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공황장애 극복 이야기
난 웃고 있는 나를 만났다.
-나에게 나를 구원해줄 ‘나의 아저씨’는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 동훈 : 네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네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모든 일이 그래, 항상 네가 먼저야
옛날 일, 아무것도 아냐.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냐
[ 드라마 – 나의 아저씨 중...]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보는데 대사를 듣자마자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와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점점 소리가 높아지더니 결국 꺼이꺼이 울어 버렸다. 나는 주인공 지안이가 불쌍해서 위로하는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눈물은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주인공 지안이가 꼭 나 같아서...
한 시간가량 울고 나니 온몸에 수분이 빠져나가는지 등 뒤에 있는 소파에 기대어 늘어져 버렸다. 멍하니 창밖을 보니 하늘은 수채물감의 하늘색보다 더 하늘색으로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높았다.
그 하늘이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 잘 울었어!’
너무 울어서 눈이 무겁고 얼굴이 끈적해서 화장실로 가 세수를 했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았다.
“어...”
거울 속 내가...보인다. 이제까지 본 적 없는 나를 보았다.
그 얼굴에는 한 줄기 빛이 비치고 있었다.
‘어 이게 뭐야? 지금 나의 마음이 몽글몽글해질 때가 아닌데. 지금 내 상황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 주인공만큼 어둡고 갑갑한 일투성인데.’
한 줄기 빛이 비친 거울 속 나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거울 속에 웃고 있는 나는 울고 난 나에게 말해주었다.
“집이 가난하고 일들이 아직 잘 풀리지 않았다고 해서 해맑은 우선희는 사라지지 않아.
지금까지 그저 너의 역량이 때를 못 만났을 뿐이야!
네가 방심하고 있던 사이에 네가 좋아하는 가을이 올 것 같아.
이제 일어나 봐!!! 넌 멋진 엄마이자, 멋진 사람이잖아!
네가 가장 잘하는 거~ 다시 웃어봐!
사랑해 우선희!”
2022년 1월부터 6월까지는 나의 삶에 뿌듯함을 맛보는 최고의 시간이었다.
살아오면서 나는 꺼렸던 일들이 있었다. 못하니깐 나도 모르게 피하고 도망쳤던 일들이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동대문에서 일하면서 밤 근무에 익숙해져서 내 몸은 저녁형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새벽 기상을 해 본 적이 없다. 새벽 기상을 하려면 밤을 새워야 했다. 그런데 2022년 1월 굿짹월드를 시작하면서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4시 30분 일어나 루틴을 정하고 성공해 나갔다. 새벽 기상을 하면서 만난 커뮤니티 사람들과 북클럽을 진행하면서 6월까지 35~40권의 책을 읽었다. 중, 고등학교 때도 하지 않던 공부를 했다. 영어, 글쓰기, 자기개발서를 통해서 요즘 해야 하는 경제 공부까지 나 자신도 놀랐지만, 아들이 옆에서 매번 더 놀라워하며 칭찬을 해줬다.
제일 기특한 일은 코바늘을 배웠다는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코바늘 때문에 가사 점수가 ‘미’였던 것이 약간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래서 코바늘, 대바늘 등 손으로 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나의 고정관념일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2022년에 만난 굿짹월드로 생각이 전환되어서일까? 꺼렸던 일들을 취미로 바꾸면서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준비한 카페 창업도 5월에 가계약하며 순조롭게 준비되어 갔다.
새벽 기상을 시작으로 독서, 자기 계발, 영어 공부, 코바늘, 글쓰기, 카페 창업 등 그저 꿈속에서 보아오던 나의 모습들을 현실로 끄집어낸 시간이었다. 그래서 하루라는 시간과 만나는 모든 사람이 소중했고 행복했다.
그런데 몸의 이곳, 저곳에서 꿈이 곧 깨질 거라는 사인을 보내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해오던 모든 일이 꿈이야!’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좋은 꿈이든 나쁜 꿈이든 꿈이니깐 깨어나야 하는 것인가?
약간의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몸은 주체할 수 없이 주저앉아 버렸다. 스트레스성 장염과 중이염이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아픈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병원 치료와 양약으로도 아픔이라는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몸은 무기력증까지 와 버렸다. 새벽 기상을 못 하면서 공부하던 인터넷 방송도 하나, 둘 꺼버렸다. 매일 읽던 책들은 책장 속 제자리를 찾아갔다. 나 자신도 민망하게 침대가 나와 한 몸이듯 침대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넓고 깨끗한 집들은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지저분해져 갔다.
불행은 한 번에 온다고 했나?
