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세마리 -
솔직히 말하면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애드가 알렌 포우의 검은 고양이가 제일 먼저 생각나 음산하고 무섭다.
"검은 고양이 네로" 하는 명랑한 노래가 먼저 생각나던가
고양이의 새침한 태도에 호기심이 생겼으면 좋아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는데
매번 복수의 화신 검은 고양이가 먼저 떠오르니 정을 붙일 수가 없다
체질상 공포물을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기피하는 경향도 있다
애초에 공포물에 노출되지 않으려는 방어적 기질이니 포우의 검은 고양이가 생각나는 한
고양이는 내게 너무 먼 동물이라 생각했었는데 이런 내 종전의 모습과 달리
지금 내 눈앞에는 고양이가 한 마리도 아닌 세 마리가 어른거리고 있다
"사진이라도 찍어 올 걸 그랬나" 혼잣말까지 한다
급기야 '고양이 사진 좀 보내줘' 하고 언니에게 톡을 넣고 말았다
조금 있으면 나는 언니네 고양이 세 마리 사진을 볼 수 있다
언니네 고양이들은 내가 생각하는 날렵한 유선형 고양이들이 아니다
마치 임신한 고양이처럼 축 처진 배를 가진 오동통한 고양이들이다
동그란 눈동자로 나를 주시하는 건 여느 고양이와 다를 바 없는데
새침하고 앙큼하게 못 본 체 외면하며 눈치를 보는 다른 고양이들과 다르다
그렇다고 유난하게 친밀감을 표시하거나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얌전히 앉아서 나를 응시한다
마치 주인의 명을 기다리는 집사 같다, 유순하고 충직해 보인다
손을 내미니 몽실몽실 실뭉치 같은 털이 만져지고 살포시 고개를 기대어 온다
'어?' 나도 뜻밖인데
"재 좀 봐, 다른 사람이 오면 숨느라 정신없더니 웬일이래? 이모는 가족인 줄 아나 보지 ?"
언니가 더 신기해한다
"그러게, 안 하던 짓을 하네 멀리 숨어 있어야 하는데 " 형부도 의아한 듯 거든다
고양이들이 별난 친밀감을 표시하는 건 아니었지만 나도 충분히 인정받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무릎 위에 올라와 앉는다던가 턱을 부비는 적극적인 애교는 아니지만
적당히 떨어져 앉은 거리, 살포시 손바닥에 닿는 뺨에서 신뢰를 느낀다.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는 걸 고양이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나 보다
유순하고 충직하고 오랫동안 정들은 것처럼 우리는 자연스러웠다
안고 비비고 유난스럽지 않아도 따스한 정이 오가는 걸 알 수 있었다
턱 밑을 바치고 앉았던 코코는 어느새 길게 몸을 늘이고 편안한 자세다
코코보다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비비는 서성거린다, 흘낏 눈치를 보기도 한다
인정은 하지만 아직은 좀 더 지켜 보고 싶은 것 같다
"코코는 위험이 뭔지도 몰라, 세상이 그냥 안전한 줄 알아,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으니까
비비가 엄마야, 비비는 착하긴 하지만 경계를 조금 하거든, 아무래도 엄마니까"
멀리 떨어진 루루는 아직 무장해제 전이다
높은 곳에서 언제든 몸을 숨기려는 듯하다
"루루는 워낙 경계심이 강해, 유기 묘였거든 학대도 받았던 거 같아
며칠을 집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걸 못 본채 했지 배고픈 것 같아 먹이는 주었지만 제 집을 찾아가길 바랐어,
코코와 비비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세 마리를 보살피는 건 힘들 거 같았는데 제 발로 들어오더라니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문이 열리니 제가 먼저 들어오는 거야
처음엔 내 보내려 해 보았지만 나갈 생각을 안 하더라고, 그냥 거둘 수밖에 없는데
코코나 비비처럼 살갑지는 않아, 항상 경계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멀리서 맴돌기도 하고 앙칼지기도 하고, 좀체 잡히지도 않아
다른 사람 같으면 벌써 옷장 뒤로 숨었을 텐데 오늘은 좀 이상하네"
언니가 유난히 연민이 서린 눈초리를 루루에게 보내고 있다
아직은 경계를 못 풀고 있는 루루가 나도 애틋하다
할 수 있다면 따뜻하게 품어 보고 싶지만 섣불리 행동할 일은 아니다
스스로 경계를 풀고 다가오도록 기다려 주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다가온 후에 변함없이 보여줄 애정이 있어야 한다
한순간 연민으로 가까이하다간 다시 한번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 말로 마상이다
머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도 않는다, 오래 혼자 앓아야하고 후유증도 길다.
그런 상처가 두려워 미리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고양이를 싫어 했다기보다는 예견할 수 있는이별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어차피 정해진 이별이라 감당해야 할 아픔이라고 지레 겁을 먹었다
마땅히 사랑받아야 할 사람과 사물이 사랑받지 못했다
고양이 루루는 혼자 떠돌아야 했던 힘든 경지에서 스스로 살 길을 찾았고
조심스레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태어나서부터 가족이었던 비비나 코코 같을 수는 없겠다
루루가 안정을 찾기 위해서는 변함없는 애정이 필요하다
고양이 루루는 혼자 떠도는 아픈 상처속에서도 스스로 살길을 찾은 고양이 이다.
한 송이 지지 않을 영원한 꽃을 피우기 위해 작은 한 송이도 꽃을 피우지 못했다면
직무유기에 속한다
영원한 꽃이란 없을뿐더러 작고 보잘것없는 꽃이라도 자꾸 피워 올려야
더 예쁜 꽃을 피울 수 있는 법이다, 경험만이 산 스승이다
상처를 통해서 더 큰 사랑도 알아 갈 수 있다
상처 입은 고양이 루루가 빨리 회복하기를 바란다
스스로 걸어 들어올 용기를 가졌으니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사랑할 힘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많이 사랑한 만큼 상처가 깊을 수는 있지만 상처를 보아야 회복할 힘도 있게 된다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받아 마땅한 한 사람이, 한 사물이 사랑받지 못한다
사랑하지 않은 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