가 곁들여진 비빔밥이라 당황했지만 자신만을 위한 '오이 없는 비빔밥'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특별대우를 한참 지난 후에 툭하고 말하는 식이다. 그런데 며칠 전 침대에 누운 남편이 1,2... 하는 순간 '오늘...' 하면서 말을 한 것은 시작부터 놀라웠다.


올해 초 아들은 엄마 아빠의 회사 스케줄에 맞는 수영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태권도를 배우고 싶어 오른팔과 오른발을 같이 뻗으며 '엄마 나 잘하지? 검은띠 금방 따겠지?'라고 허우적대며 상기된 아들의 표정이 떠올라 잠깐 우울해졌지만 수영 학원을 등록했다. 물론 아들도 수영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고 동의도 했지만, 여섯 살 아들이 수영을 배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맞벌이부부의 현실 때문이다. 우리가 퇴근 시간 이후 아들을 픽업하기 위한 최단시간과 최단거리를 고려한 것이 가장 크다. 그렇게 아들은 4개월 동안 수영을 배우고 있고, 여전히 손으로 코를 꽉 잡고 잠수를 하고 팔은 물 위에서 삐그덕거린다


남편과 나는 번갈아 아이를 픽업하지만 평일 대부분은 내가 아이를 픽업한다. 이번 주는 남편의 일이 여유가 있어 며칠 전 수영 학원 픽업을 남편이 하게 되면서 아들과 있었던 대화를 잠을 이겨내고 나에게 해준 거다.


수영 학원 앞에는 길을 따라 해바라기가 몇 송이 피어있는데 수영을 끝마치면 여섯 시경이니, 해바라기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들은 해바라기가 고개를 숙인 이유가 궁금해서 아빠에게 질문을 했고 아빠는 해가 지고 있어 그렇다는 답을 해주었다고 했다. 까르르 웃던 아들은 "그럼 땅바라기인가아~~?" 하면서 즐거워해서 남편은 장난으로 아들의 이름을 붙여 "00 바라기~~"라고 했단다. 그런데 아들은 정색을 하며 "아니야 ~ 난 엄마 바라기야!!"라고 외쳤다는 이야기였다.


"아니야~ 난 엄마바라기야"


출산을 한 후 나는 나라는 사람의 그릇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한마디로 새로운 생명을 바르게 키우는 데 있어 나는 너무 작은 그릇이었다. 그때의 힘듦을 말하자면 난 간장 종지보다 작았다. 그만큼 힘들었다. 그때 읽었던 어느 워킹맘의 글에서 잊을 수 없는 문장이 있다.



30여 년의 나의 인생 중에서 이 아이를 위한 시간은 2년 남짓인데,

이 아이의 인생 2년 동안의 세상은 엄마가 전부이다


힘들어서 어쩌고 저쩌고... 그렇게 울던 나는 이 말을 듣고 내 그릇이 간장 종지보다 더 작디작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아이는 태어나는 그 시간부터 자신의 세상은 엄마이다. 엄마는 그렇게 아이의 세상 전부가 되는 것이다.


엄마바라기인 나의 아들은 여섯 살 세상 전부가 아직 엄마이다. 지나가다 스친 해바라기를 보며 '바라다'의 의미를 응용하여 '땅바라기'를 생각해 내고, 이를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여 대상과 자신을 연결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의 확장을 보여주는...


아들 자랑은 여기서 그만해야겠다. 직업병은 고쳐야 한다.


여섯 살의 세상 전부인 나는 아직도 그릇이 작다. 그래도 다섯 해를 지나며 간장 종지만큼 키우고자 노력했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엄마바라기인 아들이 명명한 대로 부끄럽지 않은 엄마바라기의 '엄마'가 되려고 한다. 그래야만 한다. 엄마가 세상 전부가 아닌 것을 서서히 알아갈 '엄마바라기'에게는 세상을 이해하는 기준이 엄마일 테니, '난 엄마바라기야!'라고 외치던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작은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오늘도 나의 별이 반짝임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