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밤새 눈이 왔나 보다
나무 위에도 자동차 위에도 눈이 쌓였다
길은 미끄러워 조심조심 걸어야 하지만
깨끗한 설경에 마음이 녹아든다
작은 불편쯤은 눈 감아 버리고
하얀 눈의 축복만 보고 싶다
눈 맞는 강아지처럼 촐랑거려 보고 싶기도 하다
아파트 정문을 빠져나가려는데 낮은 난간에 쌓인 눈에 글씨가 보인다
'기필아 사랑해"
간절한 마음이 전해지는듯하다
누구에게든 말하지 않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심정
세상을 향해 사랑해 외치고 싶던 순간이 분명 있었는데
순간에 나는 어떤 엄마일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기필이가 아들이라고 단정하고 만 것이다
나이 들면 모성 밖에는 남아 있을 거 같지 않은 메마른 감정이다
나도 아차 싶다
이제는 정말 나이가 들었나 보다
단정 짓고 만다
요즘에 생긴 버릇이다
뭐든 나이에 직결 시키 버리곤 한다
허리가 아파도 나이 탓
감정이 메말라도 음식이 맛이 없어도 나이 탓이다
100세 시대, 살아내야 할 시간이 늘었는데도 나이 들면 모든 걸 내려놓고 쉬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묶여 있다
관습의 가스라이팅이라고 항변해 보지만 나이 들면 편하게 지내도 된다는 생각은 유혹이 강하다
안주하고 싶어진다
선우야 사랑해를 써볼까
남은 시간들을 온전히 나를 위해 써보고 싶다고 생각해 본다
어쩌랴
자식을 향한 사랑이 내 삶의 대부분인걸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그냥 사랑하는 것일 뿐
기필아 사랑해를
나는 아들 사랑 해로 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