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름으로 11

김부장

by 우선열

김 부장과 나는 출근 1,2위를 다툰다. 사무실 문을 여는 일은 거의 그녀나 내 몫이었다 월요일 아침, 문이 열린 사무실로 들어가던 나는 땀을 뻘뻘 흘리는 그녀와 마주쳤다.

"어제 사장님 아이들이 왔었나 봐, 어질러져 있길래 치우고 있어"

"김 부장 오십견이잖아, 무거운 거 못 들더니 책상까지 옮기는 거야? 나 올 때 가지 기다리지, 근데 아이들 몹시 개구진가 봐 의자 다리까지 망가졌네"

"자기야, 미안한데 그건 얼른 총무과에 갖다 놓아줘"

총무과에는 망가진 집기들이 더 있었다. 심상치 않은 느낌이 있었지만 굳이 들어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자기는 아직 모르지, 안사장이 잘 못 하기는 했지만 부인이 의부증이 있어 가끔 회사에 와서 난동을 부리곤 해, 평소엔 총무부장이 잘 처리하는데 어젠 미처 치우지 못했나 봐, 부장들 중에는 나만 아는 일이야, 말이 많지 않은 성격인 건 알지만 말이란 게 퍼지면 과장되는 거 같아서 "

"난, 무슨 일인지도 잘 모르고 이야기할 것도 없지 뭐"

"안 사장이 다 좋은데 술 마시면 여자를 탐하네, 그러다 보니 여러 번 실수를 했나 봐 부인이 의부증 증세가 생겼대. 그럴수록 안사장은 빗나가고 ... 회사일은 빈틈없이 잘 처리하는데 아무래도 여자가 문제가 될 거 같아, 회사가 잘 되어야 우리도 사는데. . "

명랑한 그녀의 얼굴에 잠시 그늘이 스쳐 지나갔다

"사실 그 나이에 한 번쯤은 바람 지나가지 않나? 안사장이라면 슬기롭게 잘 극복할 거야, 김 부장처럼 현명한 직원도 있고"

"그러길 바라야지, 누구나 한가지 결점은 있으니까, 나도 가능한 한 안사장을 돕고 싶지만 개인 프라이버시는 지켜줘야 하잖아, 안사장이 큰누나처럼 믿고 상의하기는 해 "

회사가 살아야 우리도 산다는 그녀의 말에 담긴 진실이 전해졌다. 안사장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는 직원이라는 믿음이 생기니 회사에 대한 인지도도 높아지는 것 같았다. 김 부장처럼 회사에 기둥이 되는 부서가 되어 보자는 각오도 새로워졌다.


김 부장과 뜻이 맞으니 회사일은 순탄하게 풀려나갔다. 과도한 시상이나 수당을 원하는 직원들을 제어하기가 쉬워졌다. 직원 복지에 관심이 많은 안사장이라 직원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선이, 순희, 박이사, 세명이 주축을 이룬 우리 부서와 경자 언니, 최남선 김정혜가 자리 잡은 김 부장네 부서는 비교적 안전하게 회사 내의 주력 부서가 되어 움직였고 안부장 윤 부장 최 부장 등도 제 몫을 거뜬히 해내어 3~4년 우리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실적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던 일이 먼 옛날의 일 같았다. 방심한 순간 나쁜 일은 오는 법이다.

"안사장이 이혼하겠대"

김 부장이 힘없이 말했다. 웬만한 허물은 김 부장이 재치 있게 덮고 넘어가 평온한 날들이 지나가나 했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두 아들을 낳고 10년 세월을 살다가 5개월 전에 늦은 결혼식을 올린 안사장 부부였다. 우리 모두 진심으로 축복했고 그들의 행복이 전염되는 듯했었다. 축의금을 모아 불우이웃 돕기를 회사 전 직원 이름으로 해준 안사장이었기 때문이다. 그 감동이 채 사라지기도 전이었다

"자기는 짐짓 모르는척하더라, 다른 사람들은 악착같이 캐묻고 소문 퍼뜨리기 급급한데. . 이번엔 어린 아가씨를 만났나 봐, 가족들이 들고일어나서 안사장을 괴롭히고 부인은 부인대로 힘들어해, 결혼식 올리고 마음을 잡나 했는데 술이 웬수지 뭐, 술자리에서 만난 아가씨래 결혼식 올릴 때 부인하고 각서 쓴 게 있나 봐, 부인이 그걸 들고 나와서 법정으로 간대, 어쩔 수 없을 거 같아"


모든 재산을 부인에게 주고 이혼을 했지만 안사장은 흔들림 없이 회사일에 매진하였다. 술렁거리던 회사 분위기도 곧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술을 조금 줄이는듯한 안사장의 태도에 우리도 안도했다.평소엔 빈틈없는 생활 자세를 보이는 안사장이니 직원들은 모두 안사장을 신뢰했다. 조용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크게 이는 법일까?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로 예상되던 재정 문제없이 회사는 본궤도를 찾아 안정되었고 안사장의 상처도 회복이 되어 가는 듯 보였는데 주말 오후 긴급 부서장 회의가 소집되었다.

"당분간 제가 개인적인 일을 처리해야 해서 영업장 문을 닫겠습니다. 그동안 애써 주셨는데 본인의 불찰입니다. 처리하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니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다시 회사를 정성화 시킬 수 있을 때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때 합류가 가능하신 분들은 같이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말씀드리게 되어 몹시 송구합니다"

더 붉어진 얼굴로 천정을 쳐다보며 안사장이 말을 마쳤고 우리들 중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어려운 가운데에도 안사장은 뒤처리를 깨끗이 하여회사를 떠나게 된 사람들도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서운함보다 안사장의 안부를 더 궁금해하는 분위기였다. 생활의 최전선에 있는 우리들은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안사장의 재기를 기원하며 다시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 했다. 김 부장은 안사장에게 남기로 했다. 급여 없이 판매수당만 지급받는 조건이었다. 유능한 김 부장은 좋은 조건의 스카우트 제의를 여러 곳에서 받고 있었지만 안사장에게 잔류를 결정한 것이었다.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는 결정이었고 안사장도 김 부장에게 짐이 될 수는 없다며 간곡하게 말렸지만 그녀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영업부의 김 부장과 안사장의 오른팔 총무이사가 회사에 남는 결정을 보며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겨야 했다. 나중에라도 내가 좀 안정되면 나도 급여 없이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으니 가정적으로는 불행한 일을 겪었더라도 사업가로써 안사장의 기반은 단단해 보였다. 모두들 안사장의 어려움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의외로 해결의 실마리는 엉켜 있었다. 나쁜 일은 겹쳐 온다더니 해결된 줄 알았던 문제들이 다시 수면으로 올라 서너 해 동안 줄소송이 이어졌다. 여자문제와 겹쳐져 온갖 추문이 돌아다녔다.

"그렇지 뭐, 남 말하기 좋아하잖아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거야,안사장 건재해, 나도 안사장 믿고, 다만 안사장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걸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

가끔씩 안부를 묻는 내게 들려온 그녀의 한결같은 답변이었다

"마지막 판결이 났어, 안사장 승소야, 이겼지만 상처는 크네, 안사장 몹시 지쳐 보여 당분간 쉬고 일 시작할 거 같아"

"나는 주인을 배신하는 일은 안 해"

사석에서 그녀가 내게 해주던 말이 떠올랐다. 김 부장 같은 좋은 직원을 둘 수 있는 안사장은 비록 현재는 힘든 과정을 겪고 있더라도 꼭 성공하는 인생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자신을 믿고 따라주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안사장 뒤에는 김 부장뿐 아니라 그의 재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나 같은 직원도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