이런 상태에서 아들마저 학교생활 부적응으로 유급되었다. 내년 2월에 검정고시를 보지 않으면 초등 6학년을 다시 다녀야 한다고 한다. 만약 아들의 일이 올해 1월에서 6월 사이에 일어났다면 아마도 난 두렵거나 후회가 아니라 당당하게 지지해주고 엄마랑 같이 공부하자고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에서 유급은 나의 잘못으로 다가왔다. 꼭 아들을 방치한 잘못된 엄마처럼 몸서리가 쳐졌다. 아들이 다른 아이들과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이 지금의 상태에서는 큰 아픔이었다. 아들이 잘 때 아들의 발을 붙잡고 울었다. 그러면서 기도했던 것 같다.
‘나로 인해 이 아이의 인생이 망가지지 않게 해주세요...’
많은 일이 한꺼번에 터져서 내 몸은 더 망가져 갔다. 식사 때가 되어 아들과 밥을 먹다가도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서 살았고, 이상하도록 배가 고프고 허기가 지면 음식을 꾸역꾸역 입으로 넣는 버릇이 생겼다. 그럴 때면 탈이 나서 또 약을 먹고 누워야 했다.
5월에 가계약을 한 카페는 아픈 몸 때문에 준비과정이 엉망이 되었다. 그러면서 창업 대출마저 승인 취소가 되었다. 창업은 가난에서 벗어나고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던 일이었다. 일이 이렇게 돼버리니, 나를 배려해서 낮은 가격으로 계약하고 대출과 준비과정을 기다려주신 카페 사장님이자 우리 교회 권사님의 피해가 커졌다. 죄송한 마음을 뭐라고 해야 하나 걱정과 아픔으로 우울증과 공황장애까지 왔다.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서 모자와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었다. 사람들의 눈과 입들이 나를 무능력자로 평가하는 것 같았다.
이 상태가 계속 지속되니 공부도 싫어지고, 커뮤니티 사람들과 만남도 줄어들어 핸드폰마저 볼 힘이 없었다. 그저 아들에게 밥을 차려주는 일, 잠시 아들과 대화하며 보내는 것이 나의 일상이였다. 병원을 가다가 두려움과 공포로 다시 집으로 돌아오거나, 무리해서 참고 병원까지 걷다 보면 구토와 어지럼으로 길 중간에 주저앉곤 했다.
깨진 물잔에 물을 부어도 물을 채울 수 없는 것처럼. 꼭 이 시련들 때문에 내 인생의 물잔에 물을 담아도 채울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숨이 막혔다.
이 모든 상태에서 그 어떤 가정을 수백 번 반복해봐도 지금 이 상태들의 결말들 같아서 그저 어두운 방에 앉아 있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왜 이렇게 모든 일을 망쳐야만 하는 존재일까? 어른스럽지 못한 내가 싫어졌다. 나에 대한 믿음은 바닥이고 나의 의미 있던 시간은 물거품처럼 흩어졌다.
그 긍정적인 생각은 어디로 갔을까? 계속 내 마음에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사람이 같은 생각을 너무 오래 하면, 그 생각이 괴물처럼 변해서 그 사람을 집어삼킨다고 하더니... 두려움은 나를 삼켰다.
이런 내 모습이 너무 무서웠다.
정말 수면제를 먹고 조용히 눈을 감고 싶을 정도로 두려움이 찾아왔다.
죽을 것 같은 아픔 속에서도 죽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체처럼 모든 감각을 죽이고 시간이 흐르기를 바라는 일은 아이의 엄마로 너무나도 무서운 일이었다.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랬구나! 우울증을 너무 쉽게 생각한 내가 우스웠다.
죽고 싶을 만큼 아프다.
너무 갑갑해서 벗어나고 싶었다. 예전에 기분이 우울하면 위로받았던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꾸준히 써 온 다이어리를 읽어 보고, 내 머릿속의 기억을 뒤졌다. 나는 절망적이고 벼랑에서 떨어질 것 같을 때, 현실로 돌아온 방법은 신앙이었다. 기도와 예배로 버텨나갔던 그 시간. 하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흔히 말하는 믿음이 없는 상태가 돼 버렸다. 하나님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마흔여섯이라는 나이에 이런 힘든 상황을 주셨다는 것에 하나님께 화가 났다.
“왜 이렇게 좋을 때 아파요?
나의 아들이자 당신의 아들을 위해서 저 좀 살려주세요 ” 하며 부르짖었다.
어디에든 내 두려움을 던져 버리고, 정신을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했다.
