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 할멈과 빨간 머리 2
빨간 머리는 내게도 곰살맞게 다가왔다. 나처럼 좋은 부장이 되고 싶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우기도 했다. 인천에 있는 고객에게 동행을 요구하는 그녀를 따라 인천 부둣가를 찾은 날, 궂은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쉽게 볼 수 없던 그녀의 시무룩한 표정은 질척이는 길, 우산을 받쳐야 하는 불편,사흘 굶은 시어미처럼 잔뜩 찌푸린 하늘 때문만은 아니었다.
"부장님, 참 오랜만에 인천 와요 가깝지만 안 오고 싶었던 곳이에요, 그 새끼 모른척하더라고요, 20살 어린 나이에 임신이라니까, 하긴 마마보이 철부지 의대생이 무얼 할 수 있었겠습니까마는, 죽고 싶었어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바다 보고 죽으려고 인천에 왔었지요 "
20살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된 그녀였다.당시의 미혼모는 사회적으로 매장의 대상이었고 부모에게도 부끄러운 딸이었다. 거친 세파와 혼자 싸워야 했다. 혼자 낳은 아들을 세상 편견에 맞서 싸우며 키우느라 앞뒤 돌아 볼 겨를이 없기는 했지만 인천 앞바다는 그녀에겐 상처를 헤집어 내는 장소이기도 했으리라. 당당히 인천 앞바다에 선 그녀는 이제 옛날의 상처쯤은 거뜬히 이겨낸 것 같았다
"세상 무슨 일을 해도 자신 있어요. 혼자 사는 젊은 여자에게 무슨 일인들 없었겠어요, 화려한 빨간 머리는 나 자신을 지켜낼 무기이기도 했어요. 지금이야 개성이 중시되지만 처음 빨간 머리를 할 때는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었거든요, 감히 사람들이 접근할 엄두를 못 내더라고요"
그녀의 빨간 머리가 정겹게 다가왔다. 그날 이후 나는 그녀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살아 있는 잔다르크를 보는 것 같았다
"부장님, 빨간 머리 조심하세요, 거칠게 살아왔잖아요 평범한 우리들과는 달라요. 마귀할멈 다루는 것 좀 보세요 '언니, 언니' 하면서 수족 부리듯 한다니까요"
몇몇 직원들이 조심스러운 조언을 해왔지만 빨간 머라는 영리하게 적응을 하고 일에 대한 열정도 있어서 사내의 인정받는 직원이 되어 가고 있었다. 마귀할멈이 롤모델이라며 마귀할멈을 부추겨 마귀할멈의 심술을 교묘히 잠재우기도 했다.
마귀할멈의 재빠른 판단으로 직원들의 사재기는 열풍처럼 번져나갔다. 말끝마다 결혼 이후 한 푼도 집안에 들여놓지 못한 남편을 대신해서 생활비를 버느라 자식들을 제대로 돌보지는 못했지만 잘 자라준 자식들을 자랑하며 자식에게만은 헌신적인 모습을 보인 그녀가 아들 결혼자금을 헐어 투자할 정도라면 품질은 보장할만하다고 수군대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들렸다. 마귀할멈 못지않게 아들에게 헌신적인 빨간 머리도 아들을 위한 투자라며 적극 참여했다. 돼지 저금통까지 털었다며 뭉칫돈을 내놓더니 받을 돈이 있는데 한 달 후 약속 날짜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쏟아 놓았다
나를 비롯한 몇몇 직원이 뜻을 모았다. 적은 돈이라 투자금액은 안되지만 십시일반 조금씩 모으면 그녀가 받기로 한 돈만큼은 되는 것 같았다. 다음번 이사하기로 한 집의 보증금으로 마련해 놓은 돈이었지만 빨간 머리가 한 달 후에 나오는 돈이라기에 나는 선뜻 돈을 내놓았다. 치일 피일 물건 입고가 늦어지자 직원들은 빨간 머리에게 돈을 갚을 것을 종용해왔다. 이사 보증금을 털어 넣은 나도 급했지만 다른 직원들의 불만을 재우는 게 먼저였다. 빨간 머리의 받을 돈은 결국 받지 못하는 돈이 되었고 나도 이사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것 보세요, 조심하라 했지요 거칠게 산사람이라 저 밖에 모른다니까요 처음부터 부장님 돈은 갚을 의사가 없었을 거예요"
가까운 직원들이 염려를 하지만 어렵게 모은 돈을 투자도 못해보고 빨간 머리에게 밀어 넣은 내가 한심하기는 하지만 나는 아직도 빨간 머리를 믿고 회사의 물건도 믿고 있다. 살다 보면 피치 못할 일도 있는 법이고 예상보다 늦어지는 일도 있다. 과정이 어려우면 더 좋은 결과가 올 수도 있는 법이고 우리는 지금 무엇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중이다. 거친 풍랑을 만났으니 힘을 합쳐 항해해 보는 수 밖에는 없지 않은가? 아직은 난파 수준은 아니니 섣불리 차가운 바다에 몸을 던질 필요까지는 없어 보인다. 나만 살겠다고 우왕좌왕하다가는 모두 수몰 당할 수 있는 위기이다. 문득 7년 전 최 상무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