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씨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는 분야씨지만 이재에는 누구보다 이악스러웠다. 한 푼이라도 헛되이 쓰는 돈이 없었으며 이익을 가져오는 일에는 눈치 보지 않고 앞장서는 성격이었다. 수학선생이었던 강 부장과는 계산에 밝은 면이 맞아떨어져 오랜 친분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영업 세계에서 잔뼈가 굵은 강 부장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 포착에 민감하였다. 자금이 모자라는 회사에 뒷돈을 대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수입을 낼 수도 있었다. 물건 확보시에는 큰돈이 필요하고 팔려 나가는 대로 이익이 창출되니 웬만한 이자는 감당해 내고도 남는 이익이 있었다.
회사에 근무하며 필요한 자금을 대는 일은 더 실속이 있다. 투자 수익 외에 급여도 챙길 수 있으며 판매를 독려하기 위해 시상금을 주기도 하니 기회 포착만 잘하면 일거 양득의 기회도 된다. 때로는 빠른 자금 회전을 위해 특별기간 동안 판매수당을 높여주기도 한다. 강 부장은 그런 찬스를 잘 이용할 줄 알았다. 고객의 돈을 모아 한꺼번에 베팅하여 높은 수당을 받아 주기도 하고 시기를 적절히 조절하여 보다 높은 수익을 보장하기도 하고 실적에 따라 시상을 받아내는 능력도 탁월했다.
새로 나온 가전제품 스타일러도 강 부장 덕에 시상으로 받을 수 있었다. 분야씨는 판매에 관한한 누구 말도 듣지 않는다. 최고의 수익을 내줄 수 있는 사람은 강 부장이라고 믿고 있다
물건을 확보하는 능력은 탁월하지만 자금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회사는 강 부장에게는 절호의 찬스였다 . 자금을 축적해 놓고 기다렸다가 회사가 긴급한 상황이 되었을 때 풀면 얼마든지 좋은 조건을 내걸 수 있었다. 판매수당을 100% 올릴 수도 있었고 톡톡히 시상을 챙기기도 했으며, 최고 금액으로 급여를 올려 받을 수도 있었다.
분야씨 처럼 말 잘 듣는 직원이 있어 입금은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시상과 판매수당을 동시에 챙기기도 하는데 눈치 빠른 총무과 이 이사가 걸림돌이었다. 이중으로 지불된 내용을 귀신같이 파고드는 것이었다.
"지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웬 지랄이람"
강 부장은 직원들 앞에서 대놓고 총무이사를 헐뜯기도 하였다. 총무이사인 이이사는 회사 자금이 이중삼중으로 새나가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사사건건 강 부장과 대립하였지만 미리 입을 맞추어 놓는 강 부장 직원들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같은 부장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강 부장의 행위는 횡포에 가까웠지만 강 부장은 오히려 공을 내세웠다
회사에 자금이 필요한데 그렇게라도 자금이 돌지 않으면 회사 경영이 마비된다는 논리였다.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회사가 굴러갈 자금이 회전될 수 있게 만드는 자신이야말로 회사의 일등공신이라는 것이다. 겨우겨우 운영은 되고 있을 뿐 재고상품마저도 동이 나고 있다는 걸 뻔히 아는 나는 강 부장 일행이 야속했지만 그마저도 없다면 회사 운영이 힘들다는 견해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자기야, 회사가 살아야 우리도 살아,좋은 물건이니 우리가 많이 팔면 고객들을 많이 확보할 수 있을 거, 우리 이번엔 판매수당 줄이고 회사 마진 올리는데 협력하자"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우리를 설득하던 안사장 네 김부장이 생각났다
"자기야, 자기야"
두 번 이상 본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친근한 호칭 쓰면서약간의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김 부장은
탁월한 영업 맨이기도 하다. 한두 번 그녀를 만나 본 사람은 60 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아직 곰삭은 애정을 과시하는 그녀의 부부 사이에 감탄하고 부러워한다
"우리 상철 씨라면 사줬을 텐데. ."
"우리 상철 씨라면 예쁜 거 골라줬을걸"
일이 있을 때마다 남편이라면 이렇게 저렇게 했을 거라며 그리운 마음을 여과 없이 들어냈다
3~40년을 함께 산 우리 나이 때의 부부관계는 거의그리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데면데면한 관계가 대부분이다. 닭 소 보듯. 가족이니 그냥 옆에 있으려니, 때로는 조금 귀찮기도 한 관계이다.
"지금 외국 여행 중이야, 출장이 자꾸 늦어지네, 빨리 와야 하는데. ." 할 때마다
"더 늦게 오라 그래, 집에 있으면 저녁 차려줘야 하잖아, 일찍 집에 가야 한다니까. 우리끼리 이렇게 차 한잔할 시간도 없어질걸"
"물론이지 난 우리 상철 씨 오면 상철 씨가 먼저야 ,자기들은 그 다음이고 . . 그 대신 지금 잘할게"
그렇게 말하는 그녀가 밉지 않았다. 나타나기만 하면 우리 모두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줄 것 같은 믿음이 생겼다. 그녀의 묘한 어법 때문이다
말 솜씨뿐만 아니라 그녀는 마음씀도 너그러웠다.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여러 사람 모임에서 회비를 갹출해야 할지 개인이 경비를 부담해야 할지 애매한 순간에는 자연스럽게 계산은 그녀 몫이었다. 좀 부담스러울 때는 그녀는 어렵지 않게 회비를 유도하는 기술이 있었다
"우리 상철 씨가 이번 달에는 송금이 늦네, 자기들 남편도 돈 못 벌지,우리 나이 때는 우리가 벌어 써야 해,
이번 달 급여 아직 안 나왔으니 오늘은 더치페이"
모두들 웃으면서 회비를 부담하게 한다. 고객과의 관계도 스스럼없이 다가가 그녀가 상담을 맡으면
성공률 100%라는 직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고객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그녀의 성정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보다는 직원, 직원보다는 고객과 회사라는 그녀의 철칙이 있다. 어떤 경우라도 주인을 배신하면 안된다는 신념이다 김 부장과 내가 특별한 신뢰를 구축한 데는 또 하나의 비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