내가 무너지면 아들도 무너진다는 생각에 침대에서 일어나 배를 움켜잡고 기어서 책상 앞으로 갔다. 그때 마침 눈에 TV 리모컨이 들어왔다. 무작정 들고 채널을 눌렀다. 고요한 집에 사람의 말소리라도 나면 조금은 좋아질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문뜩 비참할 때는 나보다 더 비참한 상황을 보라고 그럼 나의 상황은 조금은 괜찮아져서 숨을 쉴 수 있을 거라는 글이 생각났다.
나는 숨쉬기를 위해서 나보다 더 비참하고, 더 우울한 드라마와 영화를 찾았다.
그렇게 찾다가 멈춘 드라마가 ‘나의 아저씨’였다. 작가가 경험과 상상으로 만든 비참함 일지라도, ‘나의 아저씨’는 나를 위로했다.
비참함이 비참함을 위로하는 것처럼...
그 드라마는 슬펐고 아팠고 행복했다. ‘나의 아저씨’를 통해서 난 웃고 있는 나를 만났다.
그때부터일까? 아픈 몸과 마음에서 벗어나 좋은 엄마를, 나 우선희를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메마른 감정에 물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행복, 슬픔, 사랑 등 많은 감정이 있는 책들을 읽었다.
비참함이 더 비참할수록,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나를 위로했다. 이 모든 글이 작가의 허구라고 해도 나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조금씩 감정들이 내 마음에 문을 두드렸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고, 웃고, 말하고 회복이 되어갔다. 아들도 엄마의 회복이 좋은지 더 자주 옆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유튜브 내용을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었다.
‘혹시 나의 이 아픔들이 또 다른 이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까?’
이 마음이 내 삶의 무너진 틈 사이로 한 줄기 빛이 되어 스며왔다. 그 빛이 나를 비추면서 어둠을 잡아먹었다. 그 빛이 사라지기 전에 빛으로 가득하고 싶은 마음과 행복한 나로, 엄마로 돌아가고 싶었다. 나는 이렇게 있을 수 없었다. 이 모든 감정을 들고 내려놓을 수 있는 상담 선생님을 만나야 했다. 그래서 몸에 힘을 주고, 용기를 내 현관문을 열고 한발을 내디뎠다.
용기를 내 찾은 상담 선생님은 나와 함께 울며 따뜻함을 가득 채운 눈으로 얘기하셨다.
“선희 씨 잘 왔어요. 참 잘했어요.
선희 씨를 먼저 생각하고 사랑해요.
다른 사람들의 상황, 감정보다 선희 씨를 먼저 보세요.
선희 씨가 더 중요해요! 그럼 그 사랑이 지훈에게도 흘러넘칠 거예요”
상담 선생님의 이 위로는 따뜻한 한 줄기 빛만이 아니라 내가 엄마라는 사랑스러운 이름에도 더 힘을 실었다.
‘내가 먼저’라고 말하는 ‘나의 아저씨’의 주인공 동훈 대사와
‘나를 사랑하라’라는 상담 선생님의 말씀은 지금까지 살면서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런데 왜 무너지고 나서 그 말들이 마음에 와닿고 한 줄기 빛으로 승화되었을까?
어쩜 거울 속에 웃고 있던 내가 말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지금까지 그저 너의 역량이 때를 못 만났을 뿐이야.”라고.
그래서 나는 나를 만나보려고 한다.
나의 가난이라는 환경, 몇십 년을 따라다닌 부채,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일, 아이가 마음의 병을 얻어서 잃어버린 시간, 나의 열망들이 실패로 돌아갈 때 모든 것이 아프고 힘들었다. 덕분에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에 대해서 아파하며 충분히 고민할 수 있었다. 내 삶에서 아픈 일들은 각자의 역할을 하고 지나갔다. 가끔은 나의 선택들이 후회로 남았더라도, 난 이제부터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난 나와 나의 아들에게 조용하고 강하게 말했다.
“우리 내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그래서 불안한 건 당연한 거 같아.
하지만 아직은 멋진 날들이 기다리고 있어.
물론 말뚝처럼 박힌 아픈 기억은 평생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테지만,
지금은 확실한 거잖아. 그러니까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마음껏 나를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보자. 살아봐야 주변을 이루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있고, 살아내야 당연했던 모든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깨닫게 될 것 같아!
아들 우리 서로 더 사랑하자. 사랑해.”
아들과 손을 잡고 아파트를 주변을 거닐다 둘러보았다. 내가 방심하고 있던 사이에 화려하고 멋스러운 가을은 자기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춘기 아들과 빛으로 가득한 나에게 성큼 다가와 있었다.
지금까지 나의 글을 읽고 있는 지친 당신에게...
“이제는 당신이 아파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지친 당신에게 당신을 구원해줄 햇살 같은 당신 자신을 만나서
사랑하고, 행복하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