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름으로 6

주부 영업사원 마귀할멈과 선이 씨

by 우선열

남편의 재정 상태가 양호한 선이는 같은 투병 생활이라도 은혜와는 처지가 달랐다. 2인실을 쓸 수 있었으며 다소 비싼 병원비를 감내하면서 병원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잘 훈련된 간병인이 있었지만 선이는 본인이 간병을 맡았다. 뇌기능 쪽의 이상이라 가까운 사람이 주변에서 자극을 주면 좋다는 의사의 의견 때문이기도 하고 은혜처럼 당장의 병원비와 생계비가 선의의 몫이 아니기도 했다. 선이에게는 건물에서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세 수입도 있었고 남편의 사업체에서 나오는 수입도 있었다. 남편의 부재로 잠깐 혼란을 겪는 듯했지만 영리한 선이는 재빨리 상황을 인식하고 정리하여 골머리를 아프게 하던 그녀의 개인 빚까지 처리할 수 있었으며 그동안 부어 두었던 보험금 수령으로 병원비로 들어가는 돈은 별도의 예산을 짜지 않아도 될 만큼 넉넉했다

부익부, 빈익빈은 여기에도 적용이 되나 보다. 본격적인 간병이 필요하게 된 것은 일 년 남짓이지만 은혜의 남편은 지병이 있어 30여 년간 투병생활을 해온 터였다. 제대로 경제활동을 해 본 기억이 언제인지 모른다

은혜의 힘으로 근근 생계유지를 해 왔으니 제대로 된 보험 같은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은혜에게 동정이 가긴 했지만 세상이 그렇게 따듯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영업처럼 분명한 성과급일 경우 개인의 처지보다는 실적이 우선일 수밖에 없었고 주변 환경 때문에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조차 없었던 은혜는 실적 부진으로 제일 먼저 우리 곁을 떠나야 했다. 같은 슬픔 다른 아픔이었다


분주한 각자의 생활로 은혜는 우리에게 곧 잊혔지만 영업성과가 컸던 선이는 영업 활동에 관계없이 오랫동안 우리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동안 쌓아놓은 거래처의 관리만으로도 만만치 않은 수입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선이의 당당한 모습을 볼 때마다나는 은혜의 움츠린 어깨가 보이는 듯하다. 언젠가는 그녀의 노력이 빛을 발하고 따뜻한 양지의 햇살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귀할멈과 선이 씨


마녀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마성의 여자이기도 하고 악마처럼 성질이 악한 여자라는 사전적 정의이다. 복합적으로 말하면 성질이 악한 여자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는 뜻일까? 마녀가 늙으면 마귀할멈이 되는 것이니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성질이 악한 할머니가 마귀할멈인가 보다. 아무튼 우리 부서에 마귀할멈이라고 불리는 직원이 입사했다. 영업계의 미다스 손으로 전설적인 영업실적을 올린 직원이라며 실적은 좋지만 조직에 좋지 않은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소개받은 직원이다

우리 부서원들은 모두

"성질 더러워도 우리가 잘 맞출게요, 실적만 올리면 그까짓 거 비위 맞추는 거 못하겠어요 "

하며 능력 있는 직원의 영입을 희망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워낙 배려가 많은 성격이라서요, 조심스럽네요 여기에 앉을까요"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비굴하리만치 겸손하게 그녀는 우리 앞에 나타났다. 직원들은 웬만하면 잘 맞추어 가겠다고 시원하게 말했지만 마귀할멈이라는 별명에 어느 정도 긴장이 되어 있다가 스르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까시러 진 B, 사감 스타일도 아니었고 빈틈없는 커리어 우먼 캐릭터도 아니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허름한 할머니에 가까웠다. 꼬불꼬불 파마 머리는 빗질이 안되어 폭탄을 맞은 거 같았고 이목구비가 또렷하여 젊어 한때는 미모를 뽐냈을 듯한 얼굴에는 전혀 화장기가 없었다.

영업사원이 갖추어야 할 정장의 차림과도 거리가 멀었다. 손주보다 시장에 막 나온 할머니 차림새였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측은지심이 발동했다. 70이 훌쩍 넘어 영업현장을 뛰어야 하는 그녀의 처지를 알 거 같기도 했다.

영업 상무가 조회를 시작했다 영업 마인드를 높여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는 중요한 시간이다. 앙다물고 있던 그녀의 입이 씰룩이기 시작했다

"저런 쌍 8년도 교육을 하고 있담, 세 살 먹은 아이도 알고 있겠네 한심하다"

혼잣말이었지만 옆에 앉은 사람들이 또렷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거친 입담에 우리 모두 아연실색한 순간이었다. 마귀할멈이라는 별명이 또렷이 각인되었다. 나는 하나하나 부서원들의 표정을 확인하며 조직원에게 안 좋은 영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개자의 말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