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년대를 돌아 보며-
'올해는 일하는 해 모두 나서라
새살림 일깨우는 태양이 떴다
새로운 부푼 꿈을 일손에 모아
가난을 물리치자 행복을 심자
일하는 즐거움을 어디다 비기랴
일하자 올해는 일하는 해다 '
70년대 초반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로 시작하는 새마을 운동 노래와 함께 많이 부르던 노래이다. 세월이 많이 지났으니 정확하게 가사를 기억하진 못하고 어렴풋이 '일하자, 올해는 일하는 해다' 이 부분만 기억할 수 있었다. 인터넷을 뒤져 보아도 세월 흐른 만큼 자취를 찾기 힘들다. '일하는 해, 노래'로 검색하여 겨우 한 줄 정보를 찾을 수 있었고 그 안에서 다행히 가사 전문을 찾아 볼 수 있었다. 한동안은 가사를 보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허전한 것 같기도 했다.
20대의 혈기왕성하던 시간이다.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쳤으며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무모했으나 열정적이었고 자신감이 넘치기도 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 갈수는 없겠지만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지금 같아선 감당해 낼 자신도 없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대체 휴일로 3일이 빨간 글씨, 휴일이다. 은퇴 후 백수에게 휴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백수에게도 휴일은 중요하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 주변 사람들의 일과에 의해 스케줄이 좌지우지되는 일이 다반사이다. 휴일엔 공연히 바쁘다. 노느라 바쁜 것이다. 백수가 하는 일이 노는 일이니 평일엔 우리끼리 놀고 휴일엔 같이 논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끼리는 백수끼리를 말한다. 분명 같이 노는 것이지만 동질감이랄까? 아니면 동병상련이 맞는 것일까? 평일과 휴일의 묘한 차이를 만들어 낸다. 노는 일에도 급수가 있는 것 아닐까?
70년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놀이 문화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명절 휴일, 가족의 생일과 아이들의 학교행사, 소풍이나 운동회 정도였다. 가난하던 시절이니 그마저 여의치 않아 우리 시대 사람들은 도시락 없는 소풍이라던가, 운동회 날 도시락 대신 물 한 바가지 마시고 달리기를 했던 아픈 기억들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비교적 유복했던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주변의 힘든 친구들을 지켜보던 아픔이 있다. 어쩌다 부모 손을 잡고 나들이하는 날이 신나게 노는 날이었다. 세상을 다 얻은 듯하던 기분, 하늘을 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돈으로 살 수 없는 황금 같은 추억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금연휴가 있었다. 노는 날이 겹치면 환호성 일던 시절이다. 삼일절 대체휴일이 되어 삼 일간의 긴 연휴가 되었건만 아무도 황금연휴라 말하지 않는다. 일주일 열흘씩 계속되는 긴 연휴라야 조금 관심을 끌 뿐이다.많아진 휴일만큼 귀하지가 않다. 휴일의 급수가 떨어지면 당연히 노는 급수도 같이 떨어진다
대체 휴일까지 겹친 연휴건만 시들해진다.백수에겐 더욱 그러하다. 끼리끼리 놀다 같이 노는 노는 일이 전부이니 말이다.흔한 것은 귀하지 않은 법이다. 70년대 꿀 맛 같은 휴식을 아는 사람들은 그 시절의 휴일이 금쪽같았음을 충분히 알고 있다.길어진 연휴가 나쁘다고는 할 수 없으나70년대의 그것처럼 효용가치기 높지는 않다. 급수로 따지면 한참 내려가야 한다.
백수가 되어 보니 그리운 것이 일하는 즐거움이다. 일이 끝난 후 꿀맛 같은 휴식이 가장 그립다. 한가하고 여유롭게 즐기는 은퇴후의 일상을 폄하하려는 건 아니다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나 .여유와 자유가 있는 노년이 마음 편하고 괜찮기는 하다. 젊어서 하고 싶었으나 할 수 없었던 일을 찾아서 할 수도 있으니 나름 기쁘기도 하다. 그 일이 대가를 얻기 힘든 일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대가 없는 노동이 허무한 일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젊은 시절부터 준비해 온 사람들은 나이 들어서도 충분히 일하는 가치를 즐기고 있는 듯한데 나같이 무방비로 맞은 노후는 무한대로 펼쳐진 여유가 좋기는 하나 허무하기도 하다. 대가를 바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놀이 삼아 만들어 가보려 한다.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목표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만도 다행이라 여긴다. 대부분 '이제 와서 '라고 포기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게 노는 사람의 급수가 가장 낮다.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말이 있다.노는데 가장 높은 급수 같다. 열심히 일한 후 대가를 충분히 지급받고 누리는 꿀맛 같은 휴식이야말로 최상급의 놀이라고 말할 수 있다.가장 낮은 급수와 최상급의 놀이 중에서 내 급수는 어디쯤일까? 아무렴 어떠랴, 최상급의 삶이란 자신의 위치에서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하는 것이다
일하다 보면 귀해지는 것이 놀이. 자연이 급수를 올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