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하루였다. 말의 온도가 차갑게 느껴져 퉁명스럽게 되받아쳤더니 남편은 얼음산이 되어 싸움을 걸어왔다. 속이 다 보이는 저 차가움에 어찌 내가 이길 수 있을까 투덜대며 출근했다. 컴퓨터를 켜자 메신저의 깜박거림이 쉽지 않은 하루를 예고했다. 어린 후배의 책임을 전가하는 묘한 화법에 눈꼬리가 살며시 올라갔지만 얼른 입꼬리를 올려 미소로 답해주었다. 젊음이 주는 잘못할 리 없다는 치기 어린 당당함이 못내 부러웠다. 여러 번 울리는 짧은 진동 소리에 화면을 보니 동생의 메시지였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점심시간 백화점에서 소비로 해소한다는 쇼핑 현황 보고였다. 웃기기도 했고, 육아 휴직 후 복직하며 느꼈을 스트레스에 치이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백화점을 쓸어 담고 싶은 물욕이야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답을 하려다 통장 잔액이 떠오르면서 문득 내 자신이 초라해졌다.
남편의 말에, 후배의 말에, 동생의 말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스스로가 자못 한심해지기까지 했다. 한미한 시절 모르고 날뛰는 망둥이 같은 마음은 우스웠다. 선배들에게는 나도 ‘요즘 것들’일 텐데 말이다. 예민한 기분이 나를 찌르는 순간을 어떻게든 비켜나가고 싶어 부러움의 대상에 대한 시기와 질투를 담아 신세 한탄을 적어 동생에게 보냈다. 동생이 보낸 하얀 글자가 까만 화면 창에 나타난 순간 마우스를 잡은 손가락에 전에 없던 힘이 들어갔다.
“뭐래... 꿈도 이룬 사람이?”
탁탁탁, 딸깍 손을 움직여 눈물을 삼키는 소리를 숨겼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많이 아팠다. 원하는 대학을 진학만 하면 인생이 완성될 거라는 철없는 생각은 몇 마디 호구 조사 후 ‘OO지역 쪽 애’로 불리면서 쪼그라들었다. 마음이 많이 다쳐 몸이 병나버렸다. 아픈 몸은 대학 졸업 후 고향으로 내려와 부모님 곁에서 공부하겠다는 나의 선택에 좋은 핑계가 되었다. 남 부럽지 않은 모범생이었던 딸의 고집에 어머니는 두 개의 직업을 가졌고,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업한 동생은 언니에게 자신의 이름이 양각된 카드를 한 장 주었다. 당신 인생의 자랑이었던 큰딸이 책상에 앉아 햇볕 한 번 보지 않는데도 얼굴이 시커멓게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던 여린 아버지의 눈은 날 볼 때마다 빨개졌다.
책상에 앉아 많은 것을 배웠다. 달뜨는 밤에만 가던 독서실이 아침 9시에 문을 연다는 사실을 알았고, 독서실의 최대 소비자는 고등학생들이 아닌 성인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배움이 주는 충만함을 알기 전에 지식이 밥벌이를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배웠다. 동시에 어머니의 지독한 희생을 먹으며 그렇게 스물이 훌쩍 넘는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았다. 시간이 지나도 이때의 기억을 잊지 못하는 것은 나의 정서가 이 시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스톱워치를 잠깐 누르고 노트에 이곳에서 벗어나서 하고 싶은 일들을 적었다. 머릿속에 펼쳐진 영화는 감독도 나고 주인공도 나였다. 책상을 바닷가로, 클럽으로, 벚꽃축제로 만들었다. 그러다 차가운 고딕체 숫자가 깜빡이는 것이 보이면 파랑, 핑크, 무지개색을 꾹꾹 눌러 담고 온통 검은색인 책으로 돌아갔다. 바라는 것을 또 한 번 내비치는 것도 죄책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눌러 담고 또 담았다.
가족의 노동을 양분 삼아 미련함을 쌓아 올리며 결국 원하는 직업을 가졌다. 남들이 대단하게 여기지 않아도 짧은 단발머리로 진로 희망에 쓰던 글자를 내 것으로 만들었다.
과정이 죄책이어서 나를 탓했다.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저렇게 했으면 더 나았을 것을... 온갖 가정들이 점철되며 가지지 못한 것에 사로잡혀 가진 것을 쉽게 잊어버렸다. 작은 목표가 이루어진 순간은 찰나와 같이 기억에서 사라지고 치열했던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숨겼던 버릇만 남아 또다시 나를 탓했다. 꿈을 나의 것으로 만들고도 나의 죄책은 습관이되었다.
동생의 메시지 이후, 그 메시지를 자주 생각한다. 그날을 기점으로 두 번째 꿈을 꾸었다.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책상 앞에서 남몰래 담아둔 시간이 있어 꿈을 이뤘고, 다시 나를 터트릴 두 번째 꿈을 만들고 있다. 지금의 나에게는 푸릇한 젊음의 시간은 없으나 따뜻한 중년의 시간은 올 것이고, 백화점을 다 쓸어버릴 돈은 없으나, 백화점에서 가치 있는 물건을 고르는 눈은 내게 있다. 동생에게서 언니의 공부를 뒷바라지한 책임의 무게는 삭제해 주지 못하지만 ‘나한테 일 생기면 조카는 언니가 키워줄 거잖아.’라는 말을 듣는 하나뿐인 언니가 되었다. 젊은 어머니의 고운 손은 없지만, 주름이 보이지 않게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는 내 손은 더 커졌다.
여전히 복잡하고 후회와 미련으로 시간을 채우고 있는 난, 첫 도달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