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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여인들의 옷차림에서

by 우선열

'봄은 여인들의 옷차림에서' 시작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젊은이들의 의상에서'라고 바꿔야 하지 않을까? 아직은 봄철 젊은 여인들의 옷이 먼저 화사하지만 유니섹스 룩이라 할 만큼 젊은 남자들의 옷도 변하고 있다. 우리 젊은 시절에는 남자들의 의상은 검거나 검은색에 가까운 회색 감색 브라운 의상이 대부분이었다.

남자들의 옷은 넥타이 하나로 결정되었다. 흰 셔츠에 넥타이 하나 바꾸는 것으로 결혼식장의 예복이 되기도 하고 장례식장의 상복이 되기도 했다. 예를 갖추어 입는 격식을 갖춘 정장에서 편리를 추구하는 편한 데일리룩으로 변화해 가면서 남자들의 옷도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다. 흰 양말도 결례라던 엄격함이 빨강 양말이 포인트, 짝짝 양말이 매력인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더 이상 봄은 여인들의 옷차림부터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굳이 구분하자면 이젠 세대 간의 차이로 구분되지 않을까? 우리 시대 사람들은 아직 정장의 개념을 넘어서기 힘든다. 친지들의 결혼식장에 한복을 입고 나타나는 친척들은 우리 세대로 끝날 것 같다.

웬만한 자리엔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단정히 갖춰 입으시는 스승님은

"정장이 제일 편해요 넥 타이만 바꿔 매면 어디서든 어울릴 수 있거든요. 캐주얼로 바꿔 입으려면 그때마다 어울리는 옷을 갖추기가 힘들어서요"

하셨다. 그 사람의 보수적 경향이라고 지레짐작하던 내 생각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굳이 예복을 갖추어야 한다기보다는 당신이 편하기 위한 정장의 선택이었으니 말이다.

이럴 때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걸까? 그의 정장 차림은 굳이 예를 위해 갖추기 위한 옷은 아니었지만 본인의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이 편한 옷이었다.

나이 든 여자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결혼식장에서 한복을 입는 것은 딱히 다른 예복을 갖춰 입는 신경을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편한 옷이기 때문이다. 예복을 갖추어 입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배려하려는 따뜻한 마음도 곁들어 있다.

편하다고 입은 청바지 하나에 많은 디테일이 숨겨져 있고 활동성에 중점을 둔 옷들에 그때그때 다른 포인트를 강조하는 젊은이들의 옷차림은 마치 교복 자율화가 시작되던 시점 같다. 옷에 몸을 맞추던 교복시대를 뒤로하고 한참 자라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개성과 체형에 맞는 편한 옷을 입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교복이 더 편해요"

하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나돌기도 했다.

부모들이 등골이 빠진다는 등골 패딩이 나오며 계층 간의 위화감을 조성하여 한참 자라는 학생들의 기를 꺾기도 했다. 심지어 등골 패딩을 장만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사람 사는 일이 어찌 몸만 편해서 되겠는가. 몸과 마음과 정신이 같이 만족해야 하는 게 삶이다. 데일리 룩은 평상시에 입는 편한 옷이다. 몸과 마음과 정신이 같이 편했으면 좋겠다.

나이 든 나부터 반성해야 한다.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편하다는 이유로 옷매무새를 가다듬지 않고 외출하는 일이 잦다.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차림이라면 몸만 편한 차림이다. 마음과 정신이 불편해진다. 나뿐이 아니라 보는 사람도 불편하다.

그나마 겨울철에는 꽁꽁 싸매고 다니니 비교적 시선 두기가 편했다. 조금 허술한 차림이라도 두꺼운 외투 하나로 감출 수 있었다. 봄이 되어 옷차림이 화사해지고 가벼워지면 그야말로 개성이 두드러지는 옷차림이 나타나게 된다. 개성이 본인 다운 특성을 나타내는 좋은 방향이어야 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개 같은 옷차림이 될 수도 있다. 반려동물인 개를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개는 옷을 입을 때 본인의 취향이 아니라 반려자가 입혀주는 옷만 입게 된다.

트렌드라는 이유로 남이 입혀준 듯한 본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지는 않은지, 다른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옷을 입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 볼일이다. 당시에 유행하던 패션은 시간과 함께 사라지지만 본인의 스타일은 계속된다. 다행히 우리에겐 우리가 옷을 선택할 능력이 있다. 견(犬) 성이 아니라 개성에 맞는 옷,

따스하고 화사한 봄이 우리 옷차림에서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몸만 편한 데일리 룩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과 정신이 편해지는 옷차림이면 타인도 배려하는 옷차림이 된다. 굳이 남녀노소를 따질 일은 아니다. 내 옷차림부터 살펴볼 일이다. 내 몸만 편하고자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마음 불편한 옷차림은 아닌가? 나는 노파이니 괜찮겠지? 마음 편하려는 사족을 붙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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