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영업사원 15,16
강 부장의 아이디어로 매출이 전혀 뜨지 않던 우리 회사에 직원들의 사재기가 시작되었다
50억 매출이 예정되어 있으니 미리 사재기해두어도 후일 판매기회가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우리 부서에서도 두어 명 사재기 열풍에 동참하였고 마귀할멈은 적극 참여를 했다
"부장님, 아들이 결혼하면 집 사려고 모아둔 적금이 있어요 그거 깨면 원하는 만큼 살 수 있을 거 같기는 한데. .사도 될까요?"
"판단은 차장님이 하셔야 하지만 물건은 좋고 차장님이 일 잘 하시니까 물건 싸게 잡았다 되팔면 이익은 남을 거 같네요" "통장에 넣어두면 뭐 하겠어요 아들 거니 깨지는 말고 대출받으려 해요 이자 정도는 나오겠지요?"
"그렇겠지요 차장님은 예약된 손님도 있으니 별 무리는 없을 것도 같아요"
"부장님 내가 눈도 어둡고 하니 은행 가서 대출받는 것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꽤 많은 금액을 투자해놓은 마귀할멈은 기세가 등등해졌다
거센 목소리로 고객들을 압박하여 자신만큼의 투자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잠시 훈풍이 돌았으나 회사에 물건 납품이 치일 피일 늦어지기 시작했다
투자한 직원들의 동요가 시작되었다
마귀할멈은 나랑 눈만 마주치면 내게 푸념을 해대기 시작했다
'부장님이 내 손 끌고 가서 아들 적금 깨서 억지로 투자시켰지요
한 달 한 달 이자 메꾸느라 쌀 살 돈도 없어요 몇 날 며칠 라면만 먹습니다"
보다 못한 강 부장이 옆에서 거들었다
"차장님, 그런 말 마세요, 아들 적금 있는 거 부장이 어떻게 알았겠어요 차장님이 원해서 한 거잖아요
그렇게 억지 쓰면 안 됩니다 나중에 물건 확보되면 이익금 부장 나누어줄 거예요?"
호된 질책을 당한 후에도 견과류며 초콜릿이며 간식을 야금야금 입에 넣으며 마귀할멈은 나만 보면
"부장님, 공과금이 밀렸어요"
"부장님, 라면 살 돈도 없어요" 하고는 있다
60대의 나이에 초미니 스커트와 긴 말 장화 부츠를 신고 빨갛게 염색된 지라시 파마머리를 한 그녀의 등장에
제일 먼저 쓴소리를 퍼부은 건 마녀 할멈이었다. 당사자가 옆에 있건 없건 거침없는 험담을 해대기 시작했다.
"70년대 작부 스타일이잖아, O 자 다리를 하고 미니스커트가 가당키나 해? 저러니까 주부 영업사원들을 우습 게 보는거야,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것도 불쾌하다"
"언니, 나 작부 맞아, 수유리에서 카페 운영해요. 밤 장사라 낮에 무료한 시간 메꿔보려고 나왔어요. 언니 일 잘한다고 소문나서 언니 옆에 앉아 일 배우고 싶은데 괜찮겠어요? 맛있게 내린 커피도 가져왔어 우리 카페에서 5000원에 팔고 있는데 아주 인기가 좋아, 내 커피 내리는 솜씨는 따라올 사람 없을 걸, 뭐든 잘 배우는 편이니 언니가 일 가르쳐주면 베테랑 영업사원이 될 수도 있어요"
길게 마스카라로 늘인 눈썹 밑에서 빨간 머리의 눈이 반짝 빛났다. 우리는 숨을 죽이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빨간 머리를 응시하던 마귀할멈이 커피잔을 받았다
"내가 좀 예민한 편이라 아무거나 잘 안 먹는데 성의를 봐서 마실게요. 써~ 커피는 달달한 맛에 먹는 거지 잘난체하고 쓴 커피 마시는 사람 우습더라"
"언니, 시럽도 가져왔어요 커피향에 방해 안되게 잘 만든 시럽이야, 우리처럼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달달한 커피가 좋지, 피로 회복도 되고"
빨간 머리의 넉살 좋은 반응에 우리는 서로 안도의 눈빛을 교환했다. 마귀할멈이 천적을 만난 것 같았다
"많이 넣어요, 하루 종일 전화하는 나 같은 사람은 입에서 쓴 내가 난다니까. 적당히 시간만 때우는 사람들은 절대 이해 못하지"
빨간 머리의 착착 달라붙는 서비스에 마귀할멈의 심술도 녹아내렸다. 적당히 제공되는 간식거리와 싸구려 액세서리들이 빨간 머리 손에서 마귀할멈 손으로 넘어갔고 마귀할멈은 빨간 머리의 순한 양이 되었다.
화려한 외모와는 달리 빨간 머리는 상냥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갔고 부서에 궂은일도 도맡아 했다. 천박해 보이는 외모라고 질책하던 사람들도 외모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너무 요란한 모습은 영업사원에게 마이너스라는 내 지적에
"그럴 수도 있지만 개성이니까요, 지금도 빨간 머리하면 회사에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입사한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요 빨리 나를 알리는 방법도 됩니다.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거나 하는 특별한 규정이 없다면 이대로 있고 싶어요"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빨간 머리를 받아